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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새튼은 왜 황 박사와 손을 잡았나

인간의 복제된 난자에서 최초로 줄기세포 주가 만들어졌다고 발표한지 겨우 15개월이 지난 시점에 한국의 한 연구소에서 2005년 5월, 새로 생긴 배아 줄기세포주 11개에 추가로 복제된 배아를 31개 더 만들어 냈다고 발표해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래가 갑자기 가깝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보수적인 종교단체의 비난을 끊임없이 받아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뇨, 파키슨 병과 같은 질병에 대한 치유법개발을 위해 로비활동을 벌여온 이들로부터 열렬히 환영을 받아온 배아세포줄기에 대한 연구가 갑자기 약과 수술을 뛰어넘는 차세대의 생물 의학적 ‘재생성 약물’을 합법적으로 가져 올 것처럼 보였다.

성취감에 젖은 제럴드 새튼

그리고 다음날 저명한 저널 ‘사이언스’지에도 게재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5월 19일 런던에서의 기자회견 석상에는 다름 아닌 한국의 복제 일인자가 서 있었다. 바로 아버지를 여윈 농촌의 소년에서 돼지, 소 그리고 이젠 인간의 난자까지 만들어낸 황 우석 박사였다.

그의 옆에는 함께 성취감에 젖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이언스 논문 공동저자 피츠버그대의 세포 생물학자 제럴드 새튼이 서 있었다. (그는 공동저자 10여명 중 서구 과학자로는 유일하게 이름이 올라갔다.)

그 시점까지 그가 이루어낸 가장 유명한 업적으로는 해파리의 유전자를 원숭이에 성공적으로 주입한 것이었으며, 그가 이 같은 대발견에 실질적으로 어떻게 공헌하였는지는 다소 의심스러워 보였다.

미국의 최고 권위 있는 세포줄기 생물학자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는 모두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배아 세포줄기가 실험실의 벤치에서 환자의 병상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단축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매우 놀랐으며, 또한 제럴드 새튼이 황우석과 나란히 저기 서 있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였던 것이다.

7개월 후, 한국의 과학자들이 역사상 가장 위험한 사기극을 꾸몄다는 증거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을 즈음에서는 어쩌면 새튼 자신도 이들과 똑같은 의문을 던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럴드 새튼은 퀸스의 도회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났지만, 자연계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3살 때부터 늘, 제가 식당에서 바다가재의 성별을 감별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었죠. (손님들이 지금 먹고 있는 가재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를 말해줄 것이란 얘기였다) 제가 어릴 적에 겪은 문제 중 가장 난제는 이스트 강에서 목격했던 한 인체조직에 관한 것이었어요. 이 조직이 계절타는 것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죠. 여름에는 수가 급증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그 현상이 사라졌었거든요. 그게 때론 작은 조각으로 분할하기도 하여 환형동물인 줄로만 알았어요. 고등학교에 가서야 비로소 누가 그 물체가 바로 다름 아닌 콘돔이라고 일러주더군요. 그만큼 전 엉뚱한 아이었어요.” 라고 그는 말한다.

유랑하는 집시처럼

그가 2005년 5월 내게 들려준 이같은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약간은 짓궂고, 자기를 과장하면서도 동시에 자기를 깎아내리는 새튼화법을 아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는 56세의, 자그만 몸집을 가지고 있으며, 장황하고 때론 웃기는, 본인이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우디알렌을 닮은 화법을 구사한다.

“한 학회에서 이안 윌멋을 소개하던 참이었죠. 그런데 잠시 정신이 이상해진 건지, ‘이안, 당신도 아다시피, 일단 라마를 갖게 되면 양에는 다시는 절대 손을 대지 않게 되지’라고 말했죠. 그 상황에서는 부적절한 발언이었을 수도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새튼의 한 동료는 조심스럽게 “새튼은 통제력에 문제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다소 서두르는 면이 있었죠. 마치 마돈나가 된
기분이었어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나와 같이
일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새튼은 1960년대 말, UCLA의 학부생 및 대학원생으로, 이후 1970년대 초에는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젊은 교수로 과학적으로는 가치가 있으나 언론의 주목을 끌지는 못하는 해양 무척추 생물에 대한 연구로 그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새튼이 마치 유랑하는 집시처럼 그의 연구실을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위스콘신으로 그리고 다시 오레곤의 보건 과학대, 그리고 5년 전 피츠버그대학으로 옮기는 동안 그의 관심은 원숭이에게로 옮겨갔는데,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 중 하나인 원숭이를 연구하여 인간의 발달과 질병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자 하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수정과 배양에 대한 연구를 충실히 해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전 종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고 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주목 받으려고 안달난 사람

그가 인간 줄기세포에 손을 대자, 많은 이들이 혀를 차기 시작했다. “이 줄기 세포계를 쥐고 흔드는 이들은 그를 중요한 인물로 보지 않아요. 그가 얼마나 주목 받으려 안달인 사람으로 보이는지 그 자신은 알지 못하죠.”라고 한 연구자는 말한다.

보스톤의 소아 병원 관계자인 하버드 대학의 조지 디레이씨는 이보다는 좀 더 점잖은 표현을 사용해서 “그의 연구는 항상 생물학계의 바다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을 찾아 낚시 밥을 던지는 스타일이죠.”라고 말하였다.

새튼은 지난 10여년 동안 다 자란 세포핵과 난자를 결합시켜 완전히 새로운 난자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거치는 원숭이 복제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이 원숭이 복제는 예상했던 것보다 힘든 과제였다.

따라서 2004년에 한국 과학자들이 유인원 단계를 건너뛰고 인간의 배아 복제를 해냈다는 발표를 내놓자, 새튼은 마치 이들이 자신의 복제 방법을 가로채 간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새튼은 사교적이면서도 그만큼 교활했다. 이 발표가 있기 2개월 전에 그는 황박사와 원거리 상으로 과학적인 유대관계를 맺은 바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둘 사이는 아주 가깝게 되어 서로를 “피를 나눈 형제”라고 부르게 되었다.

미국의 공동저자, 줄기세포 논문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지길 원하다


황박사 연구실에서 한 일이 없다

이제 새튼은 그가 최근 기억하는 바로는 가장 놀라운 진보의 정점에 올라가 있었다. 그가 황우석 박사의 연구실 벤치에서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황박사가 하루 두차례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연구 프로토콜 계획과 연구실에서의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이들의 주목을 끈 2005년 사이언스 기고 논문에 이름을 올리게 됨으로서 잠시나마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줄기세포 연구자가 되었다.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피츠버그의 녹슨 철재 다리 밑을 지나 모논갈레아 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이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대학의 연구동과 세미나실들은 마치 부식된 곳에 뿌리 내리려 하고 있는 바이오텍 업계의 군락처럼 보인다.

바로 이곳에서 새튼은 런던기자회견 에서 돌아와 그의 연구소에서 소수 정예의 젊은 생물학자를 대상으로 일주일 간의 수업과정을 실시했다. 그의 수업은 한국 과학자들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로 둔갑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다소 서두르는 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하는 게 될 겁니다. 마치 마돈나가 된 기분이었어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나와 같이 일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그가 수업 후 한 말이다.

다양성을 즐기는 특기를 가진 새튼으로서는 과학적인 끈을 놓치게 되기 쉽다. 이때 그 대상이 집필된 것은 많으나 상대적으로 이해한 것은 현저히 적은 줄기세포라면 바로 위험해 진다. 새튼이 생명 과학계의 스타가 된 이유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현대 의학은 손상을 억제하고 증상을 관리하는 것으로 그 특징을 규정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심장마비가 오면 심장에 상처가 가해져 펌프질을 잘 못하게 된다. 그러면 의사는 혈관의 긴장을 늦추고 순환을 원활하게 해 줄 약을 처방하게 된다.

췌장이 충분한 인슐린을 만들어 내지 못하여 대동맥의 당을 제거할 수 없게 되면 생체공학적으로 만든 인슐린이 주기적으로 주입되어 이 기능을 대신하게 된다. 심장이나 췌장조직이 건강해 진 것은 아니지만, 환자는 하루를 더 견디게 된다.

줄기세포 옹호자들과 연구자들이 꿈꾸는 세상에서는 줄기세포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재료가 되며, 이 시대에는 문제가 있는 조직이나 기관이 단순히 치유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배양될 것이다. 이 분야에 있는 모든 이들은 난자 줄기 세포에 심취해 있는데, 이는 거창하게 말해 우리가 죽음까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물질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기관 체계에서 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다 자란 세포줄기와는 달리 배아 줄기 세포는 몸 전체의 성장을 지휘할 수 있다.

1980년대 초에는 쥐,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는 사람에서 배양시킨 줄기세포 주는 발달 단계 초기에 있는 난자로부터 만들어 낸 것이다. 대개의 연구자들은 불임시술소에서 기증한 냉동난자를 실험에 사용한다.

5일된 배반포 상태에서 이 난자의 내부는 액체로 가득 차 있으며, 바깥쪽은 보호막의 보호를 받고, 안에는 다량의 세포들이 가득하다. 연구자들은 바깥의 세포층을 파괴하여 (이와 함께 난자도 파괴된다) 안에 있는 다량의 세포들을 끄집어내어 이들을 배양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양용 접시에서 이들 세포들은 인위적으로 잠시 발육이 멈춘, 즉 죽지 않은 상태로 계속적으로 분할하는 상태가 유지되며 여러 방면으로 쓸 수 있는, 이론상으로는 다 자란 성인 세포를 200개 이상의 유형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무엇이건 재생성해 내는 미래에서는 배아 줄기세포는 배양용 접시에서 각각 다른 형태로 바뀌어 심장 근육세포가 될 수 있으며, 또는 손상된 심장에 바로 투입되어 심장을 다시 젊은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도 있다. 또는 인슐린을 만들어 내는 독립적인 세포가 되어 기능이 저하되고 있는 췌장에 바로 주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반신 혹은 몸의 4분의 1이 마비되어 현재 의약품으로는 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손상된 척추에 신경교 세포(glial Cell)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줄기세포 생물학과 복제의 결합

이 세포들은 손상된 신경세포의 치유를 돕고, 크리스토퍼 리브와 같은 환자가 휠체어에서 기적처럼 벌떡 일어나게 할 것이다.

새튼과 황박사가 사이언스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놀랄만한 사항은 줄기세포 생물학과 복제의 결합으로, 여기에서 줄기 세포는 체외 수정으로 만들어낸 난자가 아닌 복제된 사람의 난자에서 만들어 낸 것이었다.

개념상으로 볼 때 이는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줄기세포 기술은 이미 확립된 상태에 있으며, 전문가들 역시 인간의 복제를 복제양 돌리와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

한 환자의 몸에서 아무 세포나 추출해 낸 후 여기서 핵을 뽑아내고, 기증받은(세포핵이 제거된) 난자에 주입하여 배양용 접시에서 난자가 생기도록 하면, 후에 이 귀중한 줄기세포 배양용 난자를 얻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치료를 위한 복제’는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으며 (초기 단계에서 난자를 만들어 이를 파괴하게 되므로) 명백히 말해 실제 성공하기에는 쉽지 않다. 새튼 교수는 그의 수업을 들은 이들에게 한국 과학자들이 이룬 업적의 중요한 점은 바로, 기증된 난자로 배반포를 만들고 이를 줄기세포주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보여준 생각지도 못한 효율성에 있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에 있건, 여러분은 이 연구에 대해
평생 두고두고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치료를 위한 복제를 위해 기증된 난자는 반드시 호르몬 주사를 맞아 강제로 난자를 배출하도록 만든 여성의 몸에서 축출해 내야만 한다.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며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황박사는 각 기증된 난자마다 하나정도의 줄기세포 주가 나왔다고 보고했다. 이제 생식력이 있는 여성을 찾아 난자를 한 번 기증받기만 하면 우리 각자에 맞는 맞춤형 줄기세포 - 신체기관 교체용 - 를 평생 가질 수 있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

새튼은 강의장을 찬찬히 둘러 본 후 다음과 같은 고무적인 발언으로 강연을 마쳤다. “언제, 어디에 있건, 여러분은 이 연구에 대해 평생 두고두고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난자 출처에 대한 거짓 증언

이 사상누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작년 6월의 일로, 경사스러운 기자회견이 있고 2주 후의 일이었다.

바로 내부 고발자가 한국의 TV프로그램 ‘PD수첩’에 이메일로 정보를 흘렸던 것이다. 이 정보 제공자는 다름 아닌 황박사 실험실 내부자로 밝혀졌으며, 이 정보제공자는 황박사가 복제에 쓰인 난자의 출처에 대해 거짓말을 해왔음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황박사가 자기 아래에 있는 여성 연구원들에게 그들의 난자를 기증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중대한 윤리적 범죄이다. 이는 비난받을만한 일이었으나, 이 외에도 내부 고발자가 입증해 보일 수 없는 가장 흥미로운 주장이 있었다. 바로 황박사 전체 사단의 과학적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PD수첩에서는 이를 추적하기 위해 자체적인 수사반을 소집하였다. 조사단은 업적을 칭송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취재단으로 가장하여 결정적인 DNA 증거를 확보하였다.

그 후, 이들은 피츠버그로 날아가 새튼의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던 황박사의 전 보좌관격이었던 김선종씨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들은 김선종씨에게 한국의 검찰이 이미 그를 추적중이라고 믿게 하여 그가 2005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줄기세포를 11개로 보이게 사진을 조작하였다고 실토하는 모습을 숨겨둔 카메라에 담게 된다. PD수첩에서 이를 폭로하는 첫 번째 방송을 내보낸 지 7주가 지난 1월 초, 서울대학교 측에서 황박사의 연구에 대해 자체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다.

이들이 알아낸 사실은 다음과 같다. 황박사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배아 복제는 사실상 복제된 것이 아니다. 즉 결합시킨 성인 세포 핵을 기증받은 난자와 합쳐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난자가 스스로 분할(처녀생식)했을 때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로부터 나온 줄기 세포 주는 황박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저명한 2005년 논문에 보고된 연구결과의 경우, 황박사 연구팀이 실제로 복제한 배아를 여러 개 만들어 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들의 주장보다 10배가 더 많은 난자가 사용되어 의학적 효용성에는 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 연구팀은 서울의 연구실에서 복제 배아 중 일부를 배반포 상태까지 배양한 것으로 보였으나 이는 이미 다른 이들이 성공을 거둔 부분이기도 하며, 배아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줄기세포주가 형성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조작이 실제로 일어난 곳은 서울의 불임시술 병원인 미즈메디의 한 연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복제 배아는 이곳으로 옮겨져 김선종씨와 2005년 논문의 공동저자였던 미즈메디 연구원 몇몇의 감독하에 줄기세포주로 바꿔치기 되었다.

DNA 감정 결과, 이곳에서 배양된 두 개(사이언스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11개가 아닌)의 줄기세포 주는 복제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병원 측에서 제공한 수정된 난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환자 맞춤형이 아닌 전통적인 방법대로 복제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황박사가 맨 위에서 지휘하고 각자가 가입한 사기극이었는지, 아니면 각자가 독자적으로 일하면서 어두운 진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던 일이었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한국의 복제 스캔들로 과학계가 충격에 휩싸이고 치료 목적의 복제에 찬성하던 이들의 긍정적인 발언을 없애버리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희망에 타격을 가해지는 등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전혀 있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일이 일어났다. 바로 새튼이 입을 다문 것이다.

완벽한 세상에서 당신만의 줄기세포를 배양하세요

1 기증받은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여러분의 피부 세포에서 막 뽑아낸 핵을 주입한다.
2 난자가 새로운 DNA를 받아들이면, 자극을 가하여 세포 분할을 유도한다.
3 쪼개지는 과정이다. 분할이 3차례 일어나면, 세포 덩어리는 배반포 단계가 된다.
4 배반포에서 내부 세포 덩어리들을 끄집어 낸다.
5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무한으로 분할하도록 한다.
6 신체 기관을 배양해 낸다. 화학적인 자극을 주게 되면 세포들은 유전적으로 기증자와 유전적으로 일치하는 조직으로 바뀐다.

줄기세포 복제가 이제 용이해졌다라고 한국연구자들이 말하다

황 박사와의 갑작스런 결별

11월 11일 그는 사이언스지의 편집자들에게 보내는 전갈에서 그가 황박사와 결별하였음을 갑작스럽게 통보하며 황박사가 난자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 위반행위를 저질렀음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제 믿음이 흔들렸어요. 상심이 큽니다. 황박사와 같이 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그는 한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에게 말했다. 새튼은 이보다 좀 더 공개적인 발언을 한 차례 더 했다. 12월에 조작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그는 사이언스지에 그의 이름을 삭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다른 공동저자들에게도 논문을 철회할 것을 권고했다. 그 후로 그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있다.



점차 밝혀지는 사실들로 이것이 단순히 윤리적으로 부당한 행위가 아니라, 완전한 사기극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감에 따라, 피츠버그 대학측에서 새튼과 그의 연구실 직원들에게 공식적인 발언을 하지 말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새튼의 실험실 수석 보좌관인 피츠버그대의 연구원 캘빌 시머리는 전화 통화에서 “우리는 지금 구류상태에 있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 바 있다.) 분명 이 공백기간 동안, 새튼이 알고 있던 사실은 무엇이며, 언제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할 것이다.

하지만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해서 새튼처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말없이 그냥 있을리는 없었다. 그는 돌발 사고에 대한 언급을 샌디에고의 번햄연구소의 줄기세포 연구 책임자인 이반 스나이더에게 했다.

스나이더씨에 의하면, 새튼은 뉴욕의 콜드 스프링 하버에서 열린 학회에서 황박사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인 11월 초까지만 해도 한국의 연구소를 확실히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황박사는 새튼에게 논문에 있는 기술적인 실수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이상하게도 이 사실이 사이언스 지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둘 사이의 언쟁

이 둘 사이에는 언쟁이 벌어졌으며, 갑자기 황박사는 과거에도 의심을 줄곧 받아왔던 부하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불쑥 고백해 버렸다.

“새튼은 자신이 화를 내고는 가방을 싸서 학회 도중에 나와 버렸다고 하더군요”라고 스나이더씨는 말했다. 새튼이 11월에 황박사와 결연하겠노라고 전격 선언을 하자, 스나이더씨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이를 과잉반응이라 생각했다. 특히 서구와 한국 과학계에서 이미 많은 이들이 황박사의 난자 출처에 대해 의문을 품어온 사실을 볼 때 말이다.

그가 그의 동료보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민감해할 만한 이유는 있었다. 그는 여성 생식 보건 연구소의 부소장 자리를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11년 전 위스콘신에서 있을 당시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난자를 (그의 말로는 부지불식간에) 사용하여 질책을 받은 바 있다.

또 한편으로는 황박사의 연구가 한 달 후 거짓으로 폭로될 상황이었음을 고려해 본다면, 새튼이 황박사팀의 문제점에 대해 그가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상상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스나이더씨는 이보다는 좀 더 약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즉, 새튼은 겉으로 보이기에는 전혀 고의적으로 보이지 않은 실수를 해결하려 하지 않은 그때서야 비로소 문제를 감지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체 조직에서 균열이 하나만 생겨도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죠. 이는 결혼과도 같아, 배우자 중 한사람이 바람피우는 경우와 같은 것이죠.”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2005년 1월, 이를 폭로할 뻔한 말실수가 있었는데, 황박사가 새튼에게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적인 줄기세포주 중의 일부가 실험실에서 오염되었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황박사는 그의 미국 동료에게 보고서가 3월 중순에 사이언스 측으로 전달되기 전에 아주 똑같은, 이를 대체할 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후 조사자들은 황박사가 이를 해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음을 밝혀냈다.

줄기세포 생물학에 완전 무지했던 걸까

원숭이 복제 전문가인 반면 줄기세포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참인 새튼이 기본적인 줄기세포 생물학에 완전히 무지했을까? 아니면 답을 듣기를 원치 않았던 질문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인가?

황박사는 새튼의 열정과 순진함을 이용하여 그의 눈을 가리려 했던 것인가? 아니면 스탠포드 대학의 줄기세포 생물학 및 재생의학 연구소 소장인 어빙 위스만이 완곡히 빗대어 말하듯 “어쩌면 그들 둘은 같은 불꽃을 키우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일까. 위스만의 이같은 언급은 궁극적으로는 가장 의문이 가는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그 질문은 바로, 새튼이 왜 애당초 황박사와 손을 잡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새튼의 동료학자 중 많은 이들, 아니 대부분은 서울에 있는 연구실과 자신을 연계시키기 전에, 그리고 자신이 그 결과에 대해 입증해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면 자신의 이름을 논문에 올리기는 것에 조심스러워 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새튼의 공격적인 접근법 역시 어떻게 보면 이해할 만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2001년 8월 9일 내놓은 타협안에서 국립 보건원(NIH)의 지원금을 그 날짜까지 완성된 줄기세포 주 몇 개에만 국한 시켰고, 이로 인해 미국 과학자들은 낙담하였다. 그들의 편을 들던 시민 연맹들은 줄기세포 열병을 앓아야만 했다.

30억달러규모 연구 발의안 통과

캘리포니아 주에서 주 차원의 30억 달러(약 3조원) 규모의 줄기세포 연구 발의안을 통과시켰으며 이에 크리스토퍼 리브(그는 이 결의안이 투표에 부쳐지기 한 달전 사망했다), 마이클 J.폭스, 로날드 레이건 2세와 같은 옹호자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무수한 줄기세포 과학자들에게는 나름대로 그들만의 소명 의식이 있었으며 그들만의 사연이 있었다. T-1당뇨를 앓고 있는 두 아이를 둔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더글라스 멜톤씨는 자신 스스로 1인 줄기세포 공장이 되어 170개의 체외 수정난에 기반한 줄기세포주를 만들어 내고 있다.

개인적인 불행에 익숙한 새튼(그와 첫 부인 사이에 난 세 명의 아이는 아버지와의 혈액형이 맞지 않아 모두 사산되었다) 역시 줄기세포 안을 내놓기 위해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5년 5월 피츠버그의 한 강연에서 그는 과학계에는 어떤 장애가 있어도 줄기세포연구를 계속해 나갈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옥스포드의 한 철학자는 10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연구를 지연시키는 것은 도덕적으로 볼 때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이 분야에 있어서 원동력이 되는 것은 윤리적인 미덕 뿐만이 아니라, 재정적인 면도 있다. 학계의 (새튼을 제외한) 과학자들에게로 투자 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으며, 좋은 결과나 혹은, 좋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희망적인 발표라도 하라는 압력이 있었다.

‘좋은 결과를 이제 내 놓아라’와 같은 환경이었죠. 제가 바이오 과학의 어떤 분야를 봐도 이는 최악의 환경이었습니다.”라고 알덴 마치 생명 윤리학 연구소의 소장, 글렌 맥기는 말한다.

여기에는 또한 순수한 지적인 흥분감도 있었다. 즉 줄기세포가 가진 독창적인 매력이었다. 여기에는 야망이 동반되었으며, 이같은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새튼은 ‘한국인을 이길 수 없다면, 그들에 합류하라’는 방식을 취하였던 것이다.

인간 복제는 모두
조작된 것이었다고
한국 언론 보도


황박사로부터 받은 1만달러 사례금

NIH가 자금을 철수하면서, 동시에 그와 함께 동료 간 감시체제 역시 사라진 이런 분야에서는 어쩌면 돌아서 가라는 전략이 그럴 듯 해 보였을 수도 있다. 윤리적으로 불확실한 영역에서 운용되는 도전적인 연구는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감시하도록 남겨졌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제럴드 새튼의 이름은 불명예스러운 것과 계속 연계되었다. 피츠버그 대학의 한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새튼은 런던의 기자회견 자리에서 황 박사의 연구진 일원으로부터 사례금 명목으로 1만 달러(약 970만원)를 건네 받은 적이 있으며, 총 4만 달러(약 3,800만원)정도를 받았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조사단은 자문을 해준 대가로 지급하는 사례금 액수치고는 보통 지급하는 액수를 훨씬 웃도는 금액이라고 규정지었다.

NH가 자금을 철수하면서 윤리적으로
불확실한 영역에서의 도전적인 연구는
스스로 윤리성을 감시하도록 남겨졌다.


한국의 언론들은 이 두 사람의 ‘사이언스’지 공동 논문의 결과로 추진됐던 ‘세계 줄기세포 허브’ 연구 콘소시엄의 소장자리를 내어줄 것을 새튼이 황박사에게 요구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성 보도를 내보내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한국 신문들은 새튼이 황박사의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새튼에게 2차례 지급된 바 있는 총 2,250만 달러(약 215억원)의 보조금은 그 부적절성에 대해 재조사 중이다. 이 보조금은 각각 2005년 미 의회에서 원숭이와 사람의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지급한 것과 새튼이 황박사와 손잡기 전에 해왔던 원숭이 복제 연구에 대해 피츠버그 대 측에서 지급한 것이다.

피츠버그 대에서는 지난 2월 조사 결과를 요약한 보고서에서, 새튼이 과학적 조작 그 자체에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명성적으로 상승하려는” 그의 욕심으로 인해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의 주 저자로서의 감시 책무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학자가 아닌 후원자

간단히 말해 그는 과학자가 아닌 후원자처럼 행동하였던 것이다.

피츠버그 대의 조사단은 그가 논문의 저자로 이름을 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이와 반대로 그는 논문 발행 후 언론의 주목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새튼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해 봄 그가 이 연구에 공헌하 바는 단순한 집필자의 자격을 넘어서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는 마치 탁자위에 우리 손 4개가 모두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과 같았죠. 그리고 완성된 조각의 어느 부분을 내가 하였고, 어느 부분을 황박사가 하였는지 말하기가 힘들었죠.“라고 그는 말했다.)

피츠버그 대학에서는 그들이 만들어낸 교묘한 용어로 이 문제를 피해 갔는데, 새튼에게 ‘연구상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는 아주 예외적인 용어로, “연구상 위법 행위”와 달리 아주 경미한 처벌만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피츠버그 측에서는 처벌 내용에 대해 공개하려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 후에도 새튼의 명성과 그의 연구 업적이 살아 남을지는 여전히 미결 문제이다. 한편, 새튼의 피를 나눈 형제의 경우 상황은 더욱 좋지 않게 흘러갔다.

한국의 한 사찰에 칩거 중인 황박사는 3월에 대학의 교수직에서 파면 당했다. 5월에 그는 국가로부터 사기와 3백만 달러(약 29억원)의 연구기금 횡령 혐의로 기소 당했다. 일은 처음부터 이렇게 흘러갈 예정은 아니었다.

세계 줄기세포 허브 초안

2005년 5월 새튼의 사무실 뒷쪽 벽에 걸린 화이트 보드에는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자들과 최고의 세포 물질에 목마른 서구 과학자들을 연결하는, 황박사와 새튼이 가동시키려 준비중이던 세계 줄기세포 허브의 초안이 매직마커로 열정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허브 건축가들이 면목을 잃은 반면, 줄기세포 연구는 놀라울 정도로 강건하며, 보다 경쟁적이고 분산화된 형태로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버드 대학과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분교 및 영리 추구 업체인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러지의 연구소들은 황박사가 한때 이루어냈다고 한 복제된 배아포에서 인간의 줄기세포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해내리라는 굳은 의지에 차있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이 전망하는 바 대로, 내년쯤 캘리포니아 주의 71조항에 대한 법적인 난제가 사라지고, 주 정부의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하면 더 많은 연구가 이들 뒤를 이을 것이다.

UCSF의 줄기세포 프로그램 담당자 아놀드 크래이그 스테인씨의 말처럼 복제난에 관한 연구라면, 우리는 현재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투로 미루어 볼 때, “이는 우리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고, 실제로 난제들이 무엇인지 역시 우리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것입니다”라는 호소로 들린다.

부추김을 받고자 했던 새튼

2005년 5월 당시 한국의 승리를 부추기고 이에 부추김을 받고자 하는 새튼의 마음속에는 최근 다녀온 인도의 여행에서 경험한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이 여행에서 그는 더 높은 곳만을 바라보지 않는 보기 드문 한 줄기세포 과학자와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의 연구실은 소박한 크기였으며 성장, 명성 또는 투자비의 규모 그 자체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어요. 그게 대단하면서도 당혹스럽게 느껴졌죠.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은, 다른 사람은 둘째치고 저만 하더라도, 자신이 이루어낸 업적과 성공을 동일시 하거든요. 동양적인 관점의 성공적인 삶이나 성공한 과학자에 대한 관점에서가 아니라 말이죠.”라고 그는 말했다.

▶ 혹독한 현실
증거
교묘한 데이터와 복사된 사진들이 남긴 흔적들


■ 증거물 A
석연치 않은 타이밍
황박사 줄기세포 주의 대부분이 2005년 1월 당시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황박사는 줄기세포 주 6개를 2월과 3월 사이에 더 만들어 내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주어진 시간으로 봤을 때 불가능한 것이다.

■ 증거물 B
조작된 사진들
2005년 사이언스 기고 논문에는 각기 다른 세포 주에 속하는 줄기세포를 보여주는 사진 4장이 함께 실렸다. 이 조작된 사진들은 체외수정으로 만들어낸 줄기세포를 찍은 사진을 여러 장으로 만든 것이었다.

■ 증거물 C
DNA 프린트

유전자 감식을 해 본 결과, 배양된 줄기세포 주가 기증자의 것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몇 개의 경우 각기 다른 샘플에서 심지어는 그 결함까지 데이터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 증거물 D
엉뚱한 난자
조사자들은 7개의 줄기세포 주가 진짜라는 주장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사실 이 중 3개만이 진짜인 것으로 판정되었는데, 이들 모두 전통적인 체외수정 방식으로 생성됐다.

▶ 추한 진실
영광의 자리에서 추락
승리에 찬 환성에서 굴욕에 이르기까지, 황박사와 새튼의 여정


2004년 2월: 황박사가 사람의 배아를 복제하였으며, 이 중 하나는 줄기세포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발표.

2005년 5월:황박사와 새튼이 사이언스지에 복제란에서 11개의 줄기세포 주를 만들어 냈다고 발표

2005년 11월: 새튼이 황박사와 절교 선언. 황우석 박사는 사이언스 지에 정정문을 가지고 연락을 취하며, 논문의 연구 결과는 바꾸지 말아달라고 말함.

2005년 12월: 황박사가 2005년 논문의 사진이 복사된 것임을 사이언스 측에 알림.

2005년 12월: 새튼이 논문을 취소할 것을 황박사에게 요구

2006월 1월: 사이언스 측이 조작임을 말하면서 논문 취소

2006년 2월: 피츠버그 대학 조사단은 새튼이 ‘과학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범한 것으로 결론.

2006년 3월: 황박사, 2005년 자신의 논문에 실린 데이터가 조작된 것임을 시인. 그로부터 2주 후 파면당함.

2006년 6월: 황박사는 현재 사기, 횡령, 생명윤리법 위반으로 기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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