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등으로 다소 늦게 시작한 한미 무역 협상이 전격 타결된 배경에는 우리 협상단이 1m 길이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패널을 갖고 설득하는 등 디테일한 대응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현지 시간)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브리핑을 가진 정부 협상단에 따르면 이번 협상의 결정적인 전기는 ‘스코틀랜드 출장’에서 마련됐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22일 일본과의 협상 타결 직후 우리 측에 연락해 오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미국이 조선업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출발 전에 인지하고 1m 길이의 패널을 특별히 제작해 가져갔다”며 “우리가 미국과 협업하면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제작한 패널이었는데 24일 첫 회담 때 러트닉 장관에 보여주니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고 전했다. 김 장관은 “첫 회담에서 미국 측이 내용을 구체화하면 좋겠다고 했고 그 자리에서 다음 일정을 잡아 25일 뉴욕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러트닉 장관의 스코틀랜드 출장 일정을 앞두고 미국도 협상 내용에 흥미를 느끼고 있어 스코틀랜드로 가서 협상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러트닉 장관도 흔쾌히 시간을 내줘 ‘마스가’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생겼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장관은 “스코틀랜드에서의 두 차례 협상이 협상의 전기를 마련했다”고도 평가했다.
협상 과정에 난관도 많았다. 특히 미국이 요구한 농축산물 시장 개방과 온라인 플랫폼 규제 완화 등의 요구를 방어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여 본부장은 전했다. 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협상 초반에 농산물 문제를 제기했다”며 “미국 소고기의 제1의 수출 시장이 한국이라는 점 등 여러 통계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계속된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도축 당시 30개월령이 넘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계속 요구했고 협상단은 미리 준비해간 과거 100만 명의 인파가 모인 ‘광우병 시위’ 사진을 제시했다고 한다. 여 본부장이 미리 이 사진을 준비해와 “한국의 상황을 이해시켰다”고 김 장관은 소개했다.
이날 오후까지도 협상단은 과연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후 3시 52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한국 협상단과 만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우리 협상단도 급히 백악관으로 이동했다. 구 부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날 만날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며 “트루스소셜을 보고서야 ‘아, 이제 현실이 되는구나’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구 부총리는 “30~40분가량 협상을 했고, 주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일종의 모의고사를 보는 것처럼 (협상단이) 서로 트럼프 대통령 역할을 하며 롤플레이를 했다”며 후일담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을 써가며 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짜 예행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러트닉 장관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러트닉 장관은 협상단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복잡하게 설명하면 안 된다. 가급적이면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등의 조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보통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아니면 직접 협상하지는 않는데, 한국의 경우 각료급과 직접 협상했다. 그만큼 한국을 존중하고, 중요시한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석에서 펜으로 투자 규모를 고치지는 않았지만 최종 확정된 3500억 달러의 투자 규모에 대해 정부는 협상단이 제시한 액수보다는 늘어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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