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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위기의 K제조업, 어제를 버려야 산다

中 ‘중국제조 2025’로 기술굴기 실현

수출코리아 엔진 10년간 차갑게 식어

제조업 흔들리면 韓경제 미래도 암울

석화·철강 빅딜이 부활의 신호탄 돼야

김정곤 논설위원




2015년 3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리커창 중국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 단상에 섰다. 그는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2025년까지 핵심 부품·소재의 자급률을 70% 수준으로 높이고 2035년에는 독일·일본, 2049년에는 미국까지 추월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중국 제조 2025’의 시작이다. 이는 단순한 산업 육성책이 아니었다. 이른바 ‘대이불강(大而不强·몸집은 크지만 강하지 않다)’의 자아 성찰이었다. 싸구려 물건을 조립하던 하청 기지에서 벗어나 2049년 중국 건국 100주년에는 세계 최강의 기술 패권국이 되겠다는 ‘기술 굴기(崛起)’ 선언이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 코리아의 엔진이 식어간다는 경고음이 잇따르고 있다. K제조업의 위기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올 7월 “한국 제조업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 제조업의 질적 성장을 언급하며 “인공지능(AI)으로 다시 제조업을 일으키지 못하면 향후 10년 후면 거의 다 퇴출당할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의 경고는 이미 현실이다. 과거 수주 잭팟을 터뜨리며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렸던 석유화학 단지는 가동률이 떨어지며 신음하고 있다. 중국이 대규모 증설을 통해 기초 소재를 자급자족하면서 최대 수출 시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기술로 세계를 호령하던 조선 업계조차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와 기술 추격에 긴장하고 있다. 우리가 ‘짝퉁’이라 비웃고 ‘대륙의 실수’라며 깎아내렸던 중국 제조업은 이제 실력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질주는 놀랍다 못해 공포스럽다. 한국이 반도체 호황이라는 착시에 취해 있을 때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막대한 내수 시장을 무기로 중국 제조 2025를 차근차근 실행했다. 이제 중국은 더 이상 저가품을 만들던 세계의 공장이 아니다. 소재·부품·장비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벨류체인을 자급자족하는 ‘홍색 공급망(Red Supply Chain)’을 완성했고 첨단기술의 표준을 주도하는 제조 강국으로 우뚝 섰다. 조선·디스플레이·배터리·석유화학 등 한국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던 주력 산업은 이제 중국에 추월당하거나 턱밑까지 쫓긴 상태다. 중국 첨단 기업들은 AI와 로봇·우주항공 분야에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노란봉투법과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인세 인상 등 기업의 활력을 떨어트리는 반(反)기업법과 각종 규제의 족쇄를 채우기에 바빴다. 주 52시간의 경직된 적용은 신기술과 미래 먹거리를 위한 연구개발(R&D) 현장의 불을 꺼뜨렸다.

제조업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의 중추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서비스업 발전도 중요하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와 외화는 여전히 제조업에서 나온다. 제조업 근간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울리는 경보음은 단기적 문제가 아닌 제조업의 성장 엔진이 꺼져가고 있다는 구조적 경고음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미래 먹거리를 위한 구조 개혁보다 당장 표를 얻기 쉬운 표퓰리즘에 몰두하고 있다.

K제조업이 살아나려면 분골쇄신의 각오로 환골탈태에 나서야 한다. 어제의 성공 방정식으로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패권 경쟁의 틈에서 살아남기도 어렵다. K제조업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것뿐이다. 실패를 용인하고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빅딜은 첫 단추다. 이를 계기로 다른 석화·철강뿐만 아니라 전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전방위적인 지원 사격도 필수다. 전 세계 각국이 자국 제조업 부활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보조금을 쏟아붓고 세금을 깎아주는 시대다. 우리 역시 과감한 규제 철폐와 세제 지원, 노동 개혁을 통한 노동 유연성 확보 등으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어제를 버리지 않으면 K제조업의 내일은 없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지금 골든타임을 놓치면 K제조업, 나아가 한국 경제의 미래도 없다는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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