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이 미국 기업에 ‘글로벌 최저한세(필러2)’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처럼 해외 법인을 둔 국내 기업만 상대적으로 불리한 세제 환경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 지난해 1월부터 필러2를 시행해 기업들이 실제로 추가 세금을 내야 하지만 애플과 구글, 테슬라 등 미국 기업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스콧 베센트 미 재무부 재무부 장관은 26일(현지시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필러2 세금은 미국 기업에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필러2는 다국적 기업이 세금 회피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도입한 글로벌 최저한세로, 연매출 약 8억달러(1조원) 이상인 기업에 최소 15%의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다.
한국은 2022년 말 법 개정을 통해 필러2를 도입 지난해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동남아·유럽 등 저세율 국가에 자회사를 둔 국내 기업들은 추가로 세금 부담을 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해외 자회사에서 10%의 세율만 적용 받았다면 본사가 한국이나 해당 나라에 나머지 5%를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24년 감사보고서에 실효세율이 5% 미만인 베트남 법인에서 필러2 적용으로 약 4300억원의 추가 세금이 발생한 사실을 기재했다. 베트남의 평균 실효세율은 10%지만 그동안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아 실효세율이 낮아지면서 글로벌최저한세 부과 대상이 됐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와 현대모비스도 각각 10억원, 12억원을 재무제표에 반영했다. LG화학(051910),삼성SDI, SK이노베이션(096770) 등 글로벌 생산 시설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저세율 국가에 있는 자회사 문제로 추가 과세 부담을 안고 있다. 재계에서는 200~300여 곳의 국내 기업이 글로벌 최저한세 사정권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같은 국가에서 사업하더라도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의 세금 부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애플이 베트남에 향후 생산 시설을 지을 경우 현지 실효세율은 10%로 같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베트남 당국에 추가로 5%에 해당하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미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미래 첨단 산업 투자를 강화하는 가운데 경쟁 분야가 겹치는 한국 기업들만 불리한 세 구조에 놓이는 셈이다. 특히 대기업은 수시로 글로벌 생산 거점을 조절하거나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진출시 세금 부담까지 고려하면 미국 기업보다 전체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 경쟁력 약화와 별개로 미 행정부가 향후 관세 협상에서 자국 기업에 대해 필러2 적용을 예외로 둘 것을 직접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필러2는 지난해 1월부터 시행돼 미국 기업에도 내년부터 과세가 시작된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세금을 인식하는 상황에서 미국 기업만 예외를 적용할 경우 통상 마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G7의 미국 기업에 대한 필러2 예외 적용은 아직 공동선언문 등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된 것이 없다"며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되 현재로선 기존 계획대로 제도를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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