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美 생물학전대비연구에 혈안

연구실에 들어서기 전 라몬 플릭은 둥근 헬멧과 손목부분에 두 겹으로 밀봉된 고무 장갑, 장화가 달린 10파운드짜리 우주복부터 입는다. 갈베스톤 소재 텍사스 대학 의학부의 바이오 세이프티 레벨 4 연구실 책임자인 35세의 라몬은 화학 샤워실을 통과해 연구실로 들어서는데, 이곳은 2,000평방 피트짜리 살균된 흰 방이다. 공기 밀폐식 문이 그가 들어가자 닫힌다.

이 연구실 바닥 밑은 바로 위 연구실의 적막한 분위기와는 달리 수많은 관들이 뒤얽힌 채 현재까지 발견된 것들 중 가장 작은 미생물들을 포착할 수 있는 이중 HEPA 필터들을 통해 공기를 요란스럽게 뿜어낸다.

파이프들 옆에 있는 배수구들은 연구실에서 배출되는 폐수를 모니터하고 살균한 다음 하수구로 내보낸다. 연구실은 음압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출입문에 조그만 틈이 생겨 방안 전체가 오염되더라도 공기가 오염 안 된 지역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온다.

플릭은 공기 튜브를 실험복에 연결한다. 튜브는 팽창하다 21℃에서 멈춘다. 바이오 세이프티 덮개를 쓴 채 플릭은 크리미언 콩고 출열혈 바이러스를 화학적으로 얼린 다음 전자현미경으로 이 치명적인 균을 조사한다. 가축에 붙어 살며 벼룩에 의해 전염되는 이 바이러스는 매년 수백 명이 사망하는데, 사망자들은 대부분 중동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터키와 그리스의 도살장 일꾼들과 양치기들이다. 고열과 두통, 구토, 몸통 아래쪽 통증 같은 초기 증상이 3~5일 지속된 후 여러 기관들에서 내출혈이 발생하고 손과 발에서 피가 난다. 감염자의 30퍼센트 정도가 사망한다.

“물론 처음에는 불안해 합니다”라고 플릭이 말한다. “하지만 바이러스 연구를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 져 실험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데, 불편한 점은 불안감이 아니라 화장실 가기가 번거롭다는 겁니다.”

플릭과 저서 The Hot Zone 집필에 영감을 준 베테랑 바이러스 연구가 C.J. 피터스를 비롯한 갈베스톤 연구소 동료들의 실험은 다루기가 몹시 힘든 복제 메카니즘을 가진 세균들을 대상으로 한다. 크리미언 콩고, 에볼라, 말버그 바이러스 및 동종 바이러스들은 DNA내의 유전 정보를 단백질 생산 지시로 변환하는 화합물인 RNA로만 구성되어 있다. 크리미언 콩고의 항생제를 만들기 위해 플릭은 우선 RNA 바이러스의 DNA 복제본을 만들어 이 세균의 전염성을 줄인 다음 바이러스를 다시 RNA 형태로 복원해야 한다.

생물학적 방어 무기 연구
이렇게 하려면 바이러스의 독성이 없어지도록 계속 변화시켜야 하는데 아주 죽게 해서는 안 된다. 플릭은 크리미언 콩고의 전염성을 제거해 백신을 만들지만 세균 자체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이런 경계선은 아주 미묘하고 밝혀진 바가 많지 않기 때문에 백신 제조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이다. 그렇지만 플릭의 동기는 단순하다. 그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외부 세계에 알릴 수단조차도 없는 곳들에서 매년 수백 명이 죽게 하는 질병을 박멸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연구 자급 지원을 받았을 때 플릭은 이런 동기를 내색하지 않았다. 보건원에서 들으면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건원은 생물학적 방어측면의 구체적인 목표를 요구합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그래서 전 제 연구 목표가 크리미언 콩고 테러에 대비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전 그들이 원하는 백신 개발에 관심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으니까요.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합니다. 제 연구 대상이 우연히도 정책입안가들이 치명적이라고 믿는 대상과 일치한 거죠.”

좀 넓은 시각에서 보면 텍사스 대학 의학부 연구실에서의 활동들은 미국 전염병 학자들과 현재 미국의 생물학 무기 개발 노력간의 긴밀한 관계가 잘 드러난다. 2001년 생물학 방어무기 연구에 소요된 연구비는 미국내 전염병 연구 주요 지원 기관인 국립 알러지 및 전염병 연구소(NIAID) 예산의 2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런데 2005년 이 수치는 40퍼센트로 증가했다. 이 기관은 올해 생물학 공격시 사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으면서 치명적이고 생소한 라사 열병균, 에볼라 바이러스, 크리미안 콩고 같은 병원균 연구비로 16억5천만 달러를 집행하게 된다. 이 금액은 이 기관이 별도로 책정해 둔 HIV 연구비 15억 달러, 감기 연구비 5,800만 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엄청난 액수이다.

바이오테러리즘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맨하탄 프로젝트처럼 긴급하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생물학방어 프로그램 개발이 정당화됐지만 NIAID 소장인 앤소니 파우치는 이런 노력으로 상당한 부수적 혜택도 결국 거둬들이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2002년 국회 위원회에서 그가 밝혔듯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북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박테리아들을 비롯한 수많은 박테리아에 효과적인 다양한 면역제들이 개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연구로 면역체계의 분자 및 세포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는데, 이를 통해 암과 결핵성 피부병, 관절염 및 특정 신경계 질병들의 진단 및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파우치는 설명했다.

생물학적 테러대비 모금활동
하지만 이 연구가 확장될수록 그에 관련된 논란도 가중될 것이다. 이 계획은 보다 시급한 많은 다른 질병들을 제치고 생물학 무기 제조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미생물 실험들만을 편협하게 강조함으로써 국가적 연구 우선 순위 체계를 위험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와 생물학방어 정책 분석가들이 점차 늘고 있다. “생물학 무기가 아니면 아예 논의의 대상도 되지 못합니다”라고 피터스가 말한다. 더욱이 바이오테러리즘 연구의 확산 속도는 너무 빠른 반면 경찰의 대처 속도는 이에 미치지 못해 잠재적인 테러범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 것은 일부 연구의 도가 지나쳐 국제 생물학 무기 협약을 위반해 다른 나라들도 똑같은 연구를 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을 보호하려 너무 서두르다가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셈이죠”라고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의 생물학 무기 정책 전문가인 마크 휠리스가 경고한다.

이 모든 것이 2001년 탄저균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이 사건에서 사용된 분무형 미생물들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유독하고 농도가 높다고 FBI 수사에 깊이 관여한 정부 및 민간 부문 전문가들이 밝혔다. 이런 공격의 가능성만으로도 부시 행정부 전체가 술렁거렸다. 만약 테러범이 흰 가루가 뚝뚝 떨어지는 조잡한 봉투에 탄저균을 넣는 대신 여러 장소에서 환풍기를 통해 탄저균을 퍼뜨려 한 번에 수 천명을 공격하려고 결심했더라면 당국에서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책입안가들 사이에서는 탄저균 테러범이 당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생물학 방어 프로그램 연구원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가 이 사건을 이용해 정부에 생물학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려 했던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테러는 효과가 있었다. 9월 18일자 첫 편지가 배달된 후 몇 달 이내에 정부는 황급히 복합적인 생물학 테러 대책을 위한 신규 자금 모금 로비활동을 전개했다. 테러 대책으로 나온 안들은 미식축구장 6개 크기의 생물학안전 연구소 신규 설립과 가장 치명적인 외국 바이러스 연구를 위한 의료 연구 지원, 보툴리누스 중독증과 전염병, 에볼라 같은 세균 퇴치용 백신 개발 제약회사에 대한 특별 인센티브 제공이었다. 2002년 5월 국회에서는 첫 예산으로 46억 달러를 승인해 10개가 넘는 정부 기관들에 분배되었다. 피츠버그 대학 의료센터 생물안보 연구소의 한 논문에 의하면 그 이후 이 금액의 5배에 해당하는 총 예산이 할당되었다. NIAID의 생물테러방어 연구 예산은 현재 2001년도에 비해 40배에 달한다.

구 소련 생물학 무기 프로그램
생물테러 위협의 상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1987년도의 한 연구에서 연방 비상 관리 기구 이사인 루이스 기우프리다는 탄저균 포자 8그램으로 5,000그램의 핵장치나 80만 그램의 신경 가스에 상응하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밝혔다. 생물학적 병원체는 아주 작다. 미생물은 야간 우편을 통해 미국내로 반입될 수 있다. 더구나 생물학 무기 제조법은 쉽게 구할 수 있다. 비밀리에 진행되던 구 소련의 생물학 무기 프로그램 연구 과학자들이 200명 이상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전은 대단히 효과적인 방식이라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빌 패트릭이 말한다. 그는 1969년 이전 미국 생물학무기 프로그램 제품 개발 책임자였고 지금은 정부의 생물테러방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생물학 무기는 확보나 은닉이 핵무기나 화학무기보다 용이하기 때문에 소규모의 대상에 대한 정밀한 공격에 효과가 큽니다.” 하지만 테러범들이 미생물 은행이나 테러 주동 국가들로부터 탄저균이나 전염병균, 에볼라 바이러스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세균을 무기로 만들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고 적절한 장비를 구해야 한다. “병원균들이 감염성을 띠게 방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라고 스탠포드 대학 국제 안보협력 센터 과학 프로그램 소장인 딘 윌커닝이 말한다. 지금까지는 현재 가동이 중단된 미국과 구 소련에서의 프로그램들처럼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복잡한 정부 연구들만이 공격에 사용할 만한 양의 생물무기를 개발해 내는 데 성공했다.

2002년 2월 부시행정부가 생물테러를 국정 주요과제로 정한다고 발표하자 질병 억제 및 예방 센터(CDC)는 이틀간의 회의를 열고 학게와 공공 및 민간부문 연구소의 과학자들을 초청해 NIAID의 새로운 생물테러방어 안건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과제들을 찾아내도록 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과학자들은 잠정적으로 세 가지 부류의 생물테러 병원균들을 A, B, C로 분류하고, 이 미생물들을 위험 수위에 따라 여러 범주로 나누었다. “A” 그룹의 세균들은 잠재적인 생물무기로 가장 큰 관심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연구비도 가장 많이 책정되었다.

C.J. 피터스의 재미있는 표현처럼 이 “연기 자욱한 방”에서 6종의 미생물이 최종 선정되었다. 탄저균과 천연두, 역질, 보톨리누스, 야토병, 에볼라와 마버그 바이러스를 포함한 바이러스성 출혈열 등이다. “저희는 확실하게 검증된 것들만 목록으로 작성했습니다”라고 피터스가 말한다. “이 병원균들은 모두 미국이나 소련, 혹은 두 나라 모두에서 무기화되었던 것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연무제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하나같이 전염율과 치사율이 높습니다.”

상당히 치명적인 야토병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CDC가 너무나 신속하게 다음 10년간의 연구 과제도 설정한 데 대해 깜짝 놀랐다. 특히 일부 병원균들은 그다지 성급하게 연구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야토병은 상당히 치명적이지만 이 박테리아는 사람에게 감염되는 경우가 극히 적고 항생제로 쉽게 다스릴 수 있다. “2년 전 열린 이틀간의 회의에서 전체 연구 과제들에 다시 초점을 맞추었습니다”라고 신원 밝히기를 거부한 한 저명한 전염병 연구 외과의가 말한다. “우리가 제안한 프로젝트들 중 90퍼센트가 그 회의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CDC의 목록에 선정된 질병들이 자동적으로 연방 연구 기금을 우선적으로 수혜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예를 들어 감기는 생물무기로는 적절치 않으므로 우선 과제가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연간 36,000명이 감기로 사망하고 20만 명 이상이 입원 치료를 받는다.

더욱이 상당히 치명적인 조류 독감이 현재 동남아시아의 조류 농장들을 휩쓸고 있다. 때로는 사람에게도 전염되어 작년에 45명이 감염되어 이중 32명이 사망했다. 지난 11월 세계 보건기구 서태평양 지역 이사인 시게루 오미는 조류 독감 사태를 해결하려는 국제적인 노력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류 독감이 사람에게 전염된 새로운 질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런 질병으로 인한 총 사망자 추정치를 보면 적게는 200만 명으로부터 최악의 경우 5천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조류 독감에 대한 해결책도 없고, 해결책을 알아낼 자금도 없습니다”라고 노스웨스턴 대학 분자생물학 교수인 로버트 램이 말한다. “만약 이것이 사람에게 퍼져 조류 피해와 같은 80퍼센트의 치사율을 보일 경우 진짜 생물테러가 될 겁니다.”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전염성이 높고 치명적이며 치료가 불가능한 가장 위험한 세균들을 연구하는 최고 보안 수준의 시설인 바이오세이프티 레벨 4(BSL-4) 시설이 부족해 미국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다. 현재 미국에는 이런 시설이 5군데 뿐으로 100명 정도의 과학자들이 근무중인데 정확한 숫자는 기밀사항이다.

하지만 BSL-4 시설이 30만 평방피트 증설되고 연구 인력이 20배 정도 증가되면서 세균전 지식과 재료, 병원체를 다루는 사람들의 수가 위험할 정도로 많아지게 된다. 비록 BSL-4 시설 근무자에 대해 FBI에서 철저하게 신원 확인을 하겠지만 루거스 대학 생화학 교수인 리차드 에브라이트는 “CDC 뿐 아니라 어떤 정부 기관도 철저한 관리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특수 생물표본의 허술한 관리
여러 정부 기관들이 이처럼 방대한 연구실들과 치명적인 생물들을 관리하다 보면 반드시 부주의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2002년 말 회계 감사원(GAO)은 치명적인 미생물과 독소 42종으로 된 “특수 생물 표본”을 해외로 선적하는 데 허술하게 관리했다고 CDC를 질책했다.

이들 중에는 생물테러방어 의제에 포함된 생물들도 많다. GAO에 의하면 특정 세균들이 전국 실험실들에 분배되는 도중 CDC의 데이터베이스로부터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해 CDC에 생물 실험 연구소들의 안전 및 보안 감독과 승인 소홀 책임을 물었다고 밝혔다. CDC는 이런 실수를 인정하고 보다 철저한 감시를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작년 6월에 발생했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소재 아동 병원 및 연구 센터의 과학자들이 선적상의 실수로 살아있는 박테리아를 죽은 것으로 오인한 채 연구하다가 탄저균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도 과학자들이 어린이용 탄저균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실험에 사용하던 쥐들이 죽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즉각 예방 차원에서 항생제 씨프로 주사를 맞아 아무도 감염되지 않았다. CDC와 이 박테리아 공급업체의 담당자들은 이런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당혹해했다.

하지만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신설된 레벨 4 연구실들 중 한 곳에서 악의를 품은 누군가를 실수로 채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서두르다가 자칫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생물과 이를 퍼뜨리는 방법, 그리고 연구실로부터 무언가를 훔쳐낼 수 있는 수단들을 모두 알려주고 있습니다”라고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의 휠리스가 말한다. “알 카에다나 시리아를 돕는 대학원생 한 명이 불만에 차 악의적인 생각을 품고 수천 명의 직원들 속에 섞여 있을 경우 미국은 전례없는 다양한 방식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백신 항생제 개발 로드맵 전무
치명적인 미생물에 대한 백신이나 항생제의 개발 방법을 제시하는 명확한 로드맵이 없다. 연구는 시행착오를 통해 진행된다. 라몬 플릭의 경우 일단 크리미언-콩고를 DNA 형태로 복제한 후 바이러스의 독성이 무력화 되도록 하는 유전자 코드 부분들을 변형한다. 그는 유전자를 변형시켜 바이러스의 기능을 마비시켜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방식으로 항상 세균의 독성이 제거되지는 않는다. 과학자들은 백신을 만들려고 병원체의 유전자 코드를 변화시키지만 결국 본의아니게 새로운 세균이나 보다 강하고 치명적인 미생물을 만들어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것도 생물학 무기 개발에 해당할까?

이런 대표적 사례가 최근 세인트 루이스 대학 분자미생물 및 면역학 교수인 마크 불러가 NIH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실험이다. 이 실험 결과 초강력 변종 마우스폭스 바이러스가 생겨났다. 불러의 실험은 2001년 2월 발표된 한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이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쥐의 불임치료제를 만들려는 시도로 외래 유전자를 독성이 없는 마우스폭스 바이러스에 접합하려다가 엉뚱한 유전자를 선택하고 말았다. 오스트레일리아 과학자들이 실수로 만든 병원체는 독성이 너무 강해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있는 쥐들도 죽어버렸다.

마우스폭스는 천연두와 매우 유사한 변종이기 때문에 테러범들이 이 오스트레일리아 실험 결과를 이용해 현재 백신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초강력 천연두균을 가공해 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 결과 불러와 그의 팀은 치명적인 마우스폭스를 다시 만들어냈는데, 이 마우스폭스균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성된 세균을 없애기 위해 이보다 독성이 두 배나 강했다. 이와 유사한 맹독성 천연두 바이러스가 생물공격에 이용될 경우 이런 지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불러는 말한다.

신종세균 방어수단 설계
“제 관심 분야는 바이러스가 질병을 야기시키는 과정 규명에 관한 발병학입니다”라고 불러는 말한다. “그 때문에 제가 하는 모든 실험은 두 가지 용도가 있어, 생물학무기로의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 변형 세균이나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냅니다. 신종 세균의 방어 수단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방어 대상이 되는 바이러스가 있어야 합니다.” 불러와 동료들은 자신들이 만든 마우스폭스 바이러스에 대해 효과가 높은 해독제를 개발했는데 올해 가을 공개할 예정이다. “치료용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냥 발표만 하는 겁니다”라고 그가 설명한다. “변형 바이러스에 완화 효과가 있을 때 공개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야 혹시라도 그 바이러스를 생물무기로 만들려고 생각하던 테러범들이 생각을 고쳐 먹을 테니까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방식의 연구가 생물무기 방어가 아니라 1972년 체결된 생물무기협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생물무기 개발에 해당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144개국이 비준한 이 협약은 국가 차원에서의 생물무기 개발 및 비축을 금지하고 과학자들이 생물무기 테러에 대비한 방어책 연구시에만 소량으로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허용한다. 몇 건의 소소하지만 당혹스런 사건들을 제외하면 미국은 생물무기협약을 잘 준수해 온 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협약 준수 의지가 다소 느슨해졌다. 2001년 부시 행정부는 유럽연합과 대부분의 다른 국가들이 지지하는 실행 계획을 거부해 제네바에 모인 생물학전 협상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계획은 특정 국가에서의 생물 무기 개발 의혹이 제기될 경우 “통보없이” 해당 국가의 생물안전 시설을 시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이 조항을 이용해 미국 시설들에 대한 공개적인 첩보 활동을 할 거라고 주장했다.

생물 무기 개발경쟁
C.J. 피터스는 이런 자세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터스는 30년 이상 동안 전염병 연구를 해왔다. 군 복무시 첫 연구 때에는 버지니아주 레스톤의 검역소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수백 마리의 수입 원숭이들을 소각하기도 했다. 사찰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은 전국에 산재된 일반 레벨 4 시설들에 의혹을 떠 넘기고 있다고 그가 말한다. 이렇게 되면 이 연구 시설들에서 불법 연구가 진행되는 것처럼 비추게 되어 다른 국가들도 자체적인 생물무기방어 활동들을 공공연히 하게 된다.

“그러면 비밀리에 생물 무기 개발 경쟁이 붙게 됩니다. 미국을 적대시하는 작은 국가들은 미국이 생물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믿고서 미국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생물 무기를 생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피터스는 말한다. “순진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미국이 공격용 생물전 프로그램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건 다른 나라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생물무기방어 계획의 심장부인 메릴랜드 포트 데트릭 소재 국립 생물방어 분석 및 대처 방안 연구소에서의 계획된 활동들에 대해 정부가 모호하게 설명을 하면 미국이 생물 무기 협정을 위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08년에 완공되면 이 연구소에는 극비 레벨 4 연구실들이 신규로 들어서는데 국토안보부에서는 정확한 신규 연구실의 개수를 밝히지 않을 것이다. 국토안보부의 한 문서에 의하면 이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유전자 가공된 병원체들의 특성을 연구해 생물무기로서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이 세균들이 공기나 다른 전달 매체를 통해 얼마나 쉽게 확산될 수 있는지 분석한다. 이들은 컴퓨터 모델을 이용해 특정 세균들이 무기화할 수 있을 정도로 대량생산이 가능한지도 알아낸다. “새로운 병원균 생산과 이를 퍼뜨리는 새로운 방법 연구가 위협 평가라는 미명하에 행해질 수 있습니다”라고 메릴랜드 대학 국제안보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밀튼 레이튼버그가 말한다.

국토안보원 관리들은 생물무기방어 프로그램을 옹호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가능한 한 공개하고 생물전 협정을 위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의 생물무기방어 프로그램은 불가피하게 탄저균 사태 발생 이전보다 연구 범위를 좀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시인한다. “생물무기로 위협을 가하려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들이 어떤 용기에 병원균을 보관할지, 어떻게 운반할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리 알아낼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국토안보원의 과학기술부 연구개발국 국장인 모린 맥카시가 말한다. “이건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유전물질의 미니게놈 분리
필자가 갈베스톤에서 라몬 플릭을 처음 만난 이후 9개월 동안 크리미언-콩고에 관한 그의 연구는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DNA 형태의 바이러스로부터 유전물질의 작은 하위 조각인 미니 게놈들을 분리했다. 이 미니 게놈들의 절편을 교체한 뒤 플릭은 DNA로부터 추출한 개개의 조각들을 RNA에 전사했다. 하지만 아직 그는 이 RNA를 개조한 바이러스로 되돌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RNA 형태의 살아있는 크리미언-콩고 바이러스를 재구성에 실패해 바이러스의 독성 약화로 백신 개발이 가능한지 실험할 수가 없었다.

이런 연구는 수 년이 걸리지만 정부의 생물무기방어 의지가 확고한 한 플릭은 그의 프로젝트를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생물학 테러 방어 연구 예산을 보고 이 연구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도리스 버처가 그런 예이다. 뉴욕 의과대학 미생물학 및 면역학 조교수인 버처는 보다 효과높은 감기 백신 연구에 뛰어들었다. 정부가 생물테러 연구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안 그녀는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속이 들여다 보이는 계획으로 NIAID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전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으스스한 어조와 시나리오로 감기를 잠재적인 생물무기로 묘사해 연구비를 타내려 했지만 제대로 안됐어요”라고 버처가 말한다. “그냥 절 보고 비웃었어요.”

이 정도면 미국의 생물무기방어 연구가 그다지 허술하지만은 않다는 기대를 가져볼 만하다.

** 제프리 로스페더는 파퓰러 사이언스 편집 고문이다. 그의 여섯 번째 저서가 2006년 초 출간될 예정이다.

치명적 생물테러 무기들
다음 7종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들은 치명적인 생물테러 무기가 될 수 있다.

크리미안-콩고 출혈열|나이로바이러스
크리미안-콩고 출혈열은 대부분 염소와 양을 감염시키지만 사람은 벼룩이나 감염된 동물들의 체액으로부터 감염된다. 이 병에 걸리면 현기증과 두통이 시작되고 곧이어 병원균이 체세포를 공격함에 따라 내장기관과 피부 밑층에서 출혈이 뒤따르는 끔찍한 증상이 나타난다.

탄저균|바씰러스 안트레이시스
탄저균은 오랫동안 효과적인 생물테러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내의 독일 요원들은 미국의 전투용 말들에게 이 병원균을 주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2001년 탄저균이 동봉된 일련의 편지들이 배달되어 미국에서 5명이 사망했고 우편 업무를 마비시켰다. 탄저균 포자는 거의 어떤 환경에서도 오랜 기간동안 생존할 수 있다.

보툴리누스|바실러스 세레우스
보툴리누스 독소는 흙에 서식하는 일반 박테리아들에 의해 생산되는데 독성이 매우 강해 100나노그램만으로도 성인의 신경계를 마비시켜 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제조과정상에 문제가 있는 통조림 음식을 먹고 음식내의 보톨리누스 독소 때문에 사망하는 사건이 간간이 발생하지만 테러범들이 의도적으로 이 독소를 음식에 넣어 오염시킬 수도 있다.

비저병|버크홀데리아 말레이
1980년대에 구 소련에서는 1년에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통해 2,000톤이 넘는 박테리아를 생산했다. 보통 비저병은 말이 주로 걸리고 사람에게 감염되는 사례가 드물다. 하지만 이것을 분무기로 퍼뜨리면 위험한 무기가 된다. 항생제 치료를 받아도 치사율이 50퍼센트에 달한다. 소량의 박테리아만 있어도 치명적인 호흡기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

에볼라|필로버리데이 에볼라바이러스
헐리우드 영화 아웃브레이크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거의 80퍼센트에 달해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생물테러 수단이다. 1976년 최초로 발발한 이후 아프리카 전역에서 전염병을 발생시켰다. 에볼라는 감염자의 내장기관을 완전히 녹여버린다. 백신은 아직 개발중이다.

천연두|바리올라 메이저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들 중 하나인 천연두는 20세기에만 총 5억 명의 희생자를 낸 후 세계적인 백신 캠페인에 의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는 천연두 바이러스의 냉동 표본만이 남아 있다. 만약 천연두가 다시 퍼진다면 감염된 사람은 숨막힐 정도의 발진이 나서 감염자의 절반 가까이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장티푸스|살모넬라 타이피
1900년대 초 뉴욕의 요리사 타이포이드 매리는 음식을 나눠주기 전에 손을 씻지 않아 최소한 51명이 장티푸스에 걸리게 했다. 그 이후 항생제와 위생 시설이 좋아져 미국에서는 이 병이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아직도 장티푸스는 개발도상국들에서 일반적인 질병으로 매년 1,600만 명이 감염되고 60만 명이 사망한다.

치명적 세균 복원
치명적인 감기 바이러스를 재현해 낸 방법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을 때 자연은 가장 효과적인 생물학 무기를 선보였다. 1918년 전염성 독감으로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그런데 이 독감은 즐비한 시체와 우려를 남긴 채 자취를 감추었다. 왜 이 특별한 감기는 그렇게 치명적이었을까? 이 감기는 재발할까? 만약 재발한다면 막아낼 수 있을까?

작년 위스콘신 대학의 세균학자들은 이런 의문들 중 몇 가지를 조사해 보았다. 이 감기로 사망한 미군 병사의 보존된 폐 조직의 RNA로부터 1918년 독감의 유전적 청사진을 얻어냈다. 캐나다의 바이오세이프티 레벨 4 연구소에서 요시히로 가와카와 동료들은 1918년 독감의 맹독성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유전자 두 개를 분리해냈다. 이들은 각 유전자를 비교적 독성이 약한 감기 바이러스에 삽입한 후 쥐들을 이 새 바이러스에 노출시켰다.

쥐들이 실험실에서 생성한 이 바이러스들 중 하나에 노출되자 1918년 독감의 전형적 특징이던 심한 폐렴에 감염되고 출혈 증상을 나타냈다. 감염중 바이러스가 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 단백질인 헤모글루티닌이 치명적 성분임이 밝혀졌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 발견을 반기면서 이로 인해 초강력 독감의 초기 징후를 판별해내 재발을 방지하기가 훨씬 쉬워질 거라고 말했다. 보다 신중한 다른 과학자들은 1918년 독감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고 이를 재현하게 되면 인류를 위험에 빠트리게 될 거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감기 바이러스들은 생물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이 낮지만 이런 초강력 바이러스는 그런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