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이 31일 타결된 데는 재계의 총력 지원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와 함께 반도체·자동차·조선 분야 대미 투자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재계 총수들은 미국 워싱턴 DC로 날아가 대미 관세 막바지 협상을 도왔다.
미국 출장길에 오른 첫 주자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었다. 김 부회장은 28일 관세 협상 지원을 위해 워싱턴으로 향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미 필라델피아주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하고 최근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세 차례 수주하는 등 적극적으로 한미 조선업 협력에 나서고 있다. 김 부회장은 미 정부 및 조선업 관계자들을 만나 미 조선업 부활을 위한 상선·특수선 건조 및 기술이전 계획을 설명한 것을 알려졌다.
한화오션은 앞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필리조선소와 거제조선소가 공동 건조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이번에 타결된 협상에서는 1500억 달러(약 209조 원) 규모의 조선업 협력 전용 펀드 운용 계획이 담겼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현지 시간) 워싱턴 DC의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한미 무역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에서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무역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29일 워싱턴 DC에 들어갔다. 이 회장은 반도체 투자 확대 및 현지 기업들과의 각종 기술 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최근 테슬라와 22조 7648억 원(165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X(옛 트위터)를 통해 “삼성의 대형 텍사스 반도체 공장은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 제조에 전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관세 협상을 통해 반도체, 원전, 2차전지, 바이오 등에서 대미 투자 펀드 2000억 달러(약 278조 원)를 조성하기로 한 만큼 삼성전자의 현지 협업 및 투자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30일 미국 워싱턴 DC로 출국했다. 정 회장은 올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나 국내 기업 최초로 백악관에서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밝힌 투자 규모는 210억 달러(약 31조 원)에 달했다. 정 회장은 워싱턴에서 이 같은 투자 방안을 강조하며 미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자동차 관세는 25%에서 일본·유럽과 같은 15%로 낮아졌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정의선 회장을 시작으로 15일 구광모 LG 회장, 21일 김동관 부회장, 22일 최태원 SK그룹 회장, 24일 이재용 회장 등과 연쇄 회동을 갖고 대미 투자와 관세 협상에 대해 논의했다. 대한상의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최 회장도 이달 중순 미국을 방문,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을 만나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 초청하는 한편 관세 협상을 지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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