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물놀이는 이걸로 다 갔다!”
시원한 물줄기가 마구 쏟아지는 이곳은 수영장도 바닷가도 아니다. 바로 공연장과 야구장의 여름철 풍경이다.
한여름 피서지의 대명사였던 바닷가가 MZ세대 사이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공연과 스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도심형 물놀이’가 새로운 여름 레저 문화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여름 축제' 최강자 자리매김한 ‘흠뻑쇼’
대표적인 예가 가수 싸이의 여름 콘서트 ‘흠뻑쇼’다. 이름 그대로 관객이 ‘흠뻑’ 젖을 만큼 물을 뿌리는 공연으로, 매년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대표 시즌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관객들은 트레이드마크이자 드레스코드인 파란색 옷을 맞춰 입고 수십 대의 워터캐논과 초대형 스프링클러가 뿌리는 물세례 속에서 3시간 넘게 음악과 물폭탄 파티를 즐긴다.
흠뻑쇼는 지난해 9개 도시에서 총 45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올해도 인천 개막전에서 3만명, 속초 공연에서 2만5000명이 몰리며 7월 기준 누적 관객수 약 43만3033명을 기록했다. 특히 올해 대구 공연에서는 스탠딩·지정석·시야제한석이 모두 매진되자 3층 물제한석까지 개방했다.
직장 동료들과 처음 공연장을 찾은 김성현(28)씨는 “무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물을 맞으니 기분이 좋았고, 모두가 신나게 즐기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며 “곳곳에 안전요원이 배치돼 있어 안심하고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워터밤 같은 여름 페스티벌은 가족 단위로 가기엔 진입장벽이 있는데, 흠뻑쇼는 10대부터 50~6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이 즐기는 걸 보고 보기 좋았다”고 덧붙였다.
동생과 과천 공연장을 찾은 임모(25)씨는 “티켓값 18만원이 아깝지 않았다”며 “공연 자체가 바캉스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을 정도로 물을 빵빵하게 쏴줘서 시원하게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타는 기본, 물폭탄은 덤'…2만원에 즐기는 물 축제
프로야구 구단들도 여름철 ‘워터페스티벌’로 젊은 층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안타나 득점이 나올 때마다 사이렌과 함께 물대포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고, 팬들은 서로 물총을 쏘며 한여름 물 축제를 즐긴다. 특히 티켓팅만 성공하면 물이 쏟아지는 구역 한정 최대 2만2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3시간 동안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 여름철 인기 물놀이 코스로 자리 잡았다.
야구장 물 축제는 KT위즈의 1군 첫 시즌이었던 2015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KT는 물대포 4대와 소방호스를 설치했고, 첫 경기에서 무려 19득점을 뽑아내 준비한 물이 동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후 이 문화는 키움 히어로즈를 제외한 9개 구단으로 확산됐다.
키움 히어로즈 관계자는 “홈구장으로 사용 중인 고척스카이돔은 실내 구장 특성상 불꽃놀이나 워터페스티벌 등 폭죽·물 이벤트가 어렵다”며 “돔이라는 환경적 제약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구단이 한 시리즈, 길어도 두 시리즈 동안만 물 축제를 운영하지만 올해 KT위즈는 네 시리즈(13경기)에 걸쳐 ‘Y 워터페스티벌’을 진행했다. 여기에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당초 14일까지였던 기간을 한 주 더 늘려 21일까지로 확대 운영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삼성라이온즈전에서 물 축제를 즐긴 KT위즈 팬 박모(34)씨는 “물 축제 맛집답게 물을 시원하게 뿌려줘서 더위를 싹 잊었다”며 “안타를 치면 54321 카운트다운과 함께 물을 쏴주어 흥이 두 배가 됐다”고 말했다.
또 같은 구장에서 처음 워터페스티벌을 즐긴 조모(36)씨는 “스카이존 맨 앞 좌석이라 물폭탄 세례는 아니었지만 발사 장면만으로도 장관이었다”며 “바닷가나 워터파크를 좋아하지 않는 제게는 최고의 물놀이였다.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날을 보냈다. KT워터페스티벌 최고”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직접 참여해본 LG트윈스의 ‘썸머 홀릭(Summer Holic)’은 그야말로 물 폭탄 세례였다. 이달 7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베어스전에서는 안타나 득점이 나올 때마다 “준비하시고, 쏘세요!”라는 안내와 함께 위·아래에서 동시에 물줄기가 퍼부어졌다. 관중석 곳곳에선 물총전이 벌어졌고, 머리카락부터 바지·양말까지 금세 흠뻑 젖었다.
경기가 끝날 무렵, 바닥엔 물이 찰방찰방 고였지만 함성과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서 야구팬들은 더위 대신 열기를 즐겼다.
다만 안타가 나오지 않고 삼자범퇴로 끝나는 이닝이 이어지자 물 세례가 뚝 끊겨, 젖었던 옷이 다시 뽀송해지는 ‘웃픈’ 순간도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LG트윈스 팬 김혜윤(29)씨는 “올해 직관 중 최고였다”며 “내향인인 나도 외향인으로 만들어주는 어른들의 수영장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티켓팅이 워낙 치열해서 매번 실패할까 봐 조마조마하지만, 15~20만원 주고 다른 워터페스티벌 갈 바엔 2만원대의 야구장 물 축제를 택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치열한 '티켓 전쟁'은 암표 가격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달 10일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된 LG트윈스와 한화이글스전에서 워터존인 1루 레드석 표가 1장당 7만원에 거래됐다. 정가가 2만2000원이니 4만8000원의 웃돈이 붙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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