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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원전 100기 짓는 美부터 EU·日까지…핵심시장 다 내줬다

[韓 원전 수출 50년 족쇄]

<2>K원전 진출 막은 독소조항

추진국가 外 수주활동 불가 명시

진출가능 시장 414기 중 38기뿐

WEC가 韓보다 3배 가까이 많아

이마저도 카자흐·우즈베크 등은

중러 입김에 수주 확률 높지않아

체코 두코바니 원전.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9월 20일(현지 시간)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열린 원전 전 주기 협력 협약식과 터빈 블레이드 서명식을 마친 뒤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내 원전 업계는 한국 측과 웨스팅하우스(WEC)가 맺은 최대 독소 조항 중 하나가 배타적 시장 분할이라고 보고 있다. 국내 원전 기업들이 수십 년간의 노력 끝에 가까스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원전 기술과 노하우를 확보했지만 이번 협정에 따라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 시장에서는 원전 수주전에 참여할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수력원자력은 양측이 합의를 이룬 지난해 말 이후 스웨덴·슬로베니아·네덜란드 등 기존 원전 발주 국가에서 갑작스럽게 철수했다.

19일 서울경제신문이 취재한 ‘한수원·한국전력공사·WEC 간 타협 협정서’에는 “한전·한수원은 추진 국가 이외 고객을 대상으로 신규 원전 수주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말하는 ‘추진 국가’는 체코·중동·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아프리카·남미 지역이다. 반면 WEC는 체코를 제외한 유럽 전역과 영국·일본·우크라이나 및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 시장을 모두 차지했다. 사실상 원전 수출이 불가한 중국과 러시아·인도 등은 합의에서 제외됐다.

지도상으로만 보면 한국이 차지하는 시장 면적이 더 넓지만 각국의 원전 건설 계획을 따져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 세계에서 입찰이 마무리됐거나 입찰을 준비 중인 원전은 총 414기다. 이 중 한국이 진출 가능한 시장에서 계획된 원전은 38기(9.2%)에 불과하다. WEC가 진출 가능한 지역에서 건설될 예정인 원자로가 103기(24.9%)라는 점을 고려하면 WEC 시장이 한국보다 2.7배나 더 크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북미·유럽 지역의 원전 설비 용량이 2023년 343기가와트(GW)에서 2050년 최대 427GW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미국 내 원전 설비 용량을 현재의 4배에 가까운 400GW까지 늘리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근 발표를 고려할 때 미국의 원전 물량이 10년간 100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밖에 협정문에는 시장 분할과 관련해 WEC가 허용하지 않는 한 미국 에너지부와 직접 만나거나 소통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이 진출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국가에서 우리의 수주 확률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가령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각각 총 10기의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입김이 워낙 강한 데다 중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한국이 수주전을 펼치기 쉽지 않다. 아프리카와 남미 시장도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 큰 곳이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을 할당받은 것은 다행스러운 대목이지만 이들 국가는 원전을 한 번도 운영해보지 않아 아랍에미리트(UAE)처럼 수주·건설 과정에서 각종 돌발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중동 원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원전 기반이 전혀 없는 나라는 장비 조달부터 제도 신설까지 고민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신흥국은 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은 경우가 많아 원전 대신 태양광·풍력발전소를 늘리자는 이야기도 나오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한전·한수원이 발급해주기로 한 신용장에도 독소 조항은 숨어 있다. 한전·한수원은 WEC에 원전 1기당 4억 달러(약 5600억 원) 규모의 보증 신용장을 발급하기로 약속하면서 지급 시한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에 WEC가 신용장 전액 또는 일부를 즉시 인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현장 상황에 따라 납기 지연 등 문제가 발생해도 일단 현금을 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 신용장 족쇄는 발급 후 10년 이후 삭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결론적으로 원전 1기당 6억 5000만 달러(약 9000억 원)어치의 물품 및 용역 구매 계약, 1억 7500만 달러(약 2400억 원)의 기술 사용료, 4억 달러 규모의 보증 신용장을 제공하면 원전 사업의 수익성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정해진 기간 내 주어진 예산으로 공사를 마치는 ‘온 타임 온 버짓’ 방식을 수주 때마다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각종 구속 계약이 달려 있지 않은 UAE 바라카 원전 사업도 주계약자인 한전의 수익성이 사실상 적자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UAE 바라카 원전 건설 사업의 누적 수익률은 0.32%에 불과했다. 올해에는 별도로 사업보고서에 누적 수익률을 기재하지 않았지만 초과 공사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충당부채에 반영하고 있어 수익이 마이너스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한수원이 14일 제출한 2025년 반기 사업보고서를 보면 UAE 바라카 원전 관련 누적 손익은 3329억 원에 이른다. 원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원전을 위해서도 WEC와 계약은 다시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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