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3일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국제유가 급등과 중동 지역 긴장 고조에 대응하기 위해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가동했다. 국내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수급에는 당장 문제가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금융·실물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이 커질 수 있어 수시로 상황을 점검한다는 취지다.
김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에는 기재부를 비롯해 외교부, 산업부, 해양수산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국제금융센터 등이 참여했다.
이 대행은 “미국의 공습 이후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의결하는 등 사태 전개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범정부 석유시장 점검단을 중심으로 유가 상승에 편승한 불법행위를 철저히 점검하고, 국내 석유류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국내 원유·LNG 도입에는 차질이 없고, 중동 인근 해역을 항해 중인 한국 선박 31척도 모두 안전 운항 중이다. 문제는 호르무즈해협이 전격 봉쇄되는 상황이다. 호르무즈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이 접해 있는 페르시아만을 대양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해로다.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해 세계로 나간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연간 수입 원유의 71~72%를 중동에 의존하는 만큼 영향이 더 크다. 호르무즈해협이 막힌다면 사우디 얀부 등 홍해 쪽 항구를 통한 우회 경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페르시아만과 홍해를 잇는 파이프라인이 충분치 않아 원유 이동이 원활하지 않다. 예멘의 친이란 세력인 후티 반군이 이란을 지원하기로 한 것도 홍해 항구 이용을 어렵게 한다. 후티 반군은 2023년 가자전쟁 발발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편에 서서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을 공격한 바 있다. 세계 주요 선사들은 지금도 홍해를 우회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지나는 노선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총 206.9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 및 민간을 합한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 기준인 90일분을 상회한다. 이 때문에 호르무즈 봉쇄가 이뤄지더라도 수급에 즉각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다만 정부는 향후 사태 전개에 따라 수출입, 해운 물류, 금융시장 등에 연쇄적인 충격이 미칠 가능성에 대비해 전방위적인 모니터링 체제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석유공사도 이날 긴급 점검 회의를 열고 석유 수급 위기 대응 체계를 점검했다.
호르무즈해협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의 유조선 공격과 기뢰 설치 등으로 통항이 위협받았지만 전면 봉쇄로로 이어진 적은 아직 없다. 2010년대 초반 미국 등 서방의 대이란 제재 때도 봉쇄 우려가 나왔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중심으로 24시간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특이동향 발생 시 사전에 마련된 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신속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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