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기업 현장 일선에서는 소송 리스크를 우려해 인수합병(M&A) 등 주요 의사 결정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법 개정을 통해 지배구조를 강제로 개선하더라도 일부 면책이나 주주 환원 촉진 세제 등의 당근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일 정시영 PKF서현회계법인 세무본부장은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상법 개정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도 있겠으나 소송 리스크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기업 의사 결정이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주주가치를 보호하면서도 기업 의사 결정의 자율성을 보호할 수 있는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무 전문가인 정 본부장은 삼일회계법인·EY한영회계법인 등에서 활동하다가 2021년 PKF서현회계법인으로 자리를 옮겨 올해 4월 회계 업계 최초로 여성 세무본부장을 맡았다.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다수 자문 경험을 갖춘 만큼 상법 개정 등 새 정부 정책에 대한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듣고 있다.
정 본부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공격적으로 투자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데 최근 이사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어 설득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이 낮아진 상태라 M&A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조건은 갖춰졌는데 정책 변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과 함께 주주 환원 촉진 세제 등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주주 환원 촉진 세제는 주주 환원을 확대한 기업에 대한 법인세 세액공제와 함께 개인주주에 대한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을 포함한 내용이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추진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새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 논의 과정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가업상속공제를 적용할 수 있는 업종 요건을 확대해달라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주주가치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은 소액주주들의 반응이라는 설명이다. 법률·세무·회계 등을 모두 검토한 뒤 문제없다고 판단해 추진했다가 소액주주의 반발에 부딪혀 지배구조 개편 등이 좌초된 사례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유상증자 등 자본 조달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반응을 살피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한다.
정 본부장은 “모든 법을 다 지키더라도 소액주주의 요구에 맞지 않으면 제지될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자문 요청이 늘었다”며 “모든 소액주주 마음을 대변할 수 없고 변수도 있기 때문에 대응하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상법 개정 등으로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비상장사일수록 상법 개정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재무적투자자(FI)들이 들어오면 대주주 지분율이 희석될 수밖에 없는데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 권한이 강해지면 지배구조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앞으로 비상장사는 IPO를 하기 전 대주주 지분에 대한 안정화 작업이나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 등 철저한 사전 대비가 필요할 것”이라며 “대주주가 돈을 주고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명확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투명 경영을 통해 소액주주들로부터 지지를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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