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집을 사려는 이들은 6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다주택자 주담대는 금지되며 수도권에 집을 구매하면서 대출을 받은 경우 6개월 이내 전입 의무가 부과돼 ‘갭투자’가 봉쇄된다. 업계에서는 초강력 대출 규제에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집값이 어느 정도 안정될 수 있겠지만 실수요자 역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대출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새 정부 출범 23일 만에 나온 것으로, 사실상 첫 부동산 대책이다.
당국은 수도권·규제지역에서 주택 구입 목적으로 받을 수 있는 주담대의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했다. 정부가 개인 대출 한도를 일괄적으로 설정한 것은 처음이다.
당국은 수도권에서 주담대를 받은 뒤 6개월 내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대출금을 회수하기로 했다. 수도권 유주택자 대출은 전면 금지된다.
가계대출 총량도 절반으로 줄어든다. 정부는 전 금융권의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목표를 당초 계획 대비 50% 수준으로 감축할 예정이다. KB국민과 신한 등 5대 은행에 할당된 하반기 대출 총량은 기존 4조 원에서 2조 원으로 급감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책대출인 디딤돌·버팀목대출 한도 역시 최대 1억 원까지 줄어들고 신용대출은 연봉을 넘지 못하도록 해 ‘영끌’을 차단한다. 이번 대책은 28일부터 시행된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자의 대출이 막히고 현금 부자들만 ‘똘똘한 한 채’를 사는 부작용을 우려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서울은 외곽 지역 주택도 15억 원인데 대출 없이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더샵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대출을 보태 사려 했던 3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27일 정부의 가계대출 대책 소식을 듣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19억 원으로 이 씨는 경기도 안양시에 있던 기존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11억 원에 대출 8억 원가량을 보태 집을 사려 했다. 가계약까지 걸어뒀지만 당장 28일부터 대출 가능액이 6억 원으로 뚝 떨어지면서 거래는 없던 일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씨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좀 더 넓은 집으로 갈아타려 했는데 (대출 규제로 줄어든) 2억 원을 당장 구할 방도가 없다”며 “서울 집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 당분간 집을 옮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토로했다.
금융 당국이 이날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묶는 극약 처방을 내리면서 실수요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영끌’을 통한 고가 주택 구매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취지지만 뒤집어보면 현금 부자가 아니면 집을 사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KB부동산 월간 주택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3억 4543만 원에 달한다. 강화된 규제 범위에서 최대한 대출을 끌어온다고 하더라도 7억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서울 진입이 쉽지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강남은 더하다. 고소득자가 많이 선호하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1~4월 국민 평형(84㎡) 평균 매매가격은 23억 8370만 원이다. 연소득이 2억 원인 소비자가 30년 만기로 대출금리 4.2%의 변동형 주담대를 받을 경우 대출 규제 전에는 최대 11억 48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소득이나 상환 능력과 관계없이 6억 원까지만 가능하다. 한도 5억 4800만 원이 한 번에 줄어든다. 강남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18억 원은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중위소득 차주의 대출 한도는 크게 없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은 6억 원 이상 대출자가 전체의 약 10% 정도라는 입장이다. 특히 연소득 6000만 원 차주가 10억 원까지 주택을 구입하면 대출 한도는 지금이나 새 규제 적용 후나 4억 1900만 원으로 같다는 것이다. 연소득 1억 원 차주가 10억 원짜리 주택을 살 경우 한도 감소액이 9800만 원가량이라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연소득 2억 원인 대출자가 20억 원까지 집을 살 때는 7억 9600만 원이나 한도가 감소한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빚을 레버리지로 삼아 주택을 구입하는 행태 등으로 주택 시장의 과열과 침체가 지속적으로 반복돼 왔다”며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이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한 대출 한도까지 죄기로 한 점도 실수요자의 불만을 키우는 대목이다. 당국은 수도권 내 생애 최초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의 담보인정비율(LTV)을 현행 80%에서 70%로 낮춰 대출액을 줄이기로 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내 집 마련을 준비하거나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로 집을 갈아타려던 청년·중산층의 주택 구매 부담이 특히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생활비 주담대 한도를 조인 것에 대해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많다. 정부는 수도권 보유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를 최대 1억 원으로 제한했다. 주담대 만기를 30년 이내로 제한한 것도 대출자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양지영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저소득층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한도 있고 LTV도 줄어서 중저가 주택 접근도 어려워졌다”며 “앞으로 고소득자나 현금 보유 여력이 있는 자산가 중심의 거래가 이뤄지는 초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나왔던 15억 원 이상 주담대 금지 대책보다 시장 개입 수위가 높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 대책은 15억 원을 넘긴 아파트 구입 시 아예 대출을 막는 것을 뼈대로 하는데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수도권에서 6억 원 이상 대출을 못 받게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스트레스 DSR 3단계를 능가하는 강력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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