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는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화됐고 이제는 민간 중심의 미래지향적 협력이 중요합니다. 민간 교류가 한일 관계의 미래를 열 것입니다.”
하태윤 이희건한일교류재단 이사장은 1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교 정상화 60년간 한일 양국은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진전을 이뤄왔고 이제는 수평적인 협력 관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한일교류재단은 신한은행을 창립한 재일동포 기업인 고(故) 이희건 명예회장(1917~2011)이 2008년 일본 내 동포 사회의 복지 증진과 지위 향상, 한일 민간 교류 촉진을 목적으로 설립했다. 2023년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하 이사장은 토론토총영사·이라크대사·오사카총영사 등을 역임한 외교관 출신이다. 외교 무대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그는 한일 관계가 양적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변화했음을 강조했다. 그는 “1965년 당시 1만 명 수준이던 인적 교류는 지난해 1000만 명에 이르렀다”며 “한국의 경제 규모가 일본에 버금가고 문화적으로도 한류 열풍이 휩쓸고 있는 시점에서 양국은 더 이상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는 외교적 긴장과 화해를 반복해왔다. 그 속에서도 하 이사장은 민간 교류의 일관된 지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간 갈등이 있더라도 민간 교류를 멈춰서는 안 된다”며 “한일 관계는 정치와 민간이라는 투트랙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이사장은 한일교류재단이 바로 그 투트랙 중 하나의 축을 담당해 왔다고 말했다. 특히 매년 11월 일본 오사카 사천왕사에서 열리는 ‘사천왕사 왔소’ 행사는 한일교류재단의 대표적인 민간 교류 프로그램이다. 고대 한일 교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행사에는 현지 재일동포뿐 아니라 일본인 참여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금융인으로 성공한 이희건 명예회장은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이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며 “한일교류재단의 정체성은 바로 그 정신을 잇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하 이사장은 올 4월부터 열리고 있는 오사카엑스포의 한국관에서 재일동포의 역사와 공헌을 조명하는 전시에 한일교류재단이 기여한 것을 큰 보람으로 꼽았다. 그는 “제막식에 참석했을 때 감격스러웠다”며 “오랫동안 일본에서 근무한 외교관으로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감회를 전했다.
한일교류재단은 장학사업과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재일동포 2세들의 교육 기회를 넓히고 유능한 인재들이 모국과 일본 사회에서 동시에 활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하 이사장은 “청년 세대의 교류야말로 미래 한일 관계의 초석”이라며 “젊은 세대가 함께하는 교류의 장을 만들기 위해 ‘이희건 상’ 제정과 같은 새로운 시도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희건 상은 이 명예회장의 뜻을 잇는 차원에서 한일 간 학술·경제·문화 교류에 기여한 인물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됐다. 초대 수상자로 일본 산요전기 창업자의 후손인 이우에 사토시 전 산요전기 회장을 선정됐다.
하 이사장은 기후변화·고령화·저출산 등 양국이 직면한 공통 과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문제는 더 이상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데 특히 일본은 이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한국도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며 “일본의 실버 산업은 우리가 참고할 만한 점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총, 균, 쇠’를 인용하며 한국과 일본이 ‘감정의 역사’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하 이사장은 “일본에 백제 후손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양국은 단순한 국가 관계를 넘어서 혈연적 연결도 존재한다”며 “양국이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감정을 넘어 협력할 수 있을 때 동북아의 안정과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과 일본은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 등 수많은 협력의 경험이 있다”면서 “앞으로 민간 교류, 특히 청년 중심의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재단이 앞장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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