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고 때론 엽기적이기까지 한 이런 연구들은 학계에서는 외면 받고 있지만 대중들에겐 오히려 즐거움을 준다. 평소 잠자리에 누워 하는 공상 마냥 엉뚱하고 실없는 아이디어. 모두가 외면했지만 순수한 호기심의 열정만으로 성공한 실험. 이런 연구에 인생을 건 과학자들도 있다. 누가 확신할 수 있으랴? 그들의 실험이 언젠가는 ‘선구적인 연구’로 새롭게 재조명 받을 날이 결코 오지 않는다고.
미국 하버드대 출신 과학자들이 이런 황당하고 엽기적인 연구 결과만을 모아 소개하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이름하여 ‘믿을 수 없는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 ble Research)’. 두 달에 한 번씩 발행되는 이 잡지(www.improb.com)는 최근 발표된 엽기적인 실험들과 과학계의 황당한 뉴스만을 모아 전해주고 있으며, 해마다 각 분야 최고의 걸작들을 뽑아 노벨상이 시상되는 12월에 ‘엽기노벨상(IgNobel prize, ‘무시할만한, 불명예스러운’이라는 의미의 ignoble을 이용해 만든 상)’을 시상하고 있다. 영화제로 따지면 최악의 영화들을 선정해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발표하는 ‘레스버리 영화제’라고나 할까?
이 상은 수상자들을 조롱하고 풍자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지만, 수상한 연구를 꼼꼼히 살펴보는 일은 영화만큼이나 재미있다. 도대체 이 상의 수상자들은 과연 어떤 연구를 한 과학자들일까?‘세상에 하나뿐인 과학’을 소개하는 이 칼럼의 첫 회로 지난 2000년 엽기노벨상 의학 부문 수상작 ‘남녀 성행위시 성기 모습에 관한 MRI 영상’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소개할까 한다.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예술에서 뿐만 아니라 물리학, 천문학, 의학, 공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긴 과학자다. 그는 해부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여러 동물들과 심지어 인간에 대한 정밀한 해부도를 그리기도 했는데, 1493년에 그린 『성교(copulation)』라는 해부도는 남녀가 성행위를 하고 있을 때 남자의 성기가 여성의 질 속에 삽입된 모습을 정밀하게 데생한 그림이다.
다빈치가 그린 이 해부도는 과연 정확한 걸까? 확인한 바 없으니 아무도 모른다.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병원 생리학자 펙 반 앤델 박사는 10년 전 한 동료가 유명 가수의 ‘아~’라는 발성을 하는 동안 입 모양과 혀의 위치, 목 모양을 MRI영상으로 찍는 모습을 보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성교하는 장면을 MRI 영상으로 찍어서 다빈치의 해부도가 사실인지 확인해보자! 그로부터 8년 후인 지난 1999년 12월 8일자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는 그가 촬영한 ‘성행위를 하고 있는 남녀의 MRI 영상’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도 『성교』가 나란히 실린 논문이 발표됐다.
그와 동료들은 7년 동안 TV 광고까지 동원해 실험에 참여해줄 부부 8쌍을 모았다. 그가 했던 실험은 듣기만 해도 엽기적이다. 발가벗은 두 남녀를 원통 모양의 MRI 촬영기 속에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성행위를 하게 한 뒤 발기된 남자의 성기가 여성의 질 속에 삽입된 모습을 단층 촬영했다.
물론 실험은 쉽지 않았다. 긴장이 되어 남자들이 도무지 발기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비아그라’를 복용해야만 했는데, 이 약이 없었다면 연구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8쌍의 부부 중 7쌍이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MRI 촬영기 안 좁은 공간에서 성행위에 성공했다.
이 연구팀이 얻은 MRI 사진에 따르면, 다빈치의 그림은 틀렸다. 우선 다빈치는 정액이 뇌에서 척수관을 타고 내려와 분비되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 천하의 다빈치도 그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정액은 뇌에서 분비된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잘못된 해부도를 그린 것이다.
더욱 새로운 사실은 질 내에 삽입된 남자 성기의 모양이다. 정상 체위로 성교시 질에 삽입된 남자 성기 모양은 의학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여서, 1933년 해부학자 디킨즈는 음경 크기 만한 유리관을 여성의 질에 삽입해 질 속의 음경 모양을 유추한 그림을 해부학 교과서에 싣기도 했다. 레오나르도는 이것을 일직선 모양으로 그린 반면, 디킨즈는 S자 모양으로 휘어있는 것으로 그렸다.
그러나 실제로 촬영해 보니 성행위시 음경은 질 내에서 부메랑 모양으로 휘어있었으며, 삽입되지 않은 음경의 뿌리 부분과 120°각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 피부 속에 감춰져 있던 음경의 뿌리가 전체 길이의 3분의 1이나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성행위에서 성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구에 MRI 촬영이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 논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팀 덕분에 성행위 시 성기 모양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고, 논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8년 동안 계속된 실험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지 짐작이 가지만, 이 실험 결과를 보도한 유럽의 신문들은 이 기사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고 있다. “세상에, 참 별 실험을 다 하네!”
정재승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관련 논문]
Willibrord Weijmar Schultz, Pek van Andel, and Eduard Mooyaart of Groningen, “Magnetic Resonance Imaging of Male and Female Genitals During Coitus and Female Sexual Arousal.” British Medical Journal,
319: 1596-1600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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