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8위 컨테이너선사인 HMM을 부산·울산 등 지방자치단체들과 지역 상공회의소, 해양진흥공사 등이 소유하는 형태로 만들겠다는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의 구상은 동남권 경제권역을 부흥시키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맥락을 같이한다. 해수부뿐만 아니라 HMM,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들을 부산으로 이전시키고 동남투자공사를 설립한다면 동남권을 수도권에 필적할 만한 경제권역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장관은 HMM 지배구조를 이와 같이 바꿀 경우 HMM 경쟁력 강화와 산업은행의 건전성 리스크 해소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은이 보유한 36%의 HMM 지분은 산은의 해묵은 골칫거리이자 HMM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된 배경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규정상 주식 자산에는 250%의 위험 가중치가 적용돼 주식 비중이 높아지거나 보유한 주식의 가격이 오를수록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은 내려간다. 이 비율이 하락하면 산은의 정책자금 공급 여력도 줄 수밖에 없어 산은 입장에서는 HMM 지분 매각이 시급하다.
전 장관은 “산은 지분의 10%는 부산시가, 5%는 각각 부산·울산 상공회의소가 사는 식으로 하거나 부산·울산·경상남도 등이 지역내총생산(GRDP)에 따라 산은 지분을 나눠 소유하는 식의 지배구조 개편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 경우 HMM의 성과가 지방 기업과 정부·시민들의 이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 장관은 또 “기업을 국민·국가가 소유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과거 관치금융 시절의 이야기”라며 “해운 산업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선대를 보유하게끔 한다는 공적 마인드로 HMM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5위 컨테이너선사인 독일 하팍로이드의 경우 함부르크시가 지분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
동시에 전 장관은 동남투자공사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내놓았다. 전 장관은 “북극항로를 신속히 개척하려면 대규모 재원이 필요하고 관련 산업과의 연계도 중요하다”며 “산은이 100% 출자하는 자회사 형태로 공사채 3조 원을 발행하면 최소 50조~60조 원의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 장관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산은이 100% 자회사로 만들었다가 약 5년 만에 해체된 한국정책금융공사와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정책금융공사는 중소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설립됐지만 결국 투자할 곳이 없어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며 “동남투자공사의 경우 설립 시 해수부가 중심이 돼 투자 기업을 발굴하고 관련 시장도 키울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진공이 쇄빙선 건조나 북극항로 신규 거점 개발 등 해운·물류 중심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면 동남투자공사가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그와 연관된 조선·기자재 등 제조업 및 육상·항공 물류 산업을 지원해 나가는 식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해수부는 이재명 정부의 해양·물류 분야 핵심 국정과제인 북극항로 개척도 차질 없이 준비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해수부는 쇄빙 기능을 갖춘 컨테이너선 기술 국산화 및 건조 지원, 북극항로 시범 운항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 장관은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쇄빙 성능을 보유한 상선”이라며 “현재 재정 당국과 쇄빙 성능을 보유한 상선을 새로 만들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년에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추진해 북극항로의 가능성을 우리 기업에 알리고 운항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기업들에 적극 공유할 것”이라며 “북극항로 이용 선박에 대한 항만 사용료 감면 등 국적 기업의 진출을 돕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도 관계 부처와 지속적으로 발굴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해수부는 이재명 정부 임기 내 △어가 소득 7000만 원 달성 △중국의 서해 무단 시설물 설치에 대한 대응책 신속 마련 △해양 사고 인명 피해 50% 저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 장관은 특히 중국이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구조물을 무단으로 설치한 데 대해 “현재 정부는 다양한 외교 채널을 통해 중국에 강력히 항의하고 철거를 요청하고 있다”며 “내년에 중국 서해 시설물 대응 관련 예산을 요구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범 정부 차원에서 우리 측 대응 시설의 규모와 형태가 확정되면 속도감 있게 대응하겠다”며 “어떠한 경우에도 중국 측 구조물로 인해 우리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해양 권익이 영향 받는 일이 없도록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영덕 앞바다에서 가격이 비싼 대형 참다랑어 1300여 마리가 잡혔지만 지역별 어획 한도(쿼터)와 급랭 시설이 모자라 무더기로 폐기된 사태에 대해서는 “쿼터 초과 시 지역별 쿼터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을 개선하고 지자체에서 추진 중인 냉동창고 시설 확충 사업은 유휴 냉동 창고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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