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통의 본질이 부동산, 물류망 확보 등이었다면 지금은 상품 기획력, 콘텐츠로 전장이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유통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채용 시장, 특히 헤드헌팅 업계에서도 같은 방향의 전환이 감지되고 있다. 이제 헤드헌터는 조직의 전략에 맞춰 사람을 설계하는 인재 기획자로 거듭나고 있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헤드헌팅 기업 프로써치코리아 임지혜 이사(헤드헌팅 전문가)와 채용의 본질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기업이 어떤 시각으로 채용을 접근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심층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Q. ‘올다무’가 유통 빅4를 넘어선 현상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A. 드디어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유통업계에서는 규모와 입지가 지배력을 가늠하는 가장 강력한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거기에 맞는 제품과 경험을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이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됐습니다. 이 흐름이 헤드헌팅 업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후보자의 이력서만 보고 조건을 맞춰 연결했다면 지금은 조직의 방향성과 문화, 성숙도, 성장 가능성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해 인재를 기획하는 관점이 필요해졌습니다.
Q. 현재 헤드헌팅 업계의 본질적 변화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시나요?
A. 크게 보면 헤드헌터의 역할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업과 인재를 연결하는 채용 중개인에 가까운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채용 이후의 조직 발걸음을 함께 설계하고 인재의 성장까지 책임지는 인재 기획자, 혹은 조직 설계 파트너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인재가 해당 조직 내 어떤 시간축 위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여부를 미리 그리는 작업입니다. 결국 기획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Q. 실제로 ‘기획형 헤드헌팅’이 성과를 낸 사례가 있나요?
A. 물론 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 K-뷰티 브랜드의 글로벌 확장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회사는 시리즈 B 단계까지 투자를 마친 후 틱톡, 아마존 기반의 해외 매출 확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었죠. 이 과정에서 단기간에 마케팅 리더, 재무총괄, 실무진 등 다각적인 포지션의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사람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는 성과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직 구조와 성장 로드맵을 먼저 분석한 후 어떤 시점에, 어떤 인재가 들어오면 시너지가 나는지 여부를 예측해 시간차별 채용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이처럼 헤드헌팅은 점점 더 입체적인 기획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Q. 인수합병(M&A) 과정에서도 기획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A. 맞습니다. 대기업 계열사가 아마존 내 판매 1위 생활가구 브랜드를 인수한 사례가 있습니다. 대기업의 체계화된 문화와 스타트업의 유연한 문화를 조화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죠. 특히 채용에서 격차가 드러났습니다. 기존 대기업식 채용 방식으로는 이질적인 조직을 소화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 경우 양쪽 조직의 문화적 DNA를 읽고 그 접점을 기획할 수 있는 인재 포트폴리오 전략이 필요합니다. 즉, 조직 변화의 디자이너로서 헤드헌터가 관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Q. 산업 전환기에 채용 실패를 경험한 다른 사례도 있을까요?
A. 팬데믹 이후 한 바이오 상장사가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을 선언하며 해외 인력과의 협업을 본격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선언만큼 실행이 쉽지 않았습니다. 조직 내부는 여전히 과거의 폐쇄적인 업무 방식과 위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그저 스펙 좋은 인재를 데려오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헤드헌터가 그 기업의 전략적 방향성, 조직문화의 현재 위치, 리더십의 수용성 등을 총체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맞는 소화 가능한 인재를 제시할 수 있어야 진짜 실효성 있는 채용이 됩니다.
Q. 인터뷰에서 샌드박스 개념을 말씀하셨는데요. 이걸 헤드헌팅과 어떻게 연결하시나요?
A. 샌드박스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창의성을 펼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지금의 헤드헌터가 바로 고객사의 샌드박스 안에서 최고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업의 비전, 제약 조건, 문화적 환경이라는 샌드박스를 잘 이해하고 그 안에서 ‘적정한 인재’를 상상하고 구현하는 기획자, 그것이 지금 시대에 요구되는 헤드헌터의 모습입니다. 그저 하나의 경력 매칭이 아닌, 전략과 인재를 입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본질이 된 겁니다.
Q. ‘가심비 채용’이라는 표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A. 올리브영이 시장을 바꾼 건 단지 좋은 제품을 팔아서가 아닙니다. 소비자에게 이건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감정을 설득했기 때문입니다. 채용도 같습니다. 요즘 MZ세대는 연봉보다 ‘나의 성장이 가능한가?’, ‘이 조직이 나를 존중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헤드헌터는 이제 가볍게 보상체계를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줄 수 있는 성장 그래프와 문화적 설득을 기획해줄 수 있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Q. 현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게 어떤 조언 부탁드립니다.
A.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조직의 인재 샌드박스는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 지, 어떤 문화를 갖고 있는지, 어떤 제약 조건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이 토대 위에 채용 전략을 세워야 하고요. 가능하다면 내부에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외부의 시선을 빌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재 기획 진단을 추천 드립니다. 가볍게 시작하되,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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