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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 한 눈'이 블랙홀 관측…'KVN 스타일'로 세계 주도하죠

◆글로벌 전파망원경 경쟁 가열…연세전파천문대 가보니

안테나 중심부에 수신실…신호손실 줄여 '정밀 분석'

내년 세계최대 블랙홀 관측 프로젝트서 핵심적 역할

美·中 등 주요국 기술전쟁…"예산 등 지원확대 시급"





한국천문연구원이 참여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국제 공동 연구진이 2022년 5월 공개한 우리은하 중심 궁수자리 블랙홀. 사진 제공=한국천문연구원


이달 12일 개소한 강원 평창군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서울대평창전파천문대. 사진 제공=한국천문연구원


“내년 본격적으로 시작될 세계 최대 블랙홀 관측 프로젝트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맡을 예정입니다. 해외에서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 덕분이죠.”

1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국천문연구원 KVN 연세전파천문대. 3층 높이 계단을 딛고 올라간 지름 21m짜리 전파망원경 안테나 중심부에는 사람 두세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수신실이 있었다. 각종 서버와 장치·전선이 오밀조밀 모인 이곳에서 정태현 천문연 KVN센터장은 ‘동시 관측 수신기’를 가리키며 핵심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동시 관측 수신기는 전파를 받아들이는 수신기 4대와 반사경, 빛가르개 등 육안으로는 단순한 구성으로 보였다.

전파는 한쪽 벽에 성인 키만 한 원형 창문처럼 뚫린 집속기를 통해 수신실로 들어온다. 이어 반사경과 빛가르개를 거치며 4개의 주파수 신호로 나뉜다. 주파수는 ‘빨주노초파남보’ 같은 일종의 빛깔 내지는 성분에 비유할 수 있다. 한 가지 색보다 네 가지 색이 이미지를 더 잘 표현하듯 여러 주파수를 취합하면 더 정확한 관측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신호 손실을 최소화하면서도 여러 주파수로 나누고 이들을 시차 없이 동시에 관측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한국이 해외 수출까지 하며 전매 특허를 자랑하는 기술이다.

17일 서울 서대문구 천문연 KVN연세전파천문대 전파망원경 수신실 내부 모습. 왼쪽에는 전파 수신기를 포함한 각종 장치, 오른쪽에는 전파가 들어오는 둥근 집속기가 보인다. 김윤수 기자


17일 서울 서대문구 천문연 KVN연세전파천문대의 전파망원경(왼쪽)과 내부 수신실의 동시 관측 수신기. 김윤수 기자


정 센터장은 “최근 서울대평창전파천문대를 개소하면서 KVN의 동시 관측 수신기를 블랙홀 관측에 적합하게 한층 업그레이드했다”며 “내년 3월 관측이 시작될 ‘차세대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ngEHT)’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전파망원경은 블랙홀이나 초기 우주 관측 같은 기초연구뿐 아니라 화성 등 심우주 탐사선의 위치를 정밀하게 탐지하고 우주 활동 데이터를 수집하는 식으로 우주개발과 안보 분야에서도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글로벌 경쟁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우주항공청과 천문연은 이달 12일 서울, 울산, 제주에 이어 강원 평창군에 네 번째 KVN 전파천문대를 개소하는 한편 지난달 14개국 공동 ‘국제 거대 전파망원경(SKA)’ 프로젝트에도 합류하며 전파망원경 분야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전파망원경은 전파로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이나 블랙홀을 관측하는 망원경이다. 전파는 가시광선보다 주파수가 낮은 또 다른 빛이다. 주파수는 빛이 1초 동안 진동하는 횟수다. 이것이 낮을수록 장애물을 넘어가는 회절성이 강해진다. 우주 먼지 같은 장애물에 잘 가로막히는 가시광선과 달리 전파는 회절성 덕에 장애물을 잘 넘어다녀 먼 거리에도 전달된다. 2019년 세계 최초로 블랙홀을 관측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이 대표적인 국제 공동 전파망원경이다. 오늘날 상식이 된 우주 팽창 발견을 포함한 여러 노벨상 업적도 전파망원경 연구 성과다.



주요국 간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은 한때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한 지름 305m의 ‘아레시보 망원경’과 완전 조종 가능한 전파망원경 중 가장 큰 지름 100m의 ‘그린뱅크 망원경’을 개발했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지름 500m의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 ‘톈옌’을 보유한 데다 완전 조종 기술로도 그린뱅크를 능가하는 110m의 ‘신장 치타이 망원경(QTT)’도 건설 중이다. 양국은 지구 대기의 방해를 피해 아예 달에 전파망원경을 짓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전파망원경 ‘톈옌’. 신화연합뉴스


전파망원경 경쟁의 또 다른 축은 초장기선전파간섭계(VLBI) 기술이다. 서로 멀리 떨어진 전파망원경의 신호를 합쳐 가상의 대형 망원경처럼 쓰는 기술이다. 정 센터장은 “VLBI는 망원경 간 거리, 즉 ‘기준선’ 길이에 비례하는 크기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며 “KVN도 서울대평창전파천문대 개소로 데이터 양은 물론 기준선도 500여 ㎞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은 넓은 국토를 활용해 각각 최대 8000㎞, 4000㎞의 기준선을 자랑한다.

단일 규모에서 밀리는 한국은 국제 협력이 절실한 입장이다. 한국·일본·중국이 모인 ‘동아시아 VLBI’만 5000㎞, 전 세계 30여 기관이 모인 EHT는 지름이 지구에 버금가는 1만 2000㎞인 가상 망원경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천문연은 EHT의 블랙홀 관측에 참여한 데 이어 후속 프로젝트인 ngEHT에서는 역할을 더 키우게 됐다는 게 정 센터장의 설명이다. 그는 “ngEHT는 단순 관측을 넘어 동영상까지 찍어 블랙홀 연구 역량을 크게 높이자는 프로젝트”라며 “프로젝트 내에서 KVN 스타일이 관심받으며 우리가 잘 하는 86㎓(기가헤르츠) 동시 관측이 임무에 추가됐다”고 했다.

블랙홀이 직접 내뿜는 전파는 230㎓와 345㎓ 주파수에 가까워 당초 ngEHT는 두 신호 관측에 집중했다. 하지만 86㎓를 동시에 관측해 신호를 취합하면 영상 정밀도를 높일 수 있는 데다 86㎓가 그동안 어려웠던 블랙홀 주변의 제트 분출류 관측에도 적합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마침 천문연은 86㎓을 포함한 4개 주파수 수신기로 국제표준을 받은 데다 수신기 1개로 주파수 3개를 동시에 수신·취합하는 기술을 확보해 이탈리아에 수출하기도 했다. 평창과 연세 천문대에 230㎓ 수신기도 추가되며 블랙홀 직접 관측도 가능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카루 지역에 지어질 14개국 공동 국제 거대 전파망원경(SKA)의 조감도. 사진 제공=SKAO


또 다른 프로젝트 SKA는 우주 초기의 모습 관측에 도전한다. 빅뱅 직후인 130억여 년 전의 과거를 보려면 130억여 광년 떨어진 먼 거리에서 오는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 한국과 영국·독일·중국·인도 등 14개국이 2029년까지 총 2조 9000억 원을 들여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호주에 안테나 13만 여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는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파망원경은 화성 탐사선의 위치 오차 범위를 기존 수 ㎞에서 300m 이내로 개선하고 다양한 우주 활동을 감시하는 등 산업·안보 분야 응용도 기대된다. 정 센터장은 “한국도 다양한 신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글로벌 경쟁을 위해서는 예산 등 지원 확대가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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