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이민 행정을 총괄할 이민청 설립이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에서 사라지는 등 표류하고 있다. 전남 나주의 벽돌 공장에서 벌어진 ‘지게차 결박’ 사태에서 보듯 인권침해 문제가 심각하고, 이주노동자 없이는 우리 산업을 지탱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지난해 이주노동자가 100만 명(체류자 26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이에 준하는 전담 조직 설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처별 업무 쪼개져 사각지대 우려
이민정책 아우를 컨트롤타워 절실
이민정책 아우를 컨트롤타워 절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계획안에는 ‘이민청 설립’ 등 조직 개편 방안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이주민’이란 정책 키워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보장 강화를 위해 정책 개선을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만 담겼다. 지난 정부가 이민 전담 기구 신설을 추진했으나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관련 논의는 실종됐다. 이런 가운데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 등을 두고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우리 이민정책은 비자(법무부), 취업(고용노동부), 결혼이민(여성가족부)식으로 쪼개져 있고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업무 중복과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반면 일본은 이미 2019년 법무부 산하에 출입국재류관리청(ISA)을 신설해 출입국관리와 외국인 수용 등 관련 정책을 통합했다. 정지윤 명지대 이민·다문화학과 교수는 “이민자뿐 아니라 이미 들어와 있는 45만 명의 불법 체류자 문제까지 아우를 한국형 이민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말레이, 강제노동에 美 제재…韓도 소금 수출 막혀
外人 정책 하나 두고 13개 부처 분산에 역할 공백
外人 정책 하나 두고 13개 부처 분산에 역할 공백
지난해 1월 말레이시아의 한 팜오일(야자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 생산 업체에서 약 2만 명의 외국인 직원이 브로커 등에게 과도한 채용 수수료를 낸 사실이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에 적발됐다. 미 관세청은 이를 강제 노동(노동 착취)으로 판단하고 이 업체의 팜오일에 대한 인도보류명령(수입 보류)을 내렸다. 아세안 대표단 파견관은 고용노동부에 이 사례를 보고하면서 “한국도 E-8 비자(계절근로자)에서 민간 브로커가 개입하는 인력 송출의 경우 노동 착취로 간주될 수 있다”며 대응 필요성을 밝혔다. 하지만 E-8 비자 정책은 법무부 소관으로 E-9 비자(고용허가제)만 담당하는 고용부가 관여할 법적 권한이 없다.
법무부 중심의 외국인 출입국 행정 아래 부처마다 흩어진 우리 이민정책은 곳곳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국가 경계가 허물어진 동시에 자국민 보호주의가 강해진 국제 흐름 속에서 이민정책 부실이 언제든 강제 노동이라는 국가적 불명예와 제재로 돌아올 위험이 있다. 더구나 인구의 약 5%를 차지하는 외국인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 산업구조 내에서 이미 필수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시화염색산단의 경우 인력의 약 30%가 이주노동자다. 이민청과 같은 이민 전담 조직 설립을 더 늦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이민정책의 부처별 분산 체계가 부실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지난해 11월 필리핀 정부가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강제 노동 의혹을 제기하면서 계절근로자 송출을 중단했다. 그러자 부처 간 일종의 ‘책임 공방’이 일어났다는 것이 관가의 전언이다. 계절근로자는 법무부 운영 제도지만 국가 간 문제인 만큼 외교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에서는 계절근로자가 농어촌에서 일하는 만큼 농림축산식품부도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시와 고용부가 추진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은 지자체와 중앙 부처의 협력 체계가 부실하다는 점을 방증한 사례로 꼽힌다. 서울시는 가사관리사를 고용하는 가정의 비용 절감 측면에서, 고용부는 가사관리사 근로조건 보호 측면에서 이 사업에 참여했다. 관점이 다른 두 기관의 협력 사업은 줄곧 파열음을 냈다. 가사관리사의 최저임금을 놓고 서울시는 미적용하자고, 고용부는 적용하자고 상반된 입장을 유지했다.
법무부 중심 출입국 행정 체계선 노동자 보호 미흡
고용허가제, 前 정부선 인력 대책 부각…3배 확대
고용허가제, 前 정부선 인력 대책 부각…3배 확대
외국인에 관한 정책은 좁게는 5개 부처가, 넓게는 14개 부처(13개부+1개청)가 함께 맡고 있다. 법무부가 외국인 정책을 총괄하고 고용부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 채용을, 행정안전부가 외국인 정착 지원을 맡는 식이다. 여기에 법무부가 관리하는 입국 비자 기준으로 부처별 역할이 한번 더 나뉜다. 예를 들어 고용부의 고용허가제는 E-9 근로자만 해당하고 동일한 근로자임에도 계절근로자(E-8 비자) 문제는 관여할 수 없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조합 위원장은 3월 국회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토론회’에서 “법무부는 (고용부처럼) 노동정책이나 근로 감독, 사업장 점검에 대해 모르고 권한도 없다”며 “하지만 부처 간 협력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반면 주요 선진국들은 이민정책을 하나의 부처 단위로 통합적으로 관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출입국재류관리청(ISA)이다. 이곳은 법무부처럼 출입국 관리뿐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정착과 지원 역할을 한다. 캐나다의 이민부도 우리로 치면 장관급 부처로서 영주권 정책과 난민 수용 정책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들 국가는 부처를 중심으로 외국인이 살고 있는 지자체와 협력 체계를 구성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전담 조직인 이민청 설립과 고용허가제 개편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국가 간 계약에 따라 해당 이주노동자를 근로기준법으로 보호한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구인난 해결 대책’ 성격만 너무 부각됐다는 지적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한 입국 이주노동자 수를 정하는 연간 상한 규모를 보면 2021년 5만 2000명에서 지난해 16만 5000명으로 3배나 늘렸다. 하지만 경기와 현장 수요를 과도하게 반영했다는 지적 이후 올해 규모를 13만 명으로 하향 조정했다.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도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제약하는 대표적 요인이다. 고용허가제는 원칙적으로 입국한 날부터 3년(재고용 시 최대 9년 8개월) 동안 한 사업장에서 일해야 한다. 불가피한 변경 사유가 아니라면 이 제도를 적용받는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의 허가를 얻어 3회 이상 사업장을 바꿀 수 없다. 이로 인해 이주노동자는 사용자의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는 불리한 종속 관계로 전락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주노동자가 더 나은 사업장을 선택하면서 사업장 스스로 처우 개선이 이뤄지는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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