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우수 연구 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이 세계 대학 사이에서 연구 품질로는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는 국제 평가가 나왔다. 과학계 원로들은 연구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책 유연성을 늘리고, 국내 1위 인지도에서 탈피해 해외로 연구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7일 서울대 자연대는 설립 50주년 프로젝트 ‘사이언스, 넥스트 50(Science, Next 50)’의 일환으로 ‘제2차 자연과학 미래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은 영국의 대학 평가기관인 THE와 학술출판사 엘스비어(Elsevier)가 서울대 자연대의 의뢰를 받아 분석한 연구 성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서울대 자연대의 현 위치를 진단하기 위해 열렸다.
분석 결과 서울대 자연대는 각종 지표에서 국내 1위를 기록했지만, THE 국제 종합 순위에서는 최근 수 년 간 60위권 안팎을 오가는 등 하위권에 속했다. 국제 유력 학술지 145개에 발표한 논문들을 바탕으로 연구 경쟁력을 변환한 '네이처 지수'에서도 중국 칭화대·일본 도쿄대·영국 케임브리지대·미국 UC 버클리대·싱가포르 국립대 중 꼴찌를 기록했다. 이들 대학은 각국에서 서울대와 비슷한 위상을 지닌 명문대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확연히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었다.
서울대 자연대가 낮은 순위를 기록한 결정적인 이유로는 저조한 ‘국제적 평판’이 꼽혔다. 연구 평판은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중요한 요인인데, 2023년과 지난해 서울대 자연대가 동료 과학자에게 받은 평판 표(Reputation vote)는 1080표로, 1위(1만 3502표)를 기록한 영국 케임브리지대와는 12.5배 차이가 났다.
평판을 높이기 위해서는 서울대의 국제적인 브랜드 제고가 필요하다. 강화가 남좌민 서울대 자연대 부학장은 “국제 공동연구를 할 경우 인용 지표가 2배 이상 늘어난다”면서 “국내 인지도와 영향력에서 탈피해 해외로 연구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세계 정상급 대학·기관과 실질적인 글로벌 네트워크 및 산학협력을 확장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교수 간 연구 편차도 컸다. 상위 10% 교수들의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연구 완벽성(Research Excellence)는 세계 명문대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상위 25%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인 연구 역량(Research Strength)는 54.6점으로 43.5점인 도쿄대를 제외하면 하위권에 속하는 점수였다. 남 부학장은 THE의 진단을 인용해 “자연대 내 평균 연구 경쟁력 증진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연구의 양보다 영향력을 키우고, 잠재력 있고 국제적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연구 분야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계 원로들도 서울대가 세계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직된 대학 운영을 유연화하자는 방안도 나왔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서울대가 국립대이기 때문에 교육부 등의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는 연구 성과 향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교수들이 8주가량 수업하고 나머지는 해외에서 연구에 몰입하는 ‘1년 학기제’처럼 유연성 있는 정책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결 자산(IP)’으로서 산업 기반을 닦기 위한 기초 과학 연구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지낸 천종식 CJ 바이오사이언스 대표이사는 “대기업들이 신약 개발을 노력하고 있지만 대학 단계에서 좋은 IP가 나오지 않으면 산업에서 결실을 거두기 어렵다”면서 “대학에서 IP를 만들고 기업들이 이를 키워나가는 밸류 체인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은 “대학 평가의 중요한 문제는 결국 그 대학이 존경할 만한 대학인지, 존경할 만한 연구를 하고 있는지에 달렸다”면서 “서울대 자연대가 우리만의 것을 발견해서 독창적인 연구를 할 때 존경할 만한 대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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