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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가 이끄는 나라, 중국

얼마 전 포스텍(舊 포항공대)의 수석 졸업생이 서울대 의대로 편입한 것을 두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위기라는 것이죠.

“박사를 따도 미래가 불안한 현실이 답답했다”, “우수한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비전이 없다”, “취업하면 설거지나 한다”는 당사자의 말은 상황의 심각성을 함축적으로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공계가 푸대접 받는 현실은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실제 일본에서는 이공계 출신들이 스스로를 ‘구로코(黑字)’라고 비하합니다.

구로코란 가부키(歌舞伎) 같은 일본의 전통 연극에서 검은 가면에 검은 옷을 입고 배우들의 공연을 도와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인문계 출신이 주도하는 사회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물론 이와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는 나라도 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의 지도부는 거의 대부분 이공계 출신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은 칭화대학교에서 수력공학을 전공했고,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는 베이징지질학원 출신으로 지질학을 전공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002년 11월 제16회 당 대회에서 선출된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후 주석과 원 총리 포함)은 모두 이공계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왜 이처럼 이공계 출신이 한 국가의 최고위 집단을 휩쓸고 있는 것일까요. 한 가지 견해는 문화혁명의 영향이라는 것입니다. 문화혁명 당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은 하방운동(下放運動)이라고 해서 당·정·군 간부와 함께 지방으로 보내졌습니다.

이 때 상당수 간부는 물론 정치나 경제 같은 인문학을 배운 엘리트들은 쉽게 규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등 중앙정치무대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반면 후 주석과 같은 엔지니어들은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와 묵묵히 일할 수 있었죠. 한마디로 실리적 전문성을 장점으로 하는 이공계 출신은 정쟁에 좀처럼 휘말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분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중국 지도부는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사람들로 포진해 있고, 이 같은 지도부 구성이 최근의 고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의 차이는 국민, 좀 더 범위를 좁혀 말하면 기업의 의식 수준을 반영합니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 기업의 응접실에는 과학기술 잡지가 놓여 있다고 합니다.

오락용 잡지가 판을 치는 일본 기업, 과학기술 잡지라면 구매는 물론 광고 배정에서조차 “우리 회사와는 관계없다”며 심드렁한 자세를 보이는 한국 기업과는 확연히 구분이 되죠.

말이 조금 옆으로 샜지만 어쨌든 이공계의 불만은 이제 꼭대기에 오른 느낌입니다. 일부에서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일군 경제적 부(富)가 엉뚱하게 은행이나 증권사, 또는 부동산 관계자들에게 흘러들어간다는 불만도 나옵니다. 이공계 출신이 의사는 물론 은행이나 증권회사에 몰리는 것 역시 이의 연장선장에서 이해가 됩니다.

사람마다 생긴 모습이 제각각인 것처럼 경제적 지위에도 서로 차이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여건이 거의 비슷한, 아니 더 좋은 여건의 사람이 구조적인 요인으로 인해 경제적 손해를 본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공계가 대접받는 미국, 그리고 이공계가 이끌어 나가는 중국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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