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아시아 국가 사이에 철강 반덤핑 관세 분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구조적인 공급과잉 상황에서 미국이 철강 제품에 50%에 달하는 폭탄 관세를 매기자 중국산 제품이 아시아 시장에 대거 몰려 각국이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장벽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철강 업계에 따르면 베트남 산업무역부가 17일 한국과 중국산 아연도금강판에 최대 37.13%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했다. 올해 4월 잠정 결론을 내린 후 4개월 만이다. 중국산 철강 제품에는 최고 37.13%, 한국 제품에는 15.67%의 세율을 적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 정부가 수입된 아연도금강판이 덤핑 판매되고 있으며 베트남 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며 “한국이 중국에 비해 관세율이 낮기는 하지만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철강 제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는 올 들어 아시아 지역에서 부쩍 늘어나는 모습이다. 실제 일본 경제산업성은 13일 중국과 한국산 아연도금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했으며 지난달에도 중국과 대만산 스테인리스냉연강판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 인도는 이달 베트남산 열연에 대해 반덤핑 관세 부과를 확정했으며 파키스탄은 6월 중국산 갈발륨도금강판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벌였다. 태국은 올 1월 중국과 대만 등에서 생산한 냉연강판의 일몰 재심 조사를 개시한 바 있다.
아울러 기존 반덤핑 관세 부과 조치를 재연장하는 국가도 적지 않다. 중국은 유럽연합(EU)과 한국 등 4개국에서 생산한 열연판 등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5년간 연장했고 대만도 한국과 중국의 스테인리스강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향후 5년간 더 부과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올 2월 정부는 중국산 후판에 대해 최대 38%의 반덤핑 관세를 잠정 부과했으며 지난달에는 중국과 일본의 열연 제품에 대해 최대 33.57%의 반덤핑 관세를 잠정 결정하고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철강 제품에 대한 국가 간 반덤핑 분쟁이 급증하는 것은 글로벌 철강 산업의 구조적 공급과잉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분기점으로 격화된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해 중국산 제품이 아시아 지역에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은 지난해 약 2억 9000만 톤이지만 해마다 1억 6500만 톤이 늘어 2027년에는 초과 생산능력만 7억 톤이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지난해 전 세계 철강 생산의 절반 가까이를 중국이 담당하고 있어 중국의 과잉생산이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영향이 막대하다. 민동준 연세대 교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처럼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철강 반덤핑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며 “미국에 수출할 중국산 철강이 막혀 아시아로 흘러드는 일종의 풍선 효과가 시장 상황을 더 어지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재 상황을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강은 국가기간산업으로 모든 국가가 우선 보호에 나서고 있어서다. 철강 산업이 무너지면 자동차와 기계·건설 등 연관 산업이 잇따라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어 각국은 관세장벽 구축에 적극 나서는 형편이다. 민 교수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결국 조강 생산능력을 조절할 수 있는 ‘역내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한데 출범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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