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다자외교 무대 ‘데뷔’를 앞두고 북한이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20’형 개발 소식을 공개했다. 러시아의 기술 지원 덕분에 빠르게 성능을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의 이번 메시지는 전승절 80주년 행사에서 핵보유국의 위상을 공고화하기 위해 신중하게 기획됐다는 분석이다.
2일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전날 미사일 총국 산하 화학재료종합연구원 연구소를 방문해 탄소섬유를 적용한 차세대 ICBM인 화성-20형 개발 현황을 점검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화성-20형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최종 완결판’이라고 자부했던 ICBM 화성 19형 시험 발사 이후 1년도 안 돼 업그레이드가 진행 중인 셈이다. 조선중앙통신은 “탄소섬유 복합재료를 이용한 신형 고체연료 엔진의 최대 추진력은 1960킬로뉴턴(kN)으로 화성-19형 시리즈와 차세대 ICBM인 화성-20형에 적용될 계획”이라고 전했다. 1960kN은 북한의 기존 고체연료 엔진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수치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추진력 수치만으로 보면 러시아·중국의 ICBM에 버금간다”며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1만~1만 3000㎞ 이상의 사정거리는 물론이고 여러 개의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다탄두화를 목표로 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탄두 ICBM은 탄두가 하나인 ICBM보다 요격이 어렵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화성-19형 시험발사를 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화성-20형이 언급되면서 러시아의 기술 지원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 연구위원은 “최근 2년간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해온 만큼 그동안 러시아가 탄소섬유 소재 등과 관련해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도움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연구소 방문은 전승절 행사 참석과 연계됐을 가능성이 크다. 전술핵 미사일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고 생산 증대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핵보유국으로서 인정받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화성-20형이 북한의 선전대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대형 외교 무대 참가를 앞두고 국방력 5개년 계획의 성과를 대외에 과시한 것”이라며 “개발 완료가 아니라 진행 중인 만큼 현 단계에서 기술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국가정보원의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회의 보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연구소를 방문한 후 2일 오후 늦게 베이징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은 3일 열릴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설 예정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2019년 1월 이후 6년 8개월 만이며 그의 다자외교 행사 참석은 이번이 최초다.
국정원은 이번 방중에 최선희 외무상,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뿐만 아니라 부인인 리설주,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동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또 푸틴 대통령과 동급의 의전·경호를 받는 등 각별히 예우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정원은 “3일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톈안먼 망루에서 냉전기 3각 연대의 구도를 재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66년 만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 기간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각각 양자회담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 대해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최적의 카드로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북중 관계의 복원을 통해 대외 운신 폭을 확대하는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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