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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테크놀로지

남의 것을 베끼는 짝퉁은 나름대로 역사를 갖고 있다. 제대로 베끼면 오히려 오리지널을 능가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구(舊) 소련은 미국의 B-29를 베껴 전략폭격기를 만들어 내는 역사상 최대의 짝퉁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짝퉁을 만들어 낸 경험은 구 소련이 1950년대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항공기술을 갖게 되는 기반이 된다.

요즘 중국의 짝퉁 제품이 난리다. 중국에는 삼성 애니콜 핸드폰의 짝퉁인 ‘삼멍’, ‘삼숭’ 등이 있는데 그 중 삼송이란 제품이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한다.

소주에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짝퉁이 활개 치는 곳이다. 필자도 중국에서 짝퉁 영화 DVD를 싼 값에 산 적이 있으며, 한국에도 없는 ‘JSA 2’라는 영화마저 있을 정도다. 이 정도면 짝퉁이 오리지널을 능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는 포토샵 CD를 10위안(당시 1,500원 정도)에 파는 것도 봤다. 아마도 중국은 짝퉁이 국가정책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산 자동차마저 짝퉁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자료제공: 중소기업진흥공단

미국의 B-29를 베낀 구 소련

중국이 좀 요란하게 짝퉁을 만들어서 그렇지, 짝퉁이란 것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리고 모든 테크놀로지가 독창적인 방식으로 개발된 것도 아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항공공학에서 독일에 뒤진 편이었다. 그러던 미국이 독일을 앞설 수 있었던 것은 패전국 독일에서 항공공학에 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가져오고, 과학자들도 영입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로켓 공학자인 베르너 폰 브라운이다. 그가 설계한 새턴 5호가 없었더라면 인간을 최초로 달에 보낸 아폴로 11호는 땅을 떠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짝퉁을 누구보다 많이 만들어낸 나라는 구(舊) 소련이다. 이는 냉전시대에 미국과 경쟁하면서 산업화는 시급했고 기술은 딸렸기 때문에 성급하게 짝퉁을 많이 만들어냈던 것으로 풀이된다.

구 소련이 만들었던 악명 높은 짝퉁 중의 하나가 카메라다. 요즘도 웹사이트를 통해 팔리고 있는 키에프(Kiev)라는 카메라는 다른 나라 모델들의 짝퉁 집합이다.

스웨덴의 하셀블라드 1600F와 1000F를 본 떠 만든 키에프 88, 독일의 콘탁스를 본뜬 키에프 3과 4, 일본의 펜탁스 67을 베낀 키에프 60은 645판형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키에프645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키에프 88은 하셀블라드를 너무나 닮은 나머지 러시아 사람의 이름 식으로 하셀블라드스키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들 카메라들은 값이 싸고 기술 수준이 조잡했지만 특이하고 투박한 형태를 좋아하는 마니아들 덕분에 수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도 서구의 기술을 많이 베꼈다. 그래서 한 때 모방의 천재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일본은 서구의 기술을 베껴서 소니의 워크맨이라든가 에사끼 다이오드 같이 일본 특유의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는 조금 다르다.

실제 서구의 카메라를 그대로 베껴 만든 구 소련의 카메라들은 안정적인 성능 제공에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상 최대의 짝퉁 프로젝트

구 소련이 만들어 낸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어처구니없는 짝퉁은 바로 항공 분야다.
때는 냉전시대. 미국과 구 소련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이겨야 했다. 거기에는 베끼기도 포함돼 있었다.

1940년대에 구 소련은 핵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전략폭격기의 개발을 위해 설계를 마치고 모형까지 만들어 놓았지만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그것을 만들 수 없었다.

자신들 손으로 전략폭격기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스탈린은 다급한 나머지 역사상 최대의 짝퉁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바로 미국의 전략폭격기 B-29를 그대로 베낀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원형이 된 것은 일본을 공습하고 돌아가다가 극동지역에 강제 착륙당한 4대의 B-29. B-29를 베껴다가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맡은 것은 후일 서방 세계를 벌벌 떨게 한 Tu-16, Tu-95, Tu-160 등의 전략폭격기로 유명한 투폴레프 설계국이다.



3대의 B-29는 모스크바로 옮겨져 그 중 한 대는 비행연구소에서 작동 매뉴얼 작성을 위해 사용됐고, 또 한 대는 투폴레프 설계국에서 분해돼 설계도를 작성하기 위한 자료로 쓰였다.

비행기를 분석한 투폴레프 설계국은 짝퉁 B-29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기간을 3년으로 보았지만 스탈린은 2년 내에 마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900개의 조직과 기관들이 짝퉁 B-29를 만들기 위해 모였다.

B-29가 도착하자마자 작업팀은 항공기의 주요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 나갔다.

이 과정을 통해 구 소련은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서는 자국의 금속공학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실제 구 소련은 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도입하게 된다.

하지만 장애물도 많았다. 스탈린의 교시에 따르자면 부품 하나라도 함부로 바꿀 수 없었으며, 투폴레프 설계국은 이 규칙을 엄격히 따랐다.

이에 따라 원형에서 조금이라도 바꾸면 모든 것에 수정이 필요하고, 일이 복잡하게 돼 기일을 맞출 수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 프로젝트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다.

하나의 기계를 베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구조강도 분석에서 잘 나타난다.

투폴레프 설계국은 B-29의 각 부분을 이루고 있는 미국산 재료들의 강도 특성을 연구한 후에 항공기를 이루고 있는 실제 부분에 어느 정도의 강도가 요구되는지를 거꾸로 추정해 나가는 어려운 ‘역 설계’를 시행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설계도를 바탕으로 금속공학자들에게 새로운 합금에 대한 요구 조건을 넘겨주었다. 항공기의 모든 부분에 걸쳐 이 같은 힘겨운 작업을 해야만 했다.

제대로 베끼면 최고의 기술

실제 생산을 위한 도면 작업은 B-29를 해체, 기술자들과 설계자들이 하나하나씩 그려나갔다. 항공기의 가장 기본적인 뼈대만 남을 때까지 모든 것을 뜯어내가면서 도면을 그려나간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46년 3월, 4만장의 설계도가 완성됐다. 항공기에서 떼어낸 모든 부속들은 검사와 복사를 위해 특수 설계국으로 보내졌다. 구 소련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질 항공기에 B-4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나중에 Tu-4로 생산되게 된다.

이 항공기의 엔진 문제는 그래도 쉽게 해결된 편이다. 아라카디이 슈베초프가 이끌던 엔진설계국이 1930년대 이후 미국과 면허계약을 맺고 라이트(Wright) 엔진의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40년대 초반에는 실제 B-29에 쓰였던 라이트 엔진과 비슷한 형태와 특성을 가진 M71과 M72 엔진을 개발하게 된다.

이를 감안하면 B-29의 엔진까지 베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터보차저와 조절 시스템, 발전기, 내열 베어링은 모두 베낀 것이었다.

화기관제 시스템도 미국 것을 썼다. 다만 B-29의 12.7mm 브라우닝 기관총 대신 20mm 기관포와 23mm 기관포를 쓰는 등 방어무기는 조금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B-29를 베껴서 복잡한 B-4를 만들어낸 경험은 1950년대 세계 어느 나라도 구 소련을 따라올 수 없는 항공기술을 갖는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B-4는 시험비행 도중 명칭을 Tu-4로 바꾸었으며, 스탈린 자신이 양산을 위한 서명을 했다. 이처럼 당 서기장이 직접 항공기의 양산에 서명하는 것은 구 소련의 항공 역사에서 드문 일이다.

Tu-4는 정찰용의 Tu-4R, 전자정보 수집용의 Tu-4REP, 핵폭탄을 적재할 수 있게 개조된 Tu-4A, KS1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Tu-4K, 지상공격용의 Tu-4D, 항법 훈련용의 Tu-4UShS 등 다양한 변종들이 생산돼 조자룡이 헌 창 쓰듯이 써먹게 된다.

그 중에서도 Tu-4K는 나토군의 선박과 수송단에 큰 위협이 되었으며, 몇 대의 Tu-4는 중국에 제공돼 1980년대까지 쓰였다.

글_이영준 추계조형예술대학
사진예술학과 교수, 기계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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