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물가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반적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안정세에 들어섰지만 가공식품과 같은 필수 소비재 가격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며 저소득층일수록 물가 고통이 더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 조사국은 18일 보고서를 통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2%대에서 안정되고 있는 반면 생활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생활물가의 중심에는 가공식품 가격이 있다. 올해 들어 라면, 식용유, 즉석밥 등 가공식품 가격이 잇따라 인상되면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체감물가는 되레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기준 지난해 12월에 비해 조사 대상 가공식품 73개 가운데 73%에 해당하는 53개 품목의 가격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가계의 실질구매력 증가율은 연평균 2.2%에 그쳤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2~2019년 평균(3.4%)보다 1.2%포인트 낮은 수치다. 특히 저가 제품일수록 가격 상승폭이 더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른바 ‘칩플레이션(chipflation)’ 현상이다. 팬데믹 이후 저가 소비재 가격이 고가 품목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면서 저소득층이 더 큰 부담을 지게 되는 구조다. 한은은 “저가 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계층일수록 가격 인상에 취약하다”며 “반면 고소득층은 대체 소비가 가능해 상대적으로 영향이 덜하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생활물가가 소비자물가보다 빠르게 상승해온 배경으로 팬데믹 이후 공급망 차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후위기 등 복합적 외부 충격을 꼽았다. 이에 따라 2021년 이후 생활물가의 누적 상승률은 19.1%로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15.9%)보다 3.2%포인트 높았다.
올해 들어서는 가공식품 가격 상승이 생활물가를 끌어올리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활물가 상승률에 대한 가공식품의 기여도는 지난해 하반기 0.15%포인트에서 올해 1~5월 평균 0.34%포인트로 두 배 이상 커졌다. 한은은 “수입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이 시차를 두고 반영된 영향”이라며 “가격 인상이 소비심리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업계가 원가 상승분 외에 추가적인 이윤 확보를 위해 가격을 인상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근거나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한국의 필수재 물가 수준은 국제적으로도 높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식료품 물가지수는 156으로 OECD 평균(100)을 크게 웃돌았다. 의류(161), 주거비(123) 등도 높은 수준이었다.
한은은 한국의 높은 생활물가 원인으로 낮은 생산성과 개방도, 복잡한 유통 구조에 따른 비용 부담 등을 지목했다. 과일·채소·육류 등 농축수산물은 물론 빵, 유지류 등 가공식품도 대부분 OECD 평균보다 1.5배 이상 비쌌다.
한은은 “규제 및 진입장벽 완화 등을 통해 기업간 경쟁을 촉진하는 한편 원재료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특정 품목의 충격이 여타 품목으로 확산되는 정도를 완화하는 것이 긴요하다”면서 “할당관세를 통해 농산물 등 수입원재료 가격의 안정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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