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투자 적격 등급 중 가장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은 BBB등급에 대한 무보증 회사채 발행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3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의 기업 회생 신청 이후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비우량 회사채에 대한 투자심리 냉각이 지속된 여파다. 여기에 업황 부진까지 겹친 일부 기업의 경우 회사채 수요예측 단계에서 전량 미매각되는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중·저신용 기업의 자금 조달에 비상등이 켜졌다.
14일 코스콤 체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BBB등급 무보증 회사채 발행 규모는 52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9.2%가량 감소한 수준이다. 월별로는 1월 770억 원, 2월 1650억 원, 3월 1940억 원으로 증가세를 나타냈지만 4월부터 200억 원으로 급감했다. 5월과 6월도 각각 350억 원, 290억 원으로 부진했고 이달에는 아예 전무하다. 비우량 회사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BBB급 회사채 시장은 높은 금리 대비 펀더멘털이 양호한 공급이 한정적이어서 수요가 높았다”며 “최근에는 고수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다시금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BBB등급이어도 기업 규모에 따라 시장의 호응이 갈렸다. 앞서 1월에 회사채를 발행한 두산(000150)의 경우 400억 원 모집에 3230억 원의 자금이 몰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JTBC 역시 500억 원 모집에 1370억 원이 몰렸지만 이랜드월드는 전량 미매각됐다. 가장 최근에 회사채를 발행한 BBB등급의 SSL중앙 역시 400억 원 모집에 380억 원 상당의 주문이 들어왔다.
이에 4개월 만에 회사채 시장에 등장한 BBB급 중앙일보가 비우량 회사채 투심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앙일보는 이날 진행된 1년 6개월물 300억 원에 대한 수요예측에서 370억 원의 주문을 받았다. 신고 기준 금리는 6.1%다. 이달 15일 신종자본증권 발행 수요예측을 진행하는 깨끗한나라(BBB)는 당초 일반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이었지만 BBB급 회사채 시장 상황을 반영해 계획을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비우량 채권은 높은 이자율에 힘입어 최근 몇 년간 매력적인 투자 수단 중 하나로 꼽혔다. 실제 중앙일보의 공모 희망 금리는 5.80~6.80% 수준으로 이날 기준 2.9%대인 AA-급 회사채 금리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특히 2023년부터는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과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 도입까지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는 중·저신용등급 비우량 기업 자금 조달 여건 개선 및 회사채 시장 양극화 완화를 위해 시행됐는데, 펀드 요건을 맞추기 위해 BBB 이하 회사채를 일정 비율 이상 편입해야 하기 때문에 비우량채 수요 기반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이후로 세제 혜택이 종료되고 주식시장마저 되살아나면서 비우량 채권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개인투자자들마저 채권시장에 등을 돌리며 중저신용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대출 등 간접 금융 의존도가 높아 직접 금융 조달 방식인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 효과에서 소외됐지만 그나마 하이일드 펀드가 숨통을 틔우는 역할을 했었다”며 “시장 상황 및 제도적 변화에 취약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부 기업의 경우 업황 부진까지 겹치며 회사채 투자 매력이 더욱 떨어지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기업이 롯데건설과 CJ CGV(079160)이다. 롯데건설은 지난달 11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CJ CGV는 이달 11일 1000억 원 모집에 나섰지만 전량 미매각됐다. 앞서 CJ CGV는 지난달 신종자본증권(BBB+)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400억 원 모집에 100억 원 규모의 주문만 들어왔다. 롯데건설과 CJ CGV의 신용등급은 각각 A, A-로 BBB등급보다 높지만 회사채 시장에서는 비우량 기업으로 분류된다. LS엠트론 역시 수요예측에서 2년물 기준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며 기존 500억 원에서 350억 원으로 감액 발행했다.
일각에서는 회사채에 대한 수요 자체가 감소한 것이 아니라 업종별·등급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CJ CGV와 이틀 차이로 수요예측을 진행한 HD현대(A+)는 1500억 원 모집에 1조 3000억 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회사채 시장에서는 종목별 차별화된 모습이 보이고 있다”며 “사업 환경 불확실성이 높은 기업에 대한 보수적인 접근이 나타나면서 시장 내 양극화가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