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가 중요해진 현 시점에서 삼성전자(005930)와 같은 종합반도체기업(IDM), 팹리스 스타트업 등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케이던스가 일조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병훈 케이던스코리아 대표는 지난달 26일 서울 송파구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반도체 설계에서 AI를 얼마나 빨리 적용하느냐에 따라 반도체 설계 기술 영역에서 경쟁 구도가 뒤바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 대표는 올해 1월 케이던스코리아에 대표로 부임하기 전 삼성전자에서만 약 30년을 근무하며 국내 전자 업계에 기여해 왔다. 케이던스로 터전을 옮긴 서 지사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AI 시대의 격렬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승자가 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반도체 업계의 변화를 2000년대 가전 산업에서 삼성전자가 소니를 잠식해가던 당시와 비교했다. 서 지사장은 “제가 삼성에 입사할 때만 소니와 삼성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격차가 컸지만 떠날 때 쯤에는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일본 가전 회사를 다 합친 것 정도로 커졌다”며 “이는 가전이 디지털화되는 흐름에 삼성이 빨리 올라타면서 가능했는데 이런 변화가 AI로 인해 반도체 업계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도체 산업에서는 전자설계자동화(EDA) 툴의 활용에 AI의 성패가 있다고 판단했다. EDA 툴이란 케이던스와 같은 기업들이 제공하는 반도체 칩 설계와 검증을 돕는 소프트웨어다. 서 지사장은 “일상 생활이나 프로그래밍은 챗GPT 같은 범용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챗GPT가 반도체 설계까지 도울 수 없다”며 “반도체 설계에서는 결국 EDA 툴에 AI가 들어가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아도 반도체 설계의 복잡도가 예전보다 10배는 더 복잡해지면서 설계 난도, 인력 충원의 어려움이 증가했다”며 “EDA툴에 AI를 넣어 정합성을 잘맞추는 게 향후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칩을 결합하고 칩을 3차원으로 적층하는 등 패키징 기술이 중요해지는 흐름도 AI가 중요해지는 요인이다. 여러 칩 사이의 신호 이동, 이 과정에서 발열, 간섭 등 고려해야 하는 변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000660)가 개발에 열을 올리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역시 패키징 기술이 핵심이다.
서 지사장은 “6세대 HBM(HBM4)이 되면 D램이 16개까지 수직으로 쌓이게 되는데, 이 많은 트랜지스터 간 상호작용과 특성을 한번에 요약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도 이와 관련된 현존 툴이 없기에 솔루션을 요구하고 있고 현재 이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던스는 반도체 산업에서 쌓은 시뮬레이션 노하우를 기반으로 반도체를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다. 서 지사장은 “EDA 회사로 시작했지만 다른 영역의 최적화나 시뮬레이션도 비슷한 알고리즘에 기반한다”며 “신약 개발, 기류 시뮬레이션, 분자 과학 등 분야에서 복잡한 이슈를 최적화하는 것을 돕는 플랫폼 업체로 거듭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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