이란과 이스라엘이 무력 충돌을 빚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걸프국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산될 경우 주변국들도 여파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란은 오만과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걸프지역 국가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공습을 멈춘다면 미국과 핵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걸프국들 역시 미국에 핵 협상을 재개하고 휴전을 압박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집트와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 등 20개 국가의 외무장관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이란은 미국과 핵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 국가들이 무력 대신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이유는 갈등 장기화가 결국 걸프만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이란이 걸프 지역에 위치한 미군 기지를 폭격하거나 중동 국가들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물리적, 경제적 타격을 피하기는 어렵다. 바데르 알 사이프 쿠웨이트대 역사학 교수는 “우리는 수 년 간 이런 대결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우리가 궁극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해는 이미 본격화됐다. 지난 14일 이스라엘 드론이 공격해 대형 화재가 발생한 이란 사우스파르스는 이란과 카타르가 공동 개발 중인 세게 최대 가스전이다. 머리 위로 미사일이 비행하는 것을 본 시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카타르 환경기후변화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카타르 국가의 대기와 영해의 방사능 수치는 정상 범위 내에 있다"며 “방사능 수치는 24시간 모니터링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움직임은 걸프국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 중동 상황을 이유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캐나다에서 조기 귀국을 결정했다. 그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모두 즉시 테헤란 떠나 대피하라"고 올리기도 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묵인하는 것을 넘어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미국의 개입과 이스라엘의 맹공으로 이란 정권이 궁지에 물리게 될 경우 오히려 핵무기 개발에 몰두하거나 최악의 경우 이스라엘 외의 주변국을 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우디 일간지 오카즈는 “미국이 현명하고 합리적이며 지역 모든 이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면, 개입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중단시킬 것”이라며 “만일 미국이 개입한다면 우리는 이 지역이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더 나쁜 단계에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걸프국은 지난 1년 간 이란과 좋은 관계를 구축해왔다는 점에 희망을 걸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어렵게 얻은 주변국과의 평화를 깨뜨리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또한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이란이 지원해 온 반 이스라엘 무장 단체들이 이스라엘의 무력화되면서 이란의 전투력이 약화됐다는 점도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정치학자 압둘칼레크 압둘라는 “이번 분쟁으로 이란의 힘이 약해진 것은 걸프 지역에 긍정적이지만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더욱 대담해지고 있는 점은 우려할 점”이라며 “그럴 경우 팔레스타인 분쟁도 당분간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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