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대미 특사단을 준비 중이다. 특사단은 지난달 타결된 관세 협상의 후속 조치로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관련된 현안과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도입 등 에너지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특사단이 미국과 논의할 의제 중에 원자력 협력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앞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50년까지 미국 내 원자력발전 용량을 현재의 4배인 400GW(기가와트)까지 확대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네 가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행정명령에는 규제 절차 간소화, 핵연료 공급망 강화, 첨단 원자로 실증 사업, 전략 시설(군사기지·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에 대한 원전 기반 전력 공급이 포함돼 있다. 2030년까지 1GW급 10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더 나아가 핵연료 공급 보장을 위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추진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 기조는 초당적이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역시 2050년까지 원자력 용량을 300GW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원전을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원전 산업 역량은 이러한 야심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다. 현재 남아 있는 대형 원전 사업자는 웨스팅하우스뿐이다. 또 미국 에너지부가 발표한 ‘선진 원자로 상용화 도약를 위한 추진 방향’에 따르면 원전의 핵심 기기인 원자로 압력 용기를 제작할 수 있는 주조·단조 시설은 기껏해야 연간 3GW를 공급할 수 있고 1GW급 대형 원전의 원자로는 미국에서 제작할 수 없다.
미국이 400GW를 달성하려면 300GW의 신규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 2050년까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은 매년 12기, 1.4GW급인 우리의 ‘APR1400’은 9기씩 지어야 한다. 체코에 수출한 원전이 한 기에 12조 원 수준이니 최소 매년 100조 원의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설사 미국이 목표한 400GW의 일부만 추진된다 해도 우리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미국 원전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국가는 우리와 프랑스·일본 정도다.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 드러난 프랑스 원전의 경쟁력과 후쿠시마 사고로 피폐화된 일본의 원전 산업을 볼 때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 또 미국 전력 사업자 입장에서도 우리 원전은 높은 호환성을 지녀 매력적인 대안이다. APR14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 인증을 받은 원전으로 언제든 건설이 가능하다.
원전 협력에는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미국에서 우리는 웨스팅하우스와 경쟁할 수 없어 협력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설령 대미 특사단이 원전 협력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손해 볼 것은 없다. 미국의 에너지 전략을 지지하고 동참하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주는 것만으로도 외교적 명분과 전략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성공한다면 단순히 기술과 경제 협력을 넘어 양국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특사단 파견을 통해 과거의 동맹 관계를 재확인하는 것을 넘어 한미 협력의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원전 협력은 이러한 비전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 이는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고 트럼프 정부와 거의 임기를 같이할 이재명 정부에 대미 외교의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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