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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전 기술로 10일간 일상생활 체험

끔찍한 아침의 시작
커피는 너무 약하고 태엽식 알람 시계 소리는 너무 시끄럽다. 전화가 울리는데 엄마일 수도 있고 아닐지도 모른다. 새로온 이메일도 없다. 크리스피 크림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아, 정말 불면증 치료제라도 있었으면. 왜 내가 PDA도 없는 생활에 자원했을까? 왜 내가 새해 첫날을 흑백 악어 영화나 보면서 맞이하는 계획에 동의했을까? 문명 세계의 다른 사람들은 현란한 색상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안락한 쿠션에서 최신 비디오 레코더로 영화를 보며 새해를 맞이할텐데 말이다. 도대체 내가 왜 2004년의 첫 10일 동안 1954년도처럼 일하고 놀고 파티를 해야 하는 걸까?

필자는 1968년에 태어났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사진들중에 버즈 앨드린이 달에 첫발을 내디디는 방송을 하던 TV 화면 앞에서 아기였던 필자를 안고 서있는 것이 있다. 필자는 PC와 ATM(자동현금지급기)이 등장하기 전의 생활을 체험해 본 세대이기도 하지만 스타벅스에서 최신 무선기술을 이용할 정도로 젊기도 하다. 하드 디스크에 노래 10,000곡을 저장해 두고 있지만 장차 장인이 되실 분의 5,000장이 넘는 LP 수집품을 살펴보는 게 더 즐겁다. 조부님들이 쓰시던 유리잔에 칵테일을 완벽하게 만들어 따라 주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이메일을 확인하고 스포츠 방송을 몰래 보곤 했다. 필자는 마케터들이 말하는 초기 수용자이지만 때로는 대형 TV화면이 등장하기 전 아버지가 그랬듯 벤치에 앉아 스포츠 경기를 라디오로 듣고 싶어지곤 한다. 아마 필자가 동의한 이 임무가 이런 양면적인 성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단순할수록 더 좋은 걸까? 오래 전 구 소련의 니키타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부통령 리차드 닉슨의 미국 기술 우월성 발언을 듣고 난 후 “지금 보여주신 것들 모두 흥미롭긴 하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건 아니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얼마나 많은 게 변했을까?

한 괴짜의 마지막 비행
50년대 생활 체험 실험을 시작하기 전 몇주 동안 필자는 곧 경험하게 될 무료한 황무지에서 잘 버텨낼 수 있도록 닥치는 대로 현대식 생활을 만끽했다. 새 디지털 카메라도 구입하고 가장 좋아하는 블로그를 하루에 여섯 번씩이나 방문하고, 브룩스톤 카탈로그를 4개월치나 읽어 치웠다. 커피를 목에 쏟아붓다시피 하면서 수주 전에 온 메일들까지 뒤적거리고, 입체음향 시설과 안락한 좌석을 갖춘 최고급 멀티플렉스에서 반지의 제왕 3부를 보았다. 실험 규정에 필자가 1954년도에 실제로 살고 있는 것처럼 강요하는 조항은 없었다. 사람들을 “고양이”라고 부르거나 회색 플란넬 양복을 입지 않아도 됐다.

다만 반세기 전에 없었던 기술을 이용하지 않기만 하면 됐다. 분명히 필자의 핸드폰과 소니케어 칫솔, DVD 플레이어와 두 대의 컴퓨터는 꺼져 있었다. 필자의 자켓은 인조 미세섬유로 만들어져 1954년도에는 시장에 없던 것이어서 새 겨울 재킷을 찾아 나섰다. 책상을 어지럽혀 놓은 포스트잇도 없애야만 했다. 싱크대 밑에서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1973년산 넓적다리 가리개는 그대로 놓아두어도 됐다. 1950년대에 생겨나 새로운 신용 시대를 연 후 1952년 즈음에는 이미 수천 명의 상인들이 이용하던 다이너스 클럽 카드는 계속 사용할 수 있었지만 현금자동인출기 카드는 포기해야 했다. 메사추세츠 페어헤븐의 구식 의류 수집가인 크리스 듀발이 필자에게 옛날 코트를 팔았는데, 필자가 알기로는 이 코트가 요즈음 유행하는 약한 천 대신 두툼한 멜튼 면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롱아일랜드 가든 시티의 한 컴퓨터 수리점에서 수집가 토니 캐실로가 원본 리본이 달린 1950년대판 로얄 수동식 타자기를 제공하면서 학급 교사가 아이들에게 타자기가 뭔지 물었을 때 12살난 자기 딸만이 알고 있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52년형 흑백 제니스TV
필자는 토끼 귀가 달린 1952년형 흑백 제니스 TV를 빌렸다. 실험 기간 동안 필자는 약혼녀인 파이퍼도 이런 상황을 겪어 보면 필자를 좀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녀는 필자가 현관문을 들어설 때 Far From Heaven에 나온 줄리안 무어처럼 마실 것을 한 손에 든 채 반기지는 않겠노라고 확약한 바 있다. 한편 타이 음식을 필자의 아파트로 배달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다행히 제너럴 밀스 베티 크록커에서 1947년에 선보인 즉석 케이크는 만들 수 있었는데, 남은 케이크는 1947년 얼 실라스 터퍼가 특허를 낸 터퍼웨어에 보관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54년도 과학계의 기적이었던 피임약을 사용하는 건 필자가 아니라 약혼자였기 때문에 사용이 허락됐다. 아마 본 기사 편집자가 또 한 명의 베이비부머가 태어나는 데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실험이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이 줄어들자 필자는 파이퍼에게 휴대폰을 감추게 하고는 샤퍼 이미지 CD 샤워실용 라디오도 치웠다. 곧 242개의 채널을 볼 수 없게 되리라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하며 에로 비디오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봤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필자 자신에게 썼다:
1월1일부터 10일까지 접속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바닷가나 외진 섬에서 선탠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첨단 기술 잡지에 실릴 구식 기술 체험기사를 쓰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이메일도 안 되고, 휴대폰도 안 되거, 포맨 그릴 같은 것들도 안 된다.
연락을 하려면 212-…-…(자동응답기 없음)로 전화할 것. 편지를 써도 되지만 우편번호는 넣지 말고, 지나다가 들러도 무방함.

1일째
새 해와 낡은 장비
해피 뉴 이어! 이전 18년 동안 새해 아침에 늘상 그랬듯 지독한 두통을 느끼며 깨어났다. 예전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랜 적이 몇 번 있었다.
12시간 전 술을 열 병까지 마셨을 시점으로 되돌아가면 딱 좋을텐데 50년은 너무하다. 필자는 숙취를 간단하게 해결한다. 방법은 800g의 애드빌, 비타민 C 1,000㎎과 풍부한 칼륨을 함유한 에멀전-C 한 갑, 오렌지 게토레이드 한 병과 다량의 물, 그리고 진한 커피와 계란 후라이와 베이컨을 넣은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다. 오늘은 샌드위치와 물 밖에 먹을 수 없다. “신발 신어요. 그럼 싸구려 보드카 탄 블러드 메리 사줄께요.” 파이퍼가 말한다.

그녀 말이 맞다: 54년도에는 스키나 앱솔루트 같은 보드카가 없었으니까. 그당시에는 진이 주류였고 보드카는 희귀한 러시아제 고급술이었는데 스머노프가 처음으로 인기를 끈 브랜드였다. 한편 우유와 계란은 아마도 우유배달부가 갖다 놓은 듯 싶은데, 유효기간도 안 찍혀 있다. 베이컨의 재료가 된 돼지는 아마도 200마리 규모도 안 되는 소형 농장에서 사육된 듯 싶은데, 요즈음은 15만 마리 정도 되는 돼지들이 사육장에 빼곡히 함께 들어찬 채 끊임없이 항생제를 맞으며 사육된다. 아침에만도 이렇다. 1950년대에 보통 미국인들은 플라즈마 TV나 트레도 600 PDA전화기가 아니라 후버 세탁기나 GE 냉장고를 갖고 싶어했다. 요즘에는 보통 사람들이 18개월마다 휴대폰을 바꾸고 가장 인기있는 잡지가 물건 구매를 부추기는 럭키지와 절제있는 구매를 안내하는 리얼 심플지이다. 하지만 속담대로 점점 더 많은 게 변할수록 변하지 않는 것도 늘어난다.
일레인 타일러 메이가 귀향중: 냉전시대의 미국 가족들에서 이야기한 대로 그당시 수행된 켈리 장기 연구서에서는 “남편이 늘 새것만 추구하면서 한 가지에 금방 싫증을 내요”라고 불평하는 여자들의 얘기를 싣고 있다.

53년 특집 ‘컬러TV 방송보는 법’
1953년 11월호 파퓰러사이언스지에서 특집으로 다뤘던 “칼라 텔레비전 방송 보는 법”과 2004년 4월호에서 150시간의 추가 저장 시간을 확보하는 티보 해킹법을 다룬 것 사이에 과연 크게 나아진 게 있을까? 50년 후에는 이웃들에게 허세부리는 방법에 관해 다루고 있을 것이다. 분명 54년도에 필자와 같은 취향의 젊은이라면 새해 아침을 TV 앞에서 보냈을 터라 52년형 제니스 TV를 켰다. TV가 예열되어 켜지는 데 1분이나 걸려 손가락을 두들리며 기다리느라 스트레스가 쌓였다. 음극선 튜브의 금속이 가열되어야만 작동하는 1950년대 진공관식 기술 때문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식 트랜지스터 TV는 바로 켜진다. 지난 50년간 TV 전송기술과 화질은 컬러에서 스테레오 음향으로, 케이블 전송방식에서 위성방송과 디지털 방송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2006년까지 업계 표준이 될 고화질 TV까지 등장하는 등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파이퍼와 필자는 화질이 변변치 않으리라 예상했었는데 52년형 제니스 TV의 화질은 6년된 소니 TV의 화질만큼이나 선명했다.

리모콘이 없어서 TV 앞에 원시인처럼 쭈그리고 앉아 채널을 돌려 본다. 찰리 로즈. 오렌지 보울. 심슨 가족. 만인의 연인 레이몬드. 드루 캐리 쇼. 레노 앤 레터맨.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TV 가이드도 필요없겠지만 내용은 그런대로 괜찮다. 아스피린 두 알을 입에 털어넣고 베리 소네펠드 감독과 데이브간의 재치있는 인터뷰를 보려고 자리를 잡고 앉는다. 20분이 지나자 팟!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화면이 시커멓게 바뀐다.
저절로 꺼지니 성가시게 서로 끄라고 할 필요도 없어서 좋았다.

2일째
제일 지독한건 음식 문제
필자가 1950년대 생활 체험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필자가 무엇보다도 핸드폰 아니면 이메일이 없어 불편해 할 거라고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둘 다 틀렸다. 제일 지독한 건 바로 커피 맛이었다. 필자가 당시 상황에 관한 설명을 요청하자 커피책: 수확부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커피 산업의 해부의 저자인 그레고리 디컴은 “1954년도에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전기식 여과기로 커피를 만들어 마셨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연하게 끓여 마셔야 해요”라고 그가 알려준다. “1950년대식은 커피잔 바닥까지 찻숫가락 모습이 보이도록 연하게 타야 합니다.”50년대에 뉴욕에서 유행하던 커피는 척 풀 오넛이었는데, 우연히도 요즈음 다시 시장을 점유하려 신규 홍보활동을 펼치면서 길거리 곳곳에서 무료 샘플들을 나누어 주고 있다. 필자는 그런 커피를 별로 안 좋아해서 처음 며칠간은 새로 구입한 12잔짜리 여과기를 쓸 일이 없었고, 커피를 마시려면 그냥 밖의 현대문명 사회로 나가면 됐지만 스타벅스 같은 곳은 안된다.

다행히도 필자가 사는 뉴욕은 1950년대에도 식생활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포머 그릴과 전자레인지를 다시 가져다 놓기 전 필자는 파이퍼에게 고전식 레스토랑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좋은 점은 패스트 푸드가 없다는 것이었다. 맛좋은 대형 비프스테이크가 37달러인 피터 루거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바텐더 케니는 1954년도에 제대로 된 맨해튼은 버번이 아니라 호밀로 만들었다고 알려준다. 1929년 이후 쭉 영업을 해 온 아이젠버그의 초컬릿 계란 크림에는 요즘처럼 계란이 안 들어있고 참치 샐러드 요리도 별로 변한 게 없다. 다만 요즘에는 참치 외에 유전자 변형 옥수수나 캐놀라 기름에 튀긴 튀김이 딸려 나온다. “변한 거라고는 소다 파운틴을 싸가는 거”라고 중국 친구 스티브 오가 말한다. 한 유태인이 아이젠버그씨한테서 산 이 가게를 그가 다시 그 유태인으로부터 사들였다. “젊은 친구들은 캔음료를 더 좋아하죠.”

3일째
라디오 전성 시대
지하철로 슬슬 걸어간다. 가멘트지구 근처에 있는 구식 음향영상 제품 상가인 웨이브스로 가는 중이다. 이곳에는 카메라가 내장된 웹 수신형 휴대폰이나 아이포드, 팜 PDA, 낡고 무거운 전자북 등 필자에게도 없는 물건들이 있다. 필자는 1954년도 남자처럼 회색 플란넬 양복을 입지도 않았고 중절모도 쓰고 있지 않다. 당시 남자였더라면 서류 가방만을 들고 다녔을 테지만 필자와는 달리 35세의 나이에 부인과 아이들도 있고, 어느 정도 풍채도 있었을 것이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못하는 필자는 건축가인 필자 주변의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오래전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어깨 너머로 엿듣곤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 당시 그렇게 훔쳐 듣는 게 정말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카자에서 다운받은 앨리샤 키의 노래를 헤드폰으로 요란하게 듣고 돌아다니는 거 보다 훨씬 나았다.

필자는 1954년도에 채택된 편도 토큰과 가장 유사한 편도 메트로카드를 사들고는 웨이브즈로 향했다. 이곳의 브루스 앤 샤롯떼 매거에서 축음기와 실린더 레코더 플레이어, 흑백 텔레비전을 빌려주거나 판매하기 때문이다. 일부 TV에는 TV보다 약간 크고 기름을 채운 확대기가 딸려 있는데, 작은 텔레비전 앞에 놓으면 이 확대기가 영상을 크게 보여줘 온가족이 화요일 밤마다 밀튼 벌 프로그램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 당시에 TV 보는 건 특별한 일이어서 좋아하는 쇼가 방송될 때 모두들 기꺼이 TV앞에 모여들었다. VCR이나 최근의 티보 같은 녹화장치의 등장으로 이런 추세가 바뀌면서 시청자들이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음악광들은 마우스 한 번 클릭으로 어떤 노래든 금새 녹음할 수 있는 “천상의 주크박스”를 꿈꾼다. 필자는 라디오 방송에 특히 매력을 느낀다.

한국 전쟁 후 진공관 기술은 트랜지스터로 교체되었지만 브루스 매거가 설명하듯 진공관은 건재하다. “많은 사람들이 더 따듯한 소리를 내는 진공관 기술을 다시 찾고 있어요. 나무 케이스에 든 스피커가 플라스틱 용기에 든 스피커보다 풍부한 소리를 내죠.”1950년대에 미국인들은 오늘날보다 더 다양한 라디오 방송들을 즐겨 들었다. 물론 위성서비스보다는 채널 수가 적었다. 프로그램들은 사람들이 들어주기 때문에 존재했다. “사람들이 집에 라디오를 여러 대 갖고 있는 경우도 흔했어요”라고 매거가 말한다.

“가족들이 둘러앉는 거실엔 항상 라디오가 있었죠.” 그의 가게에는 예쁜 라디오들로 가득하다. 1950년대에 가격이 내려가자 필코와 제니스, 모토롤라 같은 회사들이 서로 경쟁하기 위해 디자인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그가 설명한다. 마치 요즈음 텔레비전과 컴퓨터 제조사들이 하는 것과 똑같다. 매거가 전원을 켜자 반짝거리는 모토롤라 AM/FM 라디오 한 대를 빌려준다. 필자의 침실에 놓아두었던 물건들 중 가장 멋진 전자제품이다. 그는 나무 케이스에 든 콜럼비아 축음기로 필자가 장인에게서 빌린 78년과 45년도 판을 틀어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도 했다. 볼륨과 잡음 조절 버튼이 두 개 있었다. 주옥같은 곡들이 원음 그대로 수록된 콜럼비아 레코드사의 조니 캐쉬 2번 판을 틀었다. 조니는 최근 사망했지만 그의 정신은 돌아가는 판 위에 아직도 살아있다.

4일째
다이얼식 전화로 비행편 예약
음성 안내를 이용하지 않고 비행편 예약을 시도해 본다. US 에어웨이는 누군가 응답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필자의 전화를 두 번이나 그냥 끊어버렸다. “다이얼식 전화기를 사용하신다면 잠시 기다리세요. 곧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안내 시스템이 자동 안내 방식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헤드셋이 없어서 15분간 전화하는 동안 전화기를 귀와 목에 낀 채 설거지는 엄두도 못낸다. 그런데 문제는 항공사 뿐만이 아니었다. 괜찮은 식당들 대부분이 음성 안내에 따라야 하도록 되어 있다. 기분좋은 멜로디가 나오는 필자의 멋진 무선 핸드폰과는 달리 이 웨슨 일렉트릭 수동식 전화기는 화재나 공습 경보에나 어울릴 듯한 벨소리를 내서 고양이가 기겁을 하고 침대 밑에 숨곤 한다. 그런데다 수화기라도 집어 들면 또다른 쇳소리가 들려온다. “통 연락이 안되더구나”라고 어머니가 불평을 하신다. “이런 실험 난 싫어.”이메일을 받을 수 없다보니 내내 전화벨이 울려대지만 누가 전화했는지를 알 도리가 없다. 완전 노출된 셈이다.이제 겨우 4일째다.

일요일 밤이지만 좋아하는 프로를 볼 수 없어 시나트라 판을 축음기로 틀어 놓고 마티니를 한 주전자 준비한 다음 그전에 이베이에서 4달러에 산 이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1952년형 스크래블 보드 둘레로 친구들을 불러다 앉힌다. 양파를 넣은 옛날식 홍차를 감자칩을 곁들여 마시면서 1954년 당시 24세였던 앳킨스씨가 사람들이 감자칩을 멀리하게 한 다이어트를 아직 발명하지 않았음을 만끽했다.



5일째
밀려드는 허전함
이쯤 되니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부끄럽기는 하지만 이것저것 그리워지는 게 생긴다.
스포츠 경기 점수나 주식 뉴스, 일기예보, 영화 시간과 문명생활에 필수적인 다른 것들을 알려주는 800 서비스 텔미가 그립다. 스티브 맥네어가 얼마나 멀리 던졌는지 알려주는 TV 화면내 정보창도 그립다. 52년 된 고물 TV에서는 화면 아래가 잘려 안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북과 데스크탑 아이맥도 그립다. 자동식 물걸레 청소기가 없어도 바닥 닦는 법을 알아낼 수는 있지만 글 쓸 재주가 없으니 난감하다. 로얄 타자기로 뭘 할 수 있을까? 별로 없다. 새해 이브 파티 고마웠다고 감사 편지를 쓰다가 글씨체가 마치 몸값 요구 협박 편지 같아 미안하다고 부언한다. 어떻게 이런 기계로 소설을 썼을까? 타자기 애호가인 토니 카실로는 타자기 때문에 사람의 창의성이 더 커져 레이 브래드베리와 잭 커로우액스 같은 작가들이 타이핑을 멈추고 생각한 다음 글을 쏟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타자기는 기능과 형식이 완벽하게 조화된 훌륭한 사례”라고 그는 말한다. 필자라면 애플사의 초기 맥킨토시들이야말로 그런 예라고 하겠지만 워낙 오타를 많이 치는 터라 1956년에 베트 네스미스 그레이엄이 발명한 수정액이 아니었더라면 타자기 앞에 앉아 있는 게 고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별로 그리워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수시로 전화 메시지나 이메일을 확인할 필요가 없고, 케이블 모뎀 속도가 느려터졌다고 혼자 투덜댈 필요도 없다. 동일한 스포츠 경기 점수ESPN.com과 사무실 엘리베이터 TV 스크린, 그리고 가판대의 뉴욕포스트 세 곳에서 반복해 볼 필요도 없다. 특히 휴대폰과 전자레인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문서 끝에서 나는 것같은 삑삑거리는 소리를 안 들어서 좋다.

6일째
멋진 드라이브
레니 쉴러와 필자는 52년형 내쉬 스테이츠먼을 타고 브루클린을 지나고 있다. 앞좌석이 뒤로 젖혀져 침대가 되기 때문에 쉴러는 이것을 “클래식 차”라고 한다. 피니파리나의 완벽한 디자인을 갖춘 차체는 베이지색이고 포도주빛의 지붕은 아르데코식 인테리어로 처리되어 있다. 뒷좌석은 필자의 아파트보다도 넓고 고품격 인테리어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자동차는 1950년대에 붐을 이루면서 단순한 교통 수단이나 부의 상징이 아니라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펩 보이스 정비소에 가서 노란색 네오프렌 핸들 덮개로 갈아끼우는 수준의 얘기가 아닙니다”라고 클래식 차량 복원을 전문으로 하는 로스앤젤레스의 정비사 제프리 러브가 전화로 필자에게 말한다. “오히려 고물상에 가서 여러 차종들로부터 특별한 부품들을 사는 겁니다.”

53년형 데소토의 전조등 테라든가 50년형 머큐리의 그릴, 53년형 닷지의 측면 외장, 52년형 머큐리의 전조등 베젤이나 53년형 올드스 모빌 피에스타의 휠캡 같은 것을 구입하는 것이다. 내쉬에는 1930년에 발명된 방향 전환등이 있지만 자동변속기나 파워 핸들은 애석하게도 없다. 그런데 없는 건 이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현대식 법규를 모두 어기고 있는 셈”이라고 브루클린 구식 자동차 협회 회장인 쉴러가 말한다. “안전벨트도 없고, 배기가스 방출도 지독하죠.” 고속도로에서라면 갤런당 20마일로 시속 70마일로 달리겠지만 도심에서는 갤런당 10마일로 달리면서 수많은 부러움을 사게 된다.

즐거운 드라이브가 끝나자 필자는 당황했다. 1954년도엔 YMCA 밖에 없어서 요가나 헬스를 하러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윗몸일으키기나 팔굽혀펴기만으로도 운동이 꽤 되는데다 체육관 회원권보다 저렴하다. 그날밤 영화표를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없어서 콜드 마운틴 표를 사러 1927년부터 뉴욕에서 영화를 상영해 온 대형 단일관 지그펠드에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7일째
빈약한 식단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들이 건강 식단으로 식생활을 바꾸면서 심장병 발생율이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 동맥경화의 주범인 인스턴트 식사가 선보였다. 동네 수퍼마켓의 냉동식품 칸을 돌며 1954년도에 걸맞을 만한 것을 찾다가 스완슨에서 선보인 새 냉동식품을 발견했는데, 계란과 팬케이크, 소세지, 베이컨과 튀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1,030칼로리짜리 제품에는 지방 64g(이중 21그램은 포화지방)과 나트륨 2,090g, 콜레스테롤 690㎎이 함유되어 있다. 이것은 미국 농무성이 35세 남자의 하루 소비 지방량으로 권장하는 것보다 320퍼센트나 높다. 그나마 낳은 인스턴트 식사로 쇠고기와 당근, 감자, 싱싱한 사과를 사들고 집에 오니 파이퍼가 프라이팬에 튀겨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고기만두를 먹고 있었다. 왠지 영양가가 뒤져 보이는 음식을 오븐에 넣으면서 필자는 평균 수명이 단축되는 느낌이었다. “기내식보다도 형편없어 보이네”라고 파이퍼가 말한다. 맛도 형편없어 톱밥과 냉동건조시킨 가죽 신발 중간 정도의 맛이었다.

8일째
휴대폰의 꿈
낮에는 아무렇지도 않다. 파이퍼도 필자가 그렇게 침착한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밤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기술과 관련한 악몽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한 번은 큰 건물의 1층에서 걷고 있는데 스프린트사의 한 영업사원이 사무실마다 돌아다니며 괜찮은 조건에 신형 휴대폰을 광고하고 다녔다. 그런데 망설이던 필자가 결심을 하고 사려하자 그는 가고 없었다. 또 한 번은 한 친구가 필자의 휴대폰에 물을 엎지르고는 발뺌을 했다. 자주 꾸는 꿈에서 필자는 친구에게 전화를 여러 차례 걸지만 계속 엉뚱한 번호로 걸어댄다.
머리를 검사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루이스 린 박사를 만나보러 웨스트사이드 북쪽으로 향했다. 린 박사는 90세의 정신과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로 개업한 지 50년이 넘었다. 그의 희 머리와 붉은색 가죽 의자는 눈에 두드러져 보인다. 필자는 의사에게 기술로부터 격리되어 혼란스럽고 우울해졌다고 말하고는 1954년도에 필자와 같이 계속 우울해지는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법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당시 전기충격 요법 또는 충격요법이 사용됐다고 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전후 기술에 열광하면서 충격요법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그가 필자에게 말한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참전중에 이 요법을 처음 접했다. 하지만 충격요법은 전성기에 오용되면서 건선이나 동성애용처럼 전혀 엉뚱한 용도로 사용되면서 1960년대 들어 인기가 시들해졌다. 정신병 치료에 관한 켄키지의 1962년 풍자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람은 충격요법에 반대하는 분위기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최근 개선과정을 거친 충격요법이 다른 일반적 처방에 별 반응이 없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를 합법적으로 치료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요즈음엔 환자들의 부상을 막기 위해 사전에 치료를 하는데, 뇌의 좌반구에 있는 언어 및 기억 중추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 적절한 부위에 한해 짧은 전기 충격만을 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상실은 가장 큰 부작용이다.

전기충격 요법에 필자가 주춤하자 린 박사는 1950년대에 정신질환 치료에 사용됐던 리튬과 진정성 항정신병약, 진통제 일레빌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알려준다. 이 약들은 처방전이 있어야 하지만 프로작과 졸로프트, 팩실과 같은 약품들이 일반적으로 더 널리 사용된다. 작년 미국에서는 이 신형 항우울제들이 1억4,200만 건 넘게 처방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약들이 만능해결책은 아니다. 수 주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기억상실 같은 부작용도 가볍게 넘길 게 아니다. 하지만 충격요법이 널리 과용되던 1954년도와 같이 이 신종 약품들도 무책임하게 남발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메스꺼워진다. 갑자기 좀 나아진 듯 싶으면서 빨리 병원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9일째
카드없이는 어려운 금전 문제
살을 에는 겨울 추위에 떨며 정신을 차려 보니 집에서 수마일 떨어진 곳인데다 수중에 돈도 다 떨어졌다. 전철을 타고 집에 갈 돈조차 마련할 방도가 없었다. 이 근처에 돈을 좀 빌릴만한 친구가 있긴 한데 PDA가 없이는 그의 주소를 알 수가 없다. 거리를 뒤지며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유료 전화기를 찾아서 마지막 동전을 넣었더니 통화중이다. 물론 내 동전은 전화기가 이미 삼켜버렸다. 이런 것들을 늘상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지면서 윌리엄 깁슨이 한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미래는 이미 도래해 있지만 공평하게 분배가 안됐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은행에 가는 것이다. 자동현금지급기가 아니라 은행 카운터로 가는 것이다. 창구로 다가간 필자는 쾌활하게 생긴 다이앤이란 출납원에게 현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카드로 인출하라고 말했다. 마침 카드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하자 “그럼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 저희가 어떻게 알죠?”라고 그녀가 똑부러지게 되물었다. “제 계좌를 조회하는 다른 방법은 없나요?”라고 필자가 다시 물었다. “이러시면 제 일이 더 힘들어져요”라며 명랑한 기색이 사그러든 채 그녀가 투덜댄다.

10일째
마지막 날의 고요한 축복
50년대 체험 쇼 마지막날 밤 파이퍼와 필자는 집안에 머물러 있었다. 독서에 점점 빠져 든 필자는 데이빗 갈랜드의 토요일 밤 공영 라디오 쇼 스피닝 온 에어를 나지막히 틀어 놓고 파이퍼와 독서를 하고 있다. 쇼 진행자는 구글을 아무리 뒤져도 찾아내기 어려운 코니 컨버스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의 곡들을 계속 틀어 준다. 갈랜드의 초대 손님으로 나온 진 데이치는 컨버스가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창법으로 노래를 했지만 시대를 다소 앞서갔다”고 설명한다. 컨버스가 직접 작사하고 데이치의 거실에서 1954년에 녹음한 나직하고 낭만적인 노래를 갈랜드가 틀어 준다. “무성하게 자란 풀숲 속에서 갈 곳을 잃어버렸네”라고 컨버스가 읊조린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다. 12시간 후면 필자는 다시 실제 세계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곳에서는 핸드폰 소리에 벌떡 일어나고, 스포츠 센터가 거실을 가득 차지하며, 432통의 이메일이 회신을 종용하고 어머니와 쉽게 연락이 닿을 것이다. 쇼타임의 더 엘 워드를 언제든 진하고 비싼 커피를 마시며 다시금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약혼자와 웅크리고 앉은 필자의 발끝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누워 있고, AM/FM 라디오는 반짝거리고 전화기는 끊겨 있다. 아직 1954년이 몇 시간 더 남았다. 아주 근사한 해이다.

1.1978년에 선보인 틴슐레이트 같은 섬유는 미세섬유로 만들어진다. 이 초미세 인조 섬유는 기계로 짜는 양모나 면과는 달리 녹인 다음 스크린 위에서 공기로 식혀 제작된다.
장점: 미세섬유 물질들은 방수성이 좋고 가장 미세한 비단보다도 얇고 신축성이 뛰어나다.
2 .포스트잇은 지방흡입술이 등장한 1974년에 발명되었다.
3. 멜튼은 요즈음 생산되는 일반 제품보다 더 두꺼운 양모 제품으로 능직이나 공단으로 되어 있어 표면이 부드럽다.
생산과정에서 양모는 보통 약산성을 띤 뜨거운 비눗물에 담궈진다. 멜튼 양모는 비눗물 농도가 두 배나 되는 용액에 다른 양모보다 10배나 긴 시간동안 담궈두기 때문에 특히 더 두꺼워진다. 마무리된 섬유는 빗질을 해 껍질을 벗겨내기 때문에 멜튼 양모에 공단 같은 윤기가 흐르게 된다. 온갖 찬사를 받아온 이 코트는 가격도 35달러에 불과하다.
4 .1950년 미국 전체 가구중 10퍼센트가 텔레비전을 보유했던 것이 2000년에 98퍼센트로 증가했다.
약 300만 가구가 티보나 리플레이TV, 혹은 이와 유사한 DVR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5 .2000년 미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1,100만 명이 미혼 상태로 파트너(동성과 이성 커플 모두 포함)와 살고 있다.
1950년대의 인구조사 자료에는 동거 여부가 파악되어 있지 않았다.
1950년에는 남성의 32퍼센트와 여성의 34퍼센트가 미혼이었는데 현재는 각각 42퍼센트와 45퍼센트를 차지한다.
6. 사실 피임약은 1951년에 발명됐지만 1960년대까지는 판매가 되지 않았다.
1950년대에는 콘돔이 주로 쓰였다. 콘돔은 1844년에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는데 이때 찰스 굿이어가 고무 경화법 특허를 냈다. 1930년대에 라텍스가, 1957년에 인공 윤활법이 도입되었다.
7 .우편번호는 우체국 직원 로버트 오랜드 문이 고안해 미국 연방우체국이 1963년에 채택했다.
미스터 ZIP으로 알려지게 된 문은 1970년부터 1977년까지 워싱턴에서 전국 우편배달 총책임자로 근무했다. 그는 2001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8. 진통제 애드빌의 유효 성분인 이부프로펜은 ATM과 바코드 스캐너, 인공수정이 등장한 1969년에 발명되어 1984년 FDA에 의해 일반 판매 승인을 받았다. 1954년에는 유일한 진통제가 아스피린이었다.
아스피린은 원래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치료제로 1890년대부터 판매가 되었다. 타이레놀은 어린이용 종합제제로 1955면 선을 보였는데 빨간 불자동차 모양으로 포장이 되었다. 성인용 첫 타이레놀은 1960년에 등장했다.
9. 필자는 게토레이드가 오랫동안 장수하는 음료수가 되기를 바랬었지만 그런 운이 없었다.
게토레이드는 1965년 플로리다 대학생들의 갈증해소 음료를 연구중이던 플로리다 대학 연구원들에 의해 탄생했다. 이 음료 개발 이후 플로리다 팀은 연속해 ‘65년과 ’66년 미식축구 게임에 출전했다.
10 .2차 세게대전 이후 소비가 전례없이 늘어났다. 전후 4년동안 미국인들은 2,000만 개의 냉장고와 550만 개의 스토브, 1,160만 대의 TV를 구입했다. 에어컨도 날개돗힌 듯 팔렸다.

11. 현대의 TV회로 기판에는 트랜지스터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아직도 스크린에 전자를 쏘아 영상이 형성되도록 하는 음극선관이 들어 있다. 트랜지스터는 1947년 뉴저지 머레이 힐에 있는 AT&T의 벨 전화 연구소에서 발명되었다.
12. TV가이드는 1953년 4월 3일에 등장했다.
당시 가격은 15센트였고, 첫 호 표지에는 루시와 데시의 아기 데시 아마즈 주니어가 실렸다.
13. 최초의 상용 전자레인지는 1947년 시장에 선을 보였지만 요즘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제품들의 초기 버전처럼 크기가 어마어마해 높이가 170㎝이고 무게가 300㎏에 달했다. ‘60년대 말 가격이 하락했고 1976쯤에는 식기세척기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다.
14. 래이 크록은 첫 맥도널드 프랜차이즈를 1955년 일리노이주 데스 플레인스에서 열었다.
차에 탄 채 주문하는 매장은 1975년 애리조나 시에라 비스타에서 처음 개장했다.
15. “버번보다 향과 맛이 뛰어난 선조격인 호밀은 금주령으로 타격을 입은 뒤 결코 회복하지 못했다”고 앤소니 지글리오는 말한다. 그는 보스톤 매거진 와인 앤 스피릿 컬럼니스트이자 출간 예정인 뉴욕의 칵테일들의 저자이다. 1933년 알콜이 다시 합법화됐을 때 주류 회사들은 제품들을 서둘러 출시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숙성에 4년 걸리는 버번에 비해 6년이 걸리는 호밀을 무시했다. 더구나 호밀의 강한 맛은 가벼운 진에 익숙해져 있던 음주가들에게 달갑지 않게 여겨졌다.
16 .상업적으로 재배된 최초의 유전자 변형 식품은 플라브르사브르라는 토마토이다. 1992년 칼진이라는 한 캘리포니아 회사에서 생산된 이 토마토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유전자 처리 식품은 그 이후 미국에서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미농무성은 2003년 경작된 7,900만 에이커의 옥수수 중 38퍼센트와 7,300만 에이커의 콩 중 80퍼센트가 유전자 처리 변종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17 .1975년 소니는 최초의 가정용 비디오카세트 레코더(VCR)인 베타맥스를 만들어냈다. 1년 후 일본 빅터사(JVC)는 한 개의 비디오에 더 많은 비디오 자료를 녹화할 수 있는 다른 포맷의 VCR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소니는 곧 VHS 생산 체제로 바꾸었고 ‘80년대 초 VCR이 붐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VHS가 표준이 되었다.
18. 버튼식 전화기는 1963년 AT&T의 벨 전화 연구소에서 발명되었다.
19. 발신자 ID는 1983년 현재 루슨트 테크놀러지의 한 부문인 AT&T 벨 연구소의 캐롤린 더우티가 특허를 받았다.
20. 스크래블은 1948년 파커 형제가 보유한 상표로 ‘50년대 초 메이시의 사장이 휴가중에 이를 발견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1954년 이전에 선보인 클루, 모노폴리, 캔디랜드, 소리 같은 보드 게임들은 요즘에도 인기가 높다.
하지만 파커 형제의 리틀 레드 스쿨 하우스와 카우보이 라운드업, 1950년대부터 내려온 골프 주사위 게임 비라인 프로덕츠 갤로핑 골프 같은 게임들은 기억에서 잊혀져 버렸다.


21. 1950년대에 앰피타민은 체중 감량을 위해 종종 사용되었다.
하지만 1950년대 말 나탄 프리티킨이 곡물과 채소류로만 된 식단으로 심장병 치료를 시도하면서 새로운 경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균형잡힌 영양분 섭취를 원칙으로 하긴 했지만 고섬유질, 저지방 프리티킨 다이어트법은 최근들어 고지방 음식 섭취를 권장하는 앳킨스 다이어트법이 등장하면서 인기가 시들해졌다.
22. 브래드버리는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화씨 451도(1953년 출간)를 UCLA 도서관 지하에서 동전을 넣으면 작동하는 유료 타자기를 이용해 집필했다.
23. 다시 생각해 보면 커로우액은 글을 쓰기 전에 멈춰서 생각해보던 사례로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그는 타이핑 용지를 테이프로 붙여 작품 길위에서를 21일만에 탈고했다. 그와 동료들은 1950년대 소비주의 전성기에 지하 예술가 운동으로 크게 번창했다.
커로우액은 알렌 진스버그와 로렌스 퍼링게티가 포함된 이 그룹에게 비트 제너레이션이란 별칭을 붙였는데, 최상의 축복이랄 수 있는 미와 실용성의 겸비를 추구한 이들의 노력에 대한 찬사였다.
24. 1951년 크라이슬러가 선보인 수력 파워 핸들은 ‘50년대 중반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39년형 올드스모빌은 자동변속기를 갖춘 최초의 모델이었다;
‘50년대 중반 이 옵션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여성 운전자들을 고려하면서 보다 널리 사용되었다.
25. 요가의 기원은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고급 디자인 매트나 힙합 음악이 인기를 끌고, 타임지 표지에 모델 크리스티 터링톤이 메뚜기 자세로 등장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26 .1950년에는 미국인 10만 명당 585명 정도가 심장병에 걸렸다. 1999년에는 이 수치가 10만 명당 268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1950년대에 생명보험 회사들은 보험금 지급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 여성들에게 지방과 심장병의 위험에 관해 교육하며 보다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도록 장려하는 캠페인에 착수했다.
27 .1953년 스완슨은 전후 시간 절약형 현대식 전자제품에 대한 수요와 텔레비전의 인기라는 두 가지 경향에 신속히 대응했다. 1,000만 개가 넘는 인스턴트 식사가 전국 배급 첫 해에 판매되었다.
소비자들은 98센트로 샐리스베리 스테이크나 가공육제품, 닭튀김 중에서 골라 살 수 있었다. 이 현상은 1987년 한 인스턴트 저녁 식사가 스미소니언 협회에 등장하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게 되었다.
28. 질병예방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2001년 필자의 평균 수명은 75세였고 약혼녀는 80세였다.
1954년도였더라면 필자가 67세, 약혼녀가 73세였을 것이다.
29 .프로이드는 1909년 미국에서 첫 강의를 했다. 1943년 정보국 관리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정신분석을 시도했다.
‘50년대에 이 방법은 수많은 정신질환 치료에 사용됐다.
30. 전기충격요법(ECT)은 1940년대에 등장했다. 최고 600볼트의 전류가 환자의 머리 양측면에 부착된 전극들을 통해 뇌에 전달되었다.
의자에 끈으로 묶인 채 마취제나 근육이완제 주사를 맞지 않은 환자들은 격렬하게 저항하다 골절상을 입기도 했고, 심각한 기억상실증을 겪기도 했다.
31. 최초의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인 프로작은 1988년 등장했다.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이전 제품들보다 심각한 부작용이 덜해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증 경감 효과를 제공했다.
32 .주옥같은 챈트식 코니 컨버스의 노래를 들어볼 수 있는 사이트: wnyc.org/shows/
spinning/episodes/0109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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