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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했으니 형 줄여 달라”… ‘감형 거래’ 이용되는 서약서

강남역 살인 의대생, 기증 서약 제출

수용자 커뮤니티서 '감형 꿀팁' 소개

법적 구속력 없어 재판 끝나면 취소

의도 가려가며 발급 쉽잖아…"악용"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한다는 점,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하는 등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굳게 다짐한다는 점은 유리한 정상이다.”

지난해 12월 8일 서울고등법원 제4-1 형사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은 A 씨의 형량을 5년으로 줄였다. A 씨는 마약 구입 의뢰가 들어오면 다른 마약 판매상으로부터 마약이 숨겨진 좌표를 구입하고 자신이 구입한 가격보다 비싼 가격에 되파는 이른바 ‘좌표 딜러’였다. 그는 동종 범행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형 집행을 끝낸 지 6개월도 안돼 취급한 마약류의 규모를 키워 범행을 저질렀지만 항소심에서 되레 감형을 받았다.

20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A 씨의 사례처럼 최근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이 감형 호소 수단으로 장기기증 서약서를 활용하는 일이 늘고 있다. 헌혈증이나 반성문, 탄원서 등과 함께 장기기증 서약서를 제출하면 양형 기준 중 하나인 ‘진지한 반성’에 반영돼 감형 가능성이 높아질 것을 의도한 행위라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의대생 최 모(26) 씨도 이달 19일 상고심에서 장기를 기증하기로 서약했다며 감형을 요청했다. 최 씨는 상고 이유서에 “훼손한 생명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장기기증 서약)으로 참회의 진정성을 보이고자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 교제하던 애인의 머리를 바리캉으로 밀고 강간한 일명 ‘바리캉 사건’의 피고인도 법원에 장기기증 서약서를 제출하며 감형을 호소해 공분을 산 바 있다.

범죄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장기기증 서약이 감형을 위한 ‘꿀팁’으로 심심찮게 공유되는 추세다. 한 수용자 커뮤니티에서는 애인이 마약 사건으로 실형을 구형 받았다는 글에 ‘장기기증 서약서도 같이 내라’ ‘혼인신고를 한 뒤 함께 제출하면 최소 6개월 감형이다’ 등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음주운전 범죄자 사이에도 장기기증 서약서는 실형을 피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꼽힌다.

문제는 장기기증 서약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본인의 의사를 알리는 행위에 불과한 만큼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추후 서약 취소도 가능하다 보니 일부 커뮤니티에는 “서약서만 제출한 뒤 재판이 끝나면 취소해도 무방하다”는 식의 조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피고인의 장기기증 서약 행위를 막을 수는 없다. 이들의 서약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지를 일일이 따져가며 등록증 발급 여부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장기기증이 범죄자의 감형 호소에 악용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자칫 장기기증자들의 의지를 꺾을 수도 있다”며 “양형 요인에 장기기증 서약 여부를 포함하는 것에 관한 우려를 관련 기관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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