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 IFA가 열린 독일 베를린의 ‘메세 베를린’은 로봇과 확장현실(XR) 등 첨단 산업군 기술 각축장이 됐다. 이전까지는 IFA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반도체와 유통기업 등 새로운 산업군의 기업들의 활약상도 눈에 띄었다. 가전 수요 정체와 인공지능(AI) 시대 도래에 따른 업종 간 경계가 흐릿해지는 현상이 맞물려 가전 중심 전시회였던 IFA 풍경도 크게 변한 것이다.
중국 로봇축구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이름을 알린 중국 부스터로보틱스는 올해 처음으로 IFA에 부스를 냈다. 부스에선 교육용 휴머노이드 로봇 ‘K1’과 ‘T1’이 형제처럼 서서 참관객들을 향해 쉴 새 없이 손을 흔들었다. 눈 부위에 달린 센서로 인기척을 감지해 악수를 하러 오자 관람객들이 몰리기도 했다.
차오 밍쉬(Cao Mingxu) 부스터로보틱스 글로벌담당은 “올해 처음으로 IFA에 참여했는데 로봇 기업들의 수는 물론 신제품 발표도 많다”며 “연내 산업용 휴머노이드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표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인 유니트리도 대표 제품인 ‘G1’을 비롯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전시했다. 유니트리는 부스 곳곳에서 G1의 가격이 경쟁 제품 대비 최대 40%가량 낮은 1만 6000달러(약 2200만 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독일 뉴라로보틱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포 애니원’과 집사 로봇 ‘미파’를 선보였다. 포 애니원은 쌓여있는 빨래를 색깔에 맞게 분류하고, 미파는 바닥에 떨어진 인형을 서랍장에 넣는 등 생활밀착형 기능을 선보였다.
스마트 글래스를 들고 나온 전시 부스도 급증했다. IFA가 올해 신설한 혁신상 중 하나인 ‘베스트 오브 IFA 넥스트’를 거머쥔 대만 기업 ‘래티튜드52N’의 부스엔 끊임없이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이 선보인 스마트글래스에는 총 5개의 마이크가 달려 작은 목소리도 뚜렷하게 인식했다. 시연 중인 AI 통역 기능을 체험해보니 스피커로 들어온 직원의 중국어가 곧바로 영어로 통역돼 골전도 이어폰을 통해 전달됐다.
중국 가전 기업 TCL이 키운 레이네오는 증강현실(AR) 글래스 ‘레이네오 X3프로’를 선보였다. AR 시장 강자인 메타의 ‘레이벤메타’가 스피커와 카메라만 탑재했다면, 레이네오의 제품은 디스플레이가 추가돼 활용도를 끌어올렸다.
AI가 행사의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반도체의 존재감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AI 가속기 최강자인 엔비디아는 올해 처음 IFA에 참여했다. 부스를 열지는 않았지만 인근 호텔에서 소비자용 제품 데모를 진행했다.
유통사들도 참여하며 가전 제조만 다루던 행사의 영역도 유통과 공급 단까지 넓어졌다. ‘중국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징동닷컴은 전날 IFA 기조연설에 참가해 유럽 사업 확장 계획을 밝혔다. 한국 쿠팡 등을 비롯해 80~100명의 유통업계 리더가 모인 IFA 리테일 리더스 서밋도 개최됐다.
IFA의 변화 기조에 맞춰 기존에 참여하던 가전 기업들도 기업 간 거래(B2B) 플랫폼을 강조하고 신사업 진출을 암시하는 등 보조를 맞췄다. 삼성전자(005930)는 '스마트 모듈러 홈 솔루션'을 적용한 집 한 채를 전시관 근처에 마련했고 LG전자(066570)는 역대 최대 규모로 B2B 상담 공간을 꾸렸다. 중국 가전기업인 하이센스는 프레스 콘퍼런스 무대에 로봇을 올리고 부스에도 전시하며 사업 영역 확대 의지를 내비쳤다. 이전과 다른 업종의 기업들이 IFA를 대거 찾는 만큼 잠재 고객사 모객을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가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CES나 스페인 MWC에 비해 IFA의 존재감이 옅다는 지적이 최근 들어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며 “반도체와 로봇, 유통 기업들을 대거 유치해 종합 산업 전시회로 거듭나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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