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생활할 때 주 52시간 하셨습니까?”(서일준 국민의힘 의원)
“안 했습니다.”(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터프한 협상가’라고 불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해 163일 근무 가운데 해외 출장길에 오른 날만 40일에 달한다고 한다. 취임 이후 92일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전투에 가까운 교섭을 벌인 끝에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이끌어냈다. 김 장관이 국회에서 실토한 대로 밤샘 근무를 불사했기에 극적 합의가 가능했을 것이다.
반면 국제 반도체 전쟁의 최일선에 서 있는 한국 엔지니어들은 더 일하고 싶어도 주 52시간제 족쇄에 묶여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 통과만 남은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빠진 탓이다. 해외 경쟁국처럼 고소득 핵심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무제한 근로를 허용해달라는 반도체 업계의 호소는 노동계와 여당의 반대로 묵살됐다. 정부는 특별연장근로(주 64시간·6개월) 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엔지니어들은 “장시간 집중 근로에 제약이 있는 건 마찬가지”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특별법의 또 다른 축이었던 직접 보조금 지급 조항도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정부 반대로 삭제됐다. 해외에서는 반도체 생산 설비에 투자하는 기업에 수십조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한국은 세액공제 중심의 단기 세제 혜택 위주다. 속도전과 승자 독식의 반도체 국가 대항전에서 이익이 나면 세금을 줄여주는 사후 감면보다 현금성 인센티브의 선제 투입이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데도 한국만 요지부동이다.
반도체특별법이 차포를 다 뗀 ‘반도체보통법’으로 전락한 데 이어 최근 정치권에서는 지방선거를 겨냥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송전망 구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엉뚱하게도 반도체 클러스터 자체를 강제 이전하자는 것이다. 급기야 내란 종식을 위해 삼성전자를 전북으로 옮기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정치가 K반도체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의 발목은 잡지 말라”고 강조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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