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빠진 인텔의 ‘구원투수’를 자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인텔의 지분 취득 규모를 10%까지 늘려 최대주주 지위 확보에 나선다. 이런 가운데 일본 소프트뱅크가 수조 원 규모의 인텔 지분 매입 계획을 내놓고 ‘트럼프의 인텔 살리기’에 동참해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쥐려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야심이 설계를 넘어 생산까지 확장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18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다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의 지분 10%를 취득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분 매입 주체는 미국 연방정부이며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 당시 제정한 반도체지원법상 보조금을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일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들은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법에 따라 인텔에 제공된 보조금의 일부나 전부를 출자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인텔은 바이든 정부 당시인 지난해 11월 최대 78억 65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았고 올해에도 군용 반도체 생산 목적으로 3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수령할 예정이다. 인텔 지분의 10%가 현 시가총액 기준 105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액수는 맞는 셈이다. 지분 매입이 실제로 성사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현 최대주주인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보유 지분율 8.92%)을 제치고 인텔의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최근 미 국방부가 희토류 생산 업체 MP머티리얼스의 우선주 15%를 취득해 최대주주가 된 것과 유사한 형태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의 인텔 ‘국유화(nationalization)’ 시도는 인텔의 경영 혁신을 오히려 방해할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실패를 감추기 위해 생산 감축이나 구조조정 등을 피하는 습성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손 회장도 인텔 지분 확보에 직접 참여하는 모양새다. 19일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은 20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를 출자해 반도체 기업 인텔 주식을 취득하는 계약을 인텔 측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이번 계약에 따라 인텔 보통주를 주당 23달러에 매입할 계획이다. 로이터는 시장 정보 업체 LSEG를 인용해 소프트뱅크그룹이 인텔의 6대 주주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손 회장은 인텔 지분 인수에 대해 “반도체는 모든 산업의 기반”이라며 “이번 전략적 투자를 통해 미국 내에서 선진적인 반도체 제조와 공급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2020~2022년 소프트뱅크그룹 사외이사를 맡으며 손 회장과 친분이 깊다”며 “미국 정부가 인텔에 출자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여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소프트뱅크그룹이 인텔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AI 사업에 승부수를 던진 손 회장이 그간 반도체 사업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소프트뱅크가 반도체 설계전문회사 암(ARM)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만큼 인텔에 생산을 맡기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ARM은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회로 설계도를 이미 엔비디아 등에 공급하고 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AI 반도체를 다루는 영국의 그래프코어를 지난해 인수하기도 했다. 닛케이는 “소프트뱅크는 이번 출자를 통해 ARM과 인텔의 제휴를 추진할 것”이라며 “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에서 ARM이 설계한 자체 브랜드 반도체 생산이 가능하다”고 짚었다. 소프트뱅크는 대만 폭스콘과 협력해 AI 데이터센터 설비 기지를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립하기로 하는 등 미 현지 생산 거점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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