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처음으로 유로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에 성공했다. 규모는 14억 유로(약 16억 달러)로 유로화 외평채로는 역대 최대다. 이스라엘-이란 전쟁 등 국제 정세 불안 속에서도 주문이 190억 유로(약 222억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총 14억 유로 규모의 유로화 표시 외평채(3년물·7년물)를 성공적으로 발행했다. 발행 금리는 유로화 외평채 특성에 따라 미드스왑(mid-swap)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정해졌다. 3년물이 25bp(1bp=0.01%)가 추가된 2.305%, 7년물은 52bp가 더해진 2.908%로 최종 확정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3년물 가산금리는 30bp 수준인 일본 정책금융기관 및 중국 정부 채권의 유통금리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7년물 가산금리 역시 최근 8년물을 75bp에 발행한 홍콩 정부보다 유리한 조건에 발행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외평채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자, 2021년 이후 4년 만의 유로화 표시 발행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번 외평채는 유로화 기준으론 역대 최대 규모로 발행됐지만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주문이 몰리며 흥행에 성공헀다. 주문량이 사상 최고 수준 190억 유로로, 발행액 대비 주문액을 뜻하는 주문배수 역시 13.6배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특이 이번 발행 성공은 지난해 비상계엄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우리 경제 시스템에 대한 국제 신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새 정부 출범 이후 우리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글로벌 금융 시장이 받아들였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최근 발행된 나라들이 발행한 채권 대비 준수한 금리 수준”이라며 “견고한 우리 경제 시스템을 금융시장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가 진행한 로드쇼에서도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외평채 발행 직전 기재부가 영국 런던에서 유럽, 미주, 남미, 아시아 지역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명회에서 이들은 △ 정치적 불확실성이 질서 있는 해소 △새 정부의 실용적 시장주의 기조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집중육성의 정책방향 등에 주목했다. 단순한 관심을 넘어 실제 투자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 한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6월 정부 출범 이후 수출입은행과 기업은행, 주요 민간 기업에 이어 이번 외평채 발행까지 한국 기관의 외화 표시 채권(한국물) 발행이 원활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며 “새 정부 정책방향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한국물 전반에 있어 발행 성공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외평채를 다양한 만기와 경쟁력 있는 금리로 발행해, 향후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의 외화 조달 여건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대외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적시에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고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외평채 상환 재원도 조기에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올해 만기 도래분은 9월 7억 유로, 11월 4억 달러 등 총 12억 달러 규모다.
정부는 국회의 승인을 받은 외화 외평채 발행한도(총 35억 달러) 내에서 시장 상황을 고려해 올 하반기 중 추가 발행을 추진할 방침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외화표시 외평채 한도를 23억달러 확대한 바 있다. 외환보유액을 직접 늘리면서도 외환시장에 불필요한 영향을 주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동안 외평채를 원화로 발행할 경우 외화 조달을 위해 시장에서 원화를 팔고 외화를 사야 하기 때문에 환율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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