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면허체계와 자격, 업무 범위, 권리 및 처우개선을 담은 간호법이 핵심 쟁점인 진료지원(PA) 간호사에 대한 세부 규정 등 빈틈을 채우지 못한 채 21일 정식 시행된다. 이대로 시행되면 복지부 추산 1만7000여명에 이르는 PA 간호사들이 공식적으로는 합법화됐으면서도 정작 세부적으로는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일 공산이 크다.
‘진료지원업무 수행규칙’ 입법예고도 못해
19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간호법 하위법령 중 하나인 ‘진료지원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이 현재까지 입법예고되지 않은 상태다. 이 규칙은 간호법의 핵심인 PA 업무 합법화를 위해 필수적인 업무 범위, 자격조건, 교육 주체 등을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측은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공청회를 열어 초안을 공개한 이후 현재까지 각계 의견을 계속해서 수렴 중이라는 입장이다. 해당 규칙은 업무 범위를 규정하는 규제 법령이기 때문에 입법예고 이전·이후 두 차례에 걸쳐 법제처 규제심사도 받아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 같은 절차를 거치면 정식 시행되기까지 3~4개월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규칙 확정에 이처럼 신중한 건 이해당사자인 의료계 직역마다 반발이 거센 탓이다. 복지부는 공청회를 통해 PA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7개 분야 45개 행위를 비롯해 자격조건, 교육과정, PA 업무 가능 의료기관 등 주요 내용의 초안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공청회 패널로 참여했던 김충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는 “PA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며 “현장에서 자의적 해석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대한간호협회는 PA 교육·자격관리 주체를 정부로 규정한데 반발하며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한 달 가까이 릴레이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일본의 ‘인정간호사’ 제도처럼 간호사단체가 교육기관 지정·평가·운영을 총괄할 수 있도록 일임해야 한다는 게 간협 주장이다. 간협은 “자격 기준조차 없이 병원장이 신청하고 자체 발급한 이수증만으로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하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PA간호사, 법 시행돼도 ‘규정 공백’ 불가피
정부는 규칙 시행 전까지 PA 간호사의 업무영역으로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적용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밝히지만 현장 반응은 다르다. 보건의료노조가 조합원 4만49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 실태조사를 보면 조사에 응한 PA 업무 종사자의 63.5%가 본인의 권한과 책임을 벗어난 타 직종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의정갈등 이후 의사 업무가 간호사 등 진료지원인력에게 더 많이 전가된다는 응답은 91.3%에 달했다. 실제로 PA 간호사들은 의정갈등 이후 의사를 대신해 수술·시술 동의서를 받거나 의무기록을 작성할 뿐 아니라 처방·시술·드레싱을 하는 등 업무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반면 교육 상황은 열악해, PA 인력 중 43.9%가 관련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교육시간이 8시간 이하인 응답자도 40.4%에 달했다. 교육을 이수한 이들 중에서도 소속기관 내 자체 교육만 받았다는 응답이 76.3%에 이른다.
법 시행도 전부터 ‘개정 요구’ 나와
한편 간협은 간호법이 아직 시행되기도 전인 상황에서 법 개정 추진에 나섰다. 간호법에 간호사 1인이 담당하는 환자 수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게 간협의 주장으로, 현재는 의료법 시행규칙에 간호사 정원을 ‘연평균 1일 입원환자수를 2.5로 나눈 수’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칙이 1962년 제정된 이래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탓에 보건의료 환경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경림 간협 회장은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간호사 대 환자 수 법제화 필요성과 과제’ 토론회 인사말에서 개정안 발의 의사를 밝혔다. 그는 “간호사 대 환자 수 문제는 선진간호 환경으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간호사들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부담을 온몸으로 막고 견디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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