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빠르게 재편하는 거대한 기술혁명 속에 살고 있다. AI는 이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짜는 것은 물론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와 로봇처럼 현실을 직접 다루는 ‘피지컬 AI’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AI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미지와 글과 영상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멋진 사진이 실제 장면인지 AI가 만든 가짜인지 알아채기 어려운 일이 많아졌다. AI가 작성한 글이 사람의 글처럼 자연스럽게 보이고, 심지어 가짜뉴스와 딥페이크 영상이 사람들의 판단을 흔들기도 한다. 속도가 빨라진 만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 좋게 만드는 작업을 넘어 ‘진짜’를 구별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필터이자 안내자라고 확신한다. 디자인 싱킹은 무엇이 ‘진짜’ 사람을 위한 것인지, 무엇이 ‘진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려주는 사고방식이다.
예를 들어 복잡한 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메뉴가 아무리 많아도 사람들은 사용하기 어려우면 금방 포기한다. 좋은 디자인은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줘 사람들이 정말 필요한 것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AI가 만든 복잡한 결과물 속에서도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효과적으로 안내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서울디자인재단이 올 5월 개최한 ‘서울디자인런’ 행사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AI와 디자인 싱킹’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 전문가들은 AI 시대에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나눴다.
구글의 AI 연구자 몽슈 첸은 “AI는 반복을 줄이고 가능성을 넓혀주는 파트너”라며 AI를 통해 디자이너들이 빠르게 아이디어를 만들고 사용자 반응을 빠르게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말 중요한 것은 AI가 만들어주는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 속에서 ‘무엇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지’ 발견하는 디자이너의 질문과 해석이다.
또한 스탠퍼드대 D스쿨의 쿨샥 오제닉 교수는 ‘작은 의례(Little rituals)’를 통해 디자인 싱킹이 조직 문화와 팀워크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강조했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이 서로 솔직하게 감정을 나누고 편하게 피드백을 주고받는 문화를 ‘설계’하는 것이 디자인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신뢰와 공감이 쌓일 때 우리는 무엇이 ‘진짜’인지 서로 더 잘 구별할 수 있다.
결국 AI는 효율과 속도를 제공하는 도구지만 디자인은 속도를 넘어 방향을 묻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준을 세우는 프레임이다. AI가 아무리 빠르고 똑똑해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는 결국 사람이 결정한다. 좋은 디자인은 사람들의 선택을 돕고 복잡한 세상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AI가 만든 가짜가 점점 더 정교해질수록 ‘진짜’를 구별하는 눈, ‘진짜’를 찾아내는 기준이야말로 앞으로 더 소중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만드는 힘이 바로 디자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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