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치솟으면서 가계대출이 하루 2000억 원 넘게 폭증하고 있다. 다음 달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확대를 앞두고 미리 대출을 받으려는 고객이 많은 데다 신용대출 수요도 늘어난 탓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나치게 가팔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금융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이달 19일 기준 752조 749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748조 812억 원)보다 3조 9937억 원 증가한 수치로 하루 평균 2102억 원씩 늘어난 셈이다. 이는 2023년 8월(3105억 원)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이달 가계대출은 6조 3000억 원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월간 증가 폭만 놓고 보면 지난해 8월(9조 6259억 원) 이후 최대치다.
대출 유형별로 보면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 포함)은 지난달 말 현재 593조 6616억 원에서 이달 19일 기준 596조 6471억 원으로 2조 9855억 원 증가했다. 이대로라면 이달 증가액이 4조 7000억 원을 넘겨 전월(4조 216억 원)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
증시가 상승하면서 신용대출도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신용대출의 경우 지난달 말 103조 3145억 원에서 19일 현재 104조 4027억 원으로 1조 882억 원 증가했다. 하루에 573억 원 늘어난 것으로 전달(265억 원)의 두 배를 웃돈다. 이달 말까지 1조 7755억 원까지 불어날 수 있어 2021년 7월(1조 8637억 원) 이후 약 4년 만에 최대 폭이 예상된다.
감독 당국은 은행 다잡기에 나섰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NH농협은행은 24일부터 다른 은행에서 넘어오는 갈아타기 대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18일에는 우대금리 조건을 까다롭게 조정하기도 했다. SC제일은행은 주담대 만기를 기존 50년에서 30년으로 줄였다. 만기 축소는 DSR 산정에 직접 영향을 미쳐 대출 한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다른 은행들도 향후 금리를 인상하거나 생활안정자금 목적 외 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방식의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가계대출과 집값 상승이 이슈로 부상하면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은행장들에게 가계대출 관리를 당부할 예정이다. 이 총재는 23일 은행연합회 정례이사회 직후 열리는 만찬에 참석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 모두가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 완화가 주택가격·가계대출만 띄울 가능성을 우려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배드뱅크 설립 방안도 논의 대상이다. 정부는 7년 이상 장기 연체된 개인 무담보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8000억 원 규모의 채무조정 기구 설립을 추진 중이며 이 중 4000억 원을 금융권에 분담시킬 계획이다. 기준은 순이익이나 부실채권 보유액을 바탕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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