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에 있는 위스콘신 의과대학의 병리학 교수인 린 알렌 호프만은 피부세포의 기본 생태, 즉 세포의 분열방식과 그녀의 말처럼 피부세포가 어떻게 ‘인간의 든든한 갑옷으로 변하는지’에 관해 10년 넘게 연구해오고 있다. 알렌 호프만 교수가 배양한 피부세포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대부분의 세포들처럼 약 15주간 생존하는데, 이들 세포가 죽으면 모두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약 6년 전 실험실 관리자인 샌디 슐로서가 오래된 세균 배양 접시를 털어내다가 죽은 세포들 가운데 살아있는 세포군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슐로서는 이것을 불빛 아래로 가져온 뒤 린 알렌 호프만 교수에게 말을 건넸다. “이봐, 린. 도대체 이게 뭐지?” 그러나 교수 자신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세상에! 아마 오래가는 돌연변이 세포인 것 같은데요. 그냥 두고 추이를 살펴보죠.” 그 당시에는 이 세포가 지닌 잠재적 가능성을 깨닫지 못했지만 린 교수는 수년간 연구를 계속했다. 현재 이 세포는 화장품 테스트나 피부암 같은 피부질환의 치료 모델로 사용되고 있으며, 화학물질이 피부에 미치는 유해성 분석에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은 바로 이 피부세포가 화상환자 치료에 사용되는 인공배양피부의 훌륭한 공급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이용되고 있는 다른 어떤 인공 제품보다도 우수할 뿐만 아니라, 주문 즉시 공급할 수 있는 기성품화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알렌 호프만 교수는 이 피부세포에 대해 독점 라이센스를 소유하고 있는 스트라타테크라는 회사를 알게 되었다. 스트라타테크 사는 3년 이내에 화상환자에게 이 피부세포를 시험해 볼 계획을 갖고 있다.
어떻게 이 세포를 개발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알렌 호프만 교수는 감기에 걸린 것처럼 쿡쿡거리며 웃었다. “저도 모릅니다.” 사실 한동안 이 세포는 실험실 내에서 농담거리였다. 실험실 동료들은 서로 옆구리를 찔러가며 “어디 보자, 그 세포들 아직도 살아있는지 모르겠네”하는 식의 말을 주고받곤 했다. 그러다가 세포가 400배까지 불어나 실험실 냉장고가 터져 나갈 지경에 이르러서야 모두들 농담을 그만두었다.
알렌 호프만 교수는 이 세포를 피부조각에 이식시키려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정작 이 아이디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은 것은 작년 위스콘신대학병원 화상센터의 외과의인 마이클 슈르의 전화를 받고 나서였다. 마이클 슈르는 교수에게 이 세포를 연구의 최우선 순위에 두라고 종용했다. 슈르는 현재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공배양 피부가 너무 형편없다면서 배양하는 데 몇 주씩이나 걸리는 데다 너무 얇아서 피부라고 할 수도 없다고 불평했다.
이런 얘기가 있은 지 얼마 후, 인근 지역에 사고가 발생해 한 농부가 화상을 입었다. 트랙터에서 튄 불꽃이 프로판 가스 탱크로 옮겨 붙어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농부는 문자 그대로 몸이 녹아버렸다. 농부의 몸에 남아있는 피부라고는 신고 있던 신발 모양으로 남은 발 뿐이었다.
슈르는 농부의 발에서 떼어낸 작은 피부 샘플을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있는 겐지메라는 회사로 보냈다. 그곳의 배양기에서 피부를 배양하느라 몇 주를 보내는 동안 농부는 마취제에 취해 몽롱한 눈을 한 채 누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알렌 호프만 교수가 임상의학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마이클 슈르는 그녀에게 이식 수술을 지켜보도록 했다. 그리고 이 일은 알렌 호프만 교수에게 일종의 계시와도 같았다.
알렌 호프만 교수는 마이클 슈르 뒤에서 믿기지 않는 듯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비유처럼 ‘거대한 회전 레이저 칼날’같이 생긴 기구가 농부의 몸에서 화상 입은 피부를 벗겨내는 수술광경을 지켜보았다. “마치 도살당한 동물처럼 보였어요.” 경악을 금치 못하며 린이 말했다. “피가 수술대에서 뚝뚝 흘러 떨어지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너무 놀랐어요.” 화상 상처를 제거하자 마이클 슈르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인공피부를 이식하기 시작했고, 이걸 본 알렌 호프만 교수는 자기가 만든 세포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든 것을 아주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건 거의 피부라고 할 수도 없었어요. 비닐 랩처럼 생겼고 물에 젖은 화장실 휴지같은 느낌에 다루기도 너무나 어려웠어요. 바늘로 봉합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외과의사들은 스테플러로 봉합을 해야 했는데, 작은 스테이플 알 몇 백 개가 농부의 온 몸에 박혀 있었지요.”
피부는 우리 몸에서 가장 넓은 신체기관이며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는 재주꾼이다. 체액을 함유하고 있어서 신체를 박테리아와 외부 물체로부터 보호할 뿐만 아니라 절연 역할과 털 성장 및 발한 작용 촉진 역할을 한다. 피부는 표피와 진피,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얇은 외층인 표피는 몸 전체를 감싸고 있고, 유연한 내층인 진피는 표피를 고정시켜 강하고 신축성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광범위한 화상부위를 덮기 위해 외과의들은 부분층 식피술이란 피부이식술을 사용한다. 이 방법은 건강한 피부가 남아있는 곳을 반으로 분할해, 진피 대부분은 원래 부위에 남겨둔 채 표피와 진피 일부분을 화상 부위로 이식하는 것이다. 양쪽 부위 모두 수술 직후에는 심한 발진이 생긴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회복된다.
그러나 이런 이식술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상처가 나아감에 따라 피부를 이식한 부위가 수축하기 때문에 수 차례에 걸친 재수술과 재건술이 필요하게 된다. 큰 화상을 입은 농부처럼 대부분의 중증 화상환자의 경우에는 불행히도 이식할 만한 건강한 피부가 충분히 남아있지 않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외과의는 실험실에서 인공 배양한 피부를 이식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부적절하기 그지없다.
슈르가 농부에게 이식한 피부는 에피셀이라는 제품인데 한 사람의 신체 전부를 충분히 덮을 만큼의 양을 배양하는 데 2주 가량 걸리며 표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부딪히는 문제는 표피가 아니라 바로 진피 구조이다. 진피의 모든 구성요소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거미줄처럼 정교하게 짜여진 진피는 매우 복잡한 3면 구조로 되어 있어서 아직까지 실험실에서 완벽하게 복제된 적이 없다. 따라서, 에피셀이 인조 진피에 잘 생착되어야 하는데 이 인조 진피는 환자의 신체가 서서히 새로운 진피를 형성할 수 있도록 받침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조 진피도 완벽한 건 아니다. 사용이 복잡하기 때문에 수술 성공에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균감염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상피부는 30개 이상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최종 이식 피부는 겨우 4~8개 층 정도의 두께라는 점이다. 게다가 너무나 약해서 수술 후 의자에 앉는 것만으로 이식한 피부조각이 파열될 위험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인공피부를 필요로 하는 화상환자에게는 에피셀이 최선책이다. 에피셀은 면역거부반응 문제가 생기지 않는데, 이는 대다수 화상환자의 면역체계가 콜라겐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콜라겐은 인공 진피의 주요 구성요소로 얼굴의 주름살을 제거하거나 얇은 입술을 도톰하게 만드는 등 성형수술에 자주 쓰이는 재료이다.
다른 인공피부로는 스위스 바젤의 노바티스 사에서 생산한 제품인 애플리그라프가 있다. 이 애플리그라프는 예를 들자면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배양하는 데 소요되는 대기 기간이 필요없는 것이 특징이다. 애플리그라프는 인간 피부세포와 암소의 콜라겐(인대나 혈관 등에 존재하는 섬유성 단백질)에서 만든 진피로 구성되어 있으며 노바티스 사는 이 제품을 곧 화상치료용으로도 개발하길 희망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하지(下肢)궤양에만 사용하도록 허가받은 상태이다. 에피셀의 경우는 각 환자의 피부샘플을 사용해 진피를 배양하며 유아의 포경수술에서 얻은 포피 세포를 사용하고 있다.
기증자로부터의 피부이식은 보통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마련이지만, 노바티스 사에 따르면 애플리그라프는 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태아 발달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신생아 세포에는 면역반응을 촉진하는 성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궁 안에서 발달하는 동안 어머니로부터 거부당하지 않는 것이다.
알렌 호프만 교수의 세포가 다른 세포와 특별히 구별되는 점을 들자면 바로 이 세포가 정상 피부와 같은 두께를 지닌 유일한 인공피부가 되리라는 것이다. 인공 피부의 표피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세포로 만들 것이라고 하는데, 진피를 무엇으로 만들지는 특허관련 문제 때문에 아직 비밀이다. 한편, 이 실험에도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렌 호프만 교수의 세포는 끝없이 성장하기 때문에 ‘무한증식 세포’로 불린다. 그런데 현재 무한증식하는 세포 형태로 유일하게 알려져 있는 것은 바로 암세포 뿐이다.
세포가 한없이 성장하는 이유에는 염색체 이상을 포함한 몇 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인 한 가지 특징은 바로 세포가 ‘헤이플릭 한계’를 위반했다는 점이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의 세포 생물학자인 레오나르도 헤이플릭은 1960년대 초, 정상세포는 분열하는 횟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세포는 약 50회 분열한 후 살아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활발한 분열 활동은 없는 노년기 단계에 접어든다. 세포는 이 노년기 단계 상태에 멈춰 있다가 자연적으로 죽는다. 그러나 때로는 일부 세포가 이런 헤이플릭 한계를 지나서도 분열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런 세포는 거의 대부분 암세포라고 한다.
“이론에 따르면 무한증식 세포집단은 비정상입니다”라고 헤이플릭은 말한다. “어떻게 비정상세포를 이식해서 정상세포인양 활동하도록 둘 수 있습니까? 원인 모를 신기한 기적이 생긴 것처럼 말입니다.”
알렌 호프만 교수의 세포는 실험실에서 무한정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인간 신체를 모방한 환경에서는 정상 피부세포처럼 활동한다는 점이다. “현재 동물실험이 진행 중이며 동물 수명 전 기간에 걸친 피부 이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종양과 악성종양과 관련된 다른 특징들도 관찰해야 합니다. 조직의 경계를 무시하는 세포 같은 것 말이죠.” 알렌 호프만 교수의 반론이다. 그리고 실제로, 교수는 이런 사실에 매우 놀랐다. 이 세포 역시 암 세포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렌 호프만 교수는 예상했다.
암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과연 타인의 세포로 만든 피부를 이식받은 환자가 이를 이물질로 간주해 거부할 것인지의 여부가 또 다른 큰 문제이다. 애플리그라프처럼 알렌 호프만 교수의 세포도 음경 포피 세포로 만든다. 지금까지는 어떤 거부의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현상 조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이 현상 역시 어쩌면 애플리그라프 피부이식 환자의 거부 반응을 없애는 것과 동일한 신생아적 특징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밝혀지지 않은 요인과 암 세포일 가능성 때문에 알렌 호프만 교수의 인공피부가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데 방해가 될까? 미 식품의약국(FDA)에 의하면 무한증식성과 염색체 이상 때문에 승인을 얻지 못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신경 쓰는 것은 안전하고 효과적인가 하는 점이다. 시제품이 입증해야 할 사항은 이 두 가지이다. 분명히 연구자들은 무한증식세포가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시도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수개월 후에야 화상을 입은 농부는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알렌 호프만 교수는 그가 예전처럼 밭에서 일할 수 있게 될지에 관해서는 회의적이다. “살아남긴 했죠”라며 그녀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신체 기능은 크게 제약을 받게 되었어요.” 그녀는 인공피부의 임상실험을 기대하고 있다. 안전성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위험성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축소할 생각도 없습니다”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 세포가 인간을 도울 수 있는 잠재가능성은 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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