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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용해에 대한 예언

그린란드는 지구의 다른 곳에 어떤 일이 닥칠지 알려주는 지표다. 그린란드는 기후변화에 민감하며, 이곳의 대빙원은 북반구 생태학적 주기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북극 기상학자 콘라드 슈테펜은 지난 18년 동안 그린란드 만년설에서 봄을 났다. 그는 그곳에 직접 측후소를 만들어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렸다.

그린란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최근 10년간 만년설의 겨울 평균 기온이 섭씨 3.9℃나 올랐다.

변화의 폭이 너무 커 슈테펜은 계산이 틀린 게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슈테펜의 데이터대로라면 2100년경에는 해수면이 90cm 상승한다.

이전의 가장 비관적인 예측보다도 더욱 빨리, 더욱 높게 상승한다는 얘기다.

북극 기상학자 콘라드 슈테펜(55)이 지난 1990년 그린란드 대빙원에 최초의 측후소인 스위스 캠프를 설치했을 때만 해도 지구온난화는 염두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슈테펜은 균형선, 즉 여름의 빙하 용해와 겨울의 강설이 매년 완벽한 균형을 이뤄오던 위도에서 벌어지는 얼음과 대기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하고자 했다.

슈테펜은 “우리는 그린란드에 대해 지구 주변의 행성만큼도 모를 것”이라며 “그린란드의 일부는 아직 측량조차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린란드 정도의 위도를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는 인공위성은 극소수며, 특히 험악한 날씨 때문에 측량 기구를 설치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슈테펜의 목표는 지구 담수 공급의 약 8%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빙하 덩어리의 변화 과정에 대해 과학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을 알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극지방에서 균형선은 예전의 위치를 벗어났다.

측후소를 설치한 지 몇 년이 지나 슈테펜은 그린란드 만년설의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그 상승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10년이 넘게 지나자 겨울 평균 기온은 섭씨 3.9℃가 올랐다. 이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기록이다. 이 때문에 슈테펜은 처음에 뭔가 계산 실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 기록의 발표를 주저했다.

하지만 만년설의 변화를 알기 위해 데이터를 중복 검사할 필요는 없었다. 꼭대기에 태양열로 움직이는 관측장비를 갖춘 스위스 캠프의 기상 탑은 3.9m 깊이의 얼음 속에 기반을 잡고 있었는데, 그 기상 탑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

1997년 그린란드 서쪽의 야콥샤븐 빙하로 날아간 슈테펜은 탑이 무너진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마치 거대한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야콥샤븐 빙하에 대한 속도 검사 결과 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움직이는 빙하의 이동속도가 더욱 빨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997년부터 2003년 사이에 빙하의 이동속도는 두 배나 빨라졌다.

온난해진 대기로 빙하가 더욱 빨리 움직인다는 것은 과학의 일반적 예상에 속한다. 하지만 과거의 빙하학 지식에 따르면 그린란드와 남극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빙원은 기온이 변화하더라도 수 백 년이나 수 천 년 동안 지켜봐야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느리게 움직여야 했다.

슈테펜의 지상설치 기구와 위성 데이터에서는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스위스 캠프 아래의 얼음이 더욱 빨리 움직인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었다. 원래 견고했던 얼음이 녹아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면서 하루에 최고 50cm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

지진계는 1,500m 두께의 만년설이 바다 쪽으로 흔들리면서 일어나는 빙진이 점점 빈번해짐을 포착했다.

2006년에 그린란드의 대빙원은 150기가톤의 얼음을 흘려보냈다. 이는 알프스의 모든 얼음보다도 많은 양이다. 슈테펜은 “그린란드가 쪼개지고 있다”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말했다.

만년설 위의 카나리아

극지방 과학계에서 콘라드 슈테펜은 하나의 전설이다. 친구와 동료들 사이에서 ‘코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콜로라도 주 보울더에 있는 연구센터인 환경과학연구협동연구소(CIRES) 직원 550명과 5,000만 달러의 연간 예산을 감독한다.

CIRES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 여러 기관으로부터 합동으로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슈테펜은 관리자로서가 아닌, 얼음 속을 탐사하는 탐험가로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북극의 고위도 지방에서 지난 32년간 여름을 보냈고, 그린란드에 정착하기 이전에는 알래스카와 캐나다에서 일했다. 그린란드에 있는 그의 그린란드 기후네트워크는 전 세계 기상 과학자들의 눈과 귀 구실을 하고 있다.

슈테펜이 특별 제작한 여러 계측장비를 통해 그린란드 대빙원의 상황과 변화 상태를 매 시간별로, 연도별로 학계에 보고하기 전까지 이곳의 가혹한 현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고무적인 것은 아니다. 슈테펜과 그의 동료들이 이제야 간신히 이해하기 시작한 새로운 데이터들을 보면 유엔(UN) 기후변동에 대한 정부간 패널(IPCC)의 최근 보고서에 나온 무서운 경고들마저도 그나마 온건한 표현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를 연구하는 데 최적의 장소는 지구에서 제일 추운 곳이라는 점을 알아냈다.

북극과 남극,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맥은 지구의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빠르게 기후변화에 반응한다.

특히 그린란드는 기후 변화에 민감하며, 이곳의 대빙원-슈테펜의 말을 빌리자면 유럽의 날씨 조절기 역할을 하는-은 북반구 생태학적 주기의 많은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 세계의 온난화 정도를 알려주는 바로미터 구실을 한다.

그린란드 대빙원에서 나온 눈 녹은 물은 해수면 상승의 가장 큰 잠재적 원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10년 동안 그린란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에 따라 향후 100년 동안의 지구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2007년 ‘국제 극지방의 해(International Polar Year)’에 참가한 60개국의 과학자들은 극지방에 대한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제까지 과학자들이 본 자료-대부분이 슈테펜의 그린란드 기후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것-에는 심각한 경고가 실려 있다. 대빙원이 녹은 물은 과학자들이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빠르게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스위스 캠프에서 보내온 소식들을 토대로 결론내보면 해수면은 이전의 어떤 비관적 예측보다도 더 빨리, 더 높게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캠프로 가는 길

파퓰러사이언스의 톰 클린스 기자는 보울더에서 그린란드로 정례 여행을 가던 슈테펜이 뉴욕 주 알바니 공항에 잠시 멈췄을 때 그를 만났다. 그의 얼굴에 걱정하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슈테펜은 키 크고 말랐지만 강인했으며,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과 세어 가는 턱수염을 하고 있었다. 강렬한 빛의 청회색 눈과 주름지고 거친 볼은 55년간의 인생 중 절반이상을 거친 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사나이다웠다.

그가 말을 할 때 그가 집에서 아내와 두 아이에게 쓰는 슈바이쩌도이치(스위스식 독일어)의 쾌활한 억양을 들을 수 있었다.

슈테펜은 “우리는 그린란드가 쪼개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슈테펜이 클린스의 지프에 던져 넣은 더블 백 3개는 그가 이틀 밤을 꼬박 새워 포장한 82개의 화물 상자에 비하면 턱도 없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정확히 말하면 오전 4시 30분- 에 슈테펜과 그의 짐, 그리고 그가 이끄는 대학원생 3명은 스키넥터디의 주 방위 공군기지에서 C-130 수송기에 탑승했다.

접이식 스키를 단 항공기는 그린란드 서해안의 캉거루수아크로 길고 느린 비행을 시작했다.

슈테펜과 그의 팀은 캉거루수아크에서 스키를 장착한 트윈 오터 항공기를 타고 다시 남부 그린란드로 날아갔다.

그들은 그 후 3일 동안 북쪽으로 계속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장비를 수리하고 새로운 측후소를 설치했다.

악천후가 닥치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려고 꼬박 밤을 새워서 일했으며, 잠은 필요할 때만 잤다. 슈테펜은 눈을 반짝이며 “다음에 도착할 곳은 스위스 캠프”라고 말했다.

북극권에서 3.5도 위에 위치한 스위스 캠프는 3개의 반영구적 텐트, 그리고 사우나가 딸린 휴게실로 이루어져 있다. 슈테펜과 그의 팀은 대개 밤 기온이 섭씨 영하 31.7℃를 맴도는 4월 말에 캠프에 도착한다.

하루의 과업에는 얼음을 파내 장비수납공간 및 작업공간을 만들고, 얼어붙은 장비들을 도로 살려내는 일 등이 포함된다.

때로 스노모빌이 고장 나면 캠프까지 16km나 걸어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슈테펜은 “이곳에 우리 대학원생들을 잘 적응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스위스 캠프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슈테펜은 침낭, 말보로 한 갑, 위성전화를 가지고 스노모빌에 올랐다. 계속 변하는 절벽, 눈 녹은 물로 이루어진 호수, 깊은 크레바스를 뚫고 캠프와 측후소 사이의 길을 내려는 것이다.

16km 떨어진 측후소는 뒤죽박죽인 얼음판 위에 설치돼 있다. 기본적인 기상관측 장비부터 무선분광계, GPS기기, 지진계 등 여러 관측 장비들이 말뚝 위에 설치돼 있다.

과거 슈테펜의 대학원생이었고, 현재는 나사(NASA)의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저온권과학부서장인 왈리드 압달라티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 스위스 캠프에 왔을 때가 생각나요.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물건들이 과연 겨울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날 수 있을까?’ 하지만 슈테펜이 장비를 설치한 지 18년이 지난 지금 여기에서 나온 데이터를 사용하는 과학자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아요. 코니가 없었더라면 북극의 기후온난화, 용해 역학에 대한 정보는 아주 적었을 거예요.”

그린란드 대빙원의 해부도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을 뒤덮고 있는 대빙원은 수많은 북극 생물들의 삶터이며, 전 세계 담수의 8%를 저장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해수면을 6.3m 상승시킬 수 있는 양이다.

대빙원의 얼음 두께는 평균 1,500m며, 매년 겨울눈이 올 때마다 보충된다.
수 백 년에 걸쳐 내린 눈은 압축돼 얼음이 되고, 이후 바다로 밀려나간다.

최근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과정은 가속화되고 있다.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맨 위층이 녹는다. 그리고 열을 머금은 눈과 액체상태의 눈은 아래로 흘러 구멍을 뚫는다.

녹은 물은 아래쪽의 암석층으로 스며들어 얼음 덩어리를 매끄럽게 하고 더 빨리 바다로 나가게 한다.

말보로와 에스프레소의 힘

슈테펜은 연구 프로젝트에 재능 있는 인재는 물론 장기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능력과 업무능력 모두 탁월하다.

CIRES에서 슈테펜은 NASA 및 미 국립과학재단의 자금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감독하고 있다.

콜로라도 대학의 교수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연구를 진행시키는 한편으로 여러 대학원 수업에 출강하고 있으며, 특히 대학원생들의 좋은 후견인이 돼주기도 한다.

그는 약 50편 이상의 과학논문을 저술 또는 공저했으며, 앨 고어 전 부통령 및 부시 행정부 모두에게 조언을 해 주는 몇 안 되는 과학자이기도 하다.

과거 슈테펜의 제자였고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버드 극지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제이슨 박스는 이렇게 말한다. “슈테펜은 하루에 서 너 시간씩 밖에 잠을 자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 분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고 생각했지요. 일부 학생들은 슈테펜의 혈관에는 피 대신 에스프레소가 흐를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슈테펜이 스키넥터디에서 처음 찾은 것은 매우 진한 커피 한 잔이었다. 클린스와 슈테펜은 시내에 주차한 후 자갈이 깔린 카페 앞마당으로 들어갔다. 카페 건물로 들어서기 전 슈테펜은 잠시 멈추어 담배 한 대를 피웠다.

“1978년에 저는 24시간 동안 금연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어쩌다 금연을 하게 됐는지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해 주었다.

1970년대 후반 슈테펜은 바핀 섬 근처의 랭카스터 해협 위의 유빙에서 2번의 겨울을 보냈다. 박사 논문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는 빙하의 경사면을 오르내리던 중 눈사태를 만나 타고 있던 스노모빌에서 떨어졌다.

몇 시간 후 그가 눈보라를 맞으며 깨어났을 때 그의 턱은 탈구돼 있었고, 종아리에서도 뼈가 부러져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노모빌에 다시 시동을 걸 수 없었어요. 그리고 다리는 힘없이 덜렁덜렁 했고요. 저는 몸을 끌고 측정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알루미늄 말뚝을 박아놓은 곳으로 갔어요. 그 말뚝을 뽑아서 부목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스노모빌을 밀어서 그걸 엄폐물 삼아 눈보라를 막았지요. 피돌기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30분마다 한 번씩 성한 다리로 일어나 뛰어다녀야 했어요.



그 땐 담배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지요. 그 상황에서 담배를 피웠다간 혈관이 확장돼서 얼어 죽고 말거든요.”

8시간 후 폭풍이 잦아들자 그의 연구 파트너인 카를 슈로프가 도보로 그를 찾아 나섰다.

며칠 전에 슈테펜이 또 다른 스노모빌을 타고 다니다가 살얼음판에 빠져 침몰시켜 버렸고 본인도 섭씨 영하 1.1℃의 물에 빠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슈테펜의 회상은 이어진다.

“카를은 대빙원의 정상에 서 있었어요. 그는 거기서 까악까악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 그는 그 소리가 그 지방에는 살지 않는 새 울음소리인줄 알았대요. 아무튼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그건 제가 지쳐 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고 하더군요.”

슈로프는 슈테펜에게 초콜릿 한 조각을 주고 캠프로 돌아가 무전기로 지원을 요청했다. 그의 첫 구조 요청에 아무도 응답하지 않자 그는 지쳐 잠이 들었다.

1시간 후에 그는 일어나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툴레 공군 기지로 날아가던 미 공군 항공기가 그 무전을 수신했다. 결국 슈테펜은 스노모빌에서 떨어진 지 24시간 만에 캐나다 구조대에 의해 구출됐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당시 여자 친구였고 현재는 아내가 된 여인에게 보내려던 작별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슈테펜은 “그 편지를 아직도 갖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녀에게 편지를 전해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테펜은 담배를 비벼 끄면서 덧붙였다. “아무튼 필요할 때는 담배를 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돼서 기쁘더군요.”

빠르게 줄어드는 북극의 만년설

슈테펜의 연구에 의하면 지난 1992년부터 2005년 사이에 그린란드의 눈 용해 지역은 급격히 증가했다.

그린란드의 동토지대 중 일부는 매년 여름 항상 녹았지만,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슈테펜의 관측기에는 이전보다 높은 고도와 위도에서 용해가 일어나는 것이 포착됐다.

또한 그린란드의 남단과 동단 주변에서만 용해가 일어나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더욱 북쪽과 내륙에서도 얼음의 용해가 일어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린란드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눈 녹은 물이 걸프스트림의 염수 농도를 낮춰 유럽의 날씨를 조절하는 북대서양 해류를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린란드 대빙원의 비밀힘

NASA의 빙하학자인 제이 츠발리는 지난 14년 동안 그린란드 만년설에서 슈테펜의 연구 동료였다.

그들이 젊었을 때는 대빙원의 경우 빙하와 달리 온난화에 극도로 둔하게 반응, 녹은 물이 수 백 년 동안 위에서 흘러내리거나 증발돼야 상당한 양의 얼음이 사라진다는 낡은 이론이 득세했다.

그러나 츠발리와 슈테펜은 데이터 경향을 살펴보고 또 다른 과정이 진행 중일 것이라고 의심한다. 슈테펜은 이렇게 말한다.

“이건 그냥 녹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많은 얼음이 이렇게 빨리 녹을 수는 없어요.”
그들은 만년설 표면의 녹은 물이 약 1,200m 아래의 암반으로 스며든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을 실험해보기 위해 그들은 cm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하는 GPS 송수신기 네트워크를 설치했다.

그들은 GPS 측정 결과를 위성, 지면 관통 레이더 및 기타 측정기기의 데이터와 비교했다.

그 결과 그들은 2002년도의 논문에서 대빙원이 표면부터 녹아가며 마치 빙하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결론으로 학계를 놀라게 했다. 슈테펜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동적 반응’이라고 부릅니다. 녹은 물이 암반으로 들어가면서 용해가 가속됩니다.

맨 밑바닥에서는 외곽 빙하 아래로 흐르는 물이 윤활유 역할을 해서 얼음 덩어리들이 바다로 더 빨리 나가도록 합니다.

대빙원이 지구온난화에 이렇게 빨리 반응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피드백을 통해 우리는 점점 북극에 대해 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북극은 대단히 민감한 환경입니다.”

현재의 용해 속도 증가는 기온 상승에 대한 북극의 일시적인 반응일수도 있지만 상당히 오래 갈 수도 있다고 슈테펜은 말한다.

실제 NASA의 뛰어난 기상학자인 제임스 핸슨을 포함한 일부 과학자들은 츠발리와 슈테펜의 관측 결과와 남극에서 얻은 데이터를 연계해 대규모 극지 용해가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알비도 효과’, 즉 얼음이 녹아 없어지면서 드러난 지면과 해수면이 지구 복사력을 감소시키고 더 많은 태양 에너지를 곧장 흡수하는 효과에 주목한다.

2005년 과학 잡지 ‘클라이밋 체인지’에 실린 논문에서 핸슨은 지구 대기 내의 온실가스 축적으로 가속되는 현재의 얼음 용해 속도는 스스로 가속이 붙어 피드백 주기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종국에는 그린란드 대빙원의 완전한 해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적었다.
핸슨과 그 외의 많은 기상학자들은 지구 기온이 섭씨 2℃ 이상 상승할 경우 그린란드 대빙원이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녹기 시작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린란드 대빙원의 신속한 용해는 전 세계의 해수면을 상승시켜 해안의 도시들과 농경지대는 물에 잠기게 된다.

또한 커다란 빙산이 그린란드 해안으로 떠내려 오면 차가운 담수가 북반구 날씨를 조절해 주는 걸프스트림 같은 해류의 흐름을 방해한다. 슈테펜은 “이 같은 피드백이 시작되면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적 반응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상학자들이 해수면 변화를 예상하는데 사용하는 기후 모델에는 아직 끼지 못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동적 반응이 해수면 상승에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력은 UN 기후 변동에 대한 정부간 패널(IPPC)이 올해 초 발간한 ‘클라이밋 체인지 2007’ 보고서에서 해수면 변화의 원인으로 고려되지 못했다.

130개국 과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이 IPCC 보고서는 기후온난화가 명백한 사실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으며 그 증거로서 기온 상승, 광범위한 지역에서의 눈과 얼음 용해, 해수면 상승 등을 들고 있다.

70개의 기후 모델 연구에 대한 메타 분석인 이 보고서는 2100년이 되면 해수면이 20~60cm 상승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 수백 내지 1,000년에 걸쳐 그린란드와 남극 서부에서 빙하가 녹아 사라지고, 4~6m 가량의 전 세계적인 해수면 상승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몇몇 저명한 기상학자들의 반대에 부딪친 IPCC는 “동적 얼음 흐름 과정은 현재 사용하는 모델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관측 결과에 의하면 이 과정이 대빙원을 기후 온난화에 취약하게 하고 해수면을 더욱 상승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각주를 통해 예측을 수정했다.

알래스카 대학 지구물리학 연구소의 마틴 트루퍼는 이렇게 말한다.
“동적 반응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우리는 IPCC의 예상치보다도 해수면이 더욱 높이 상승할 수 있다는 걸 잘 압니다. IPCC는 조심스럽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합니다만 그들의 결론은 최근의 발견 내용과는 한참 거리가 있습니다.”

클린스는 저녁을 먹으면서 슈테펜에게 현재의 추세로 미루어 보건대 2100년경에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할 것인지 간단히 예측해달라고 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불행하게도 1m 이상 상승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93년 동안 해수면이 1m만 상승해도 어마어마한 결과가 초래된다. 저지대의 해안지대와 대규모 삼각주들은 모두 침수되고 만다. 수 백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일 삼각주, 방글라데시의 브라마푸트라 등이 대표적이다.

추측컨대 미국이나 네덜란드 같은 선진국들은 새로운 시스템 개발 등으로 해수면 상승에 대처할 것이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사하라 사막 이남의 서해안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그대로 집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어떤 연구에 의하면 극적인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에서 최소 10억 명의 사람들이 이재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지구에서 가장 빠르게 온난화되고 있는 북극에서는 기온이 크게 상승해 그린란드 거주지에 사는 사람들은 예년보다 더욱 잦은 안개, 눈, 봄비를 보고 있다.

이러한 기상 현상들은 차례로 만년설을 용해시켜 바다로 더 많은 담수를 내보내 해류를 방해하고 만으로 더 많은 따뜻한 바닷물을 흘려보내 바다 얼음의 붕괴를 가속화시킨다. 끊임없는 온난화 주기 속에서는 이런 악순환이 계속 이어진다.

슈테펜은 이렇게 말한다. “마을에 사는 친구들을 찾아갔는데 그저 만년설만 녹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해안 전체의 기후가 바뀌고 있고 그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어요.”

최근 10년 동안 그린란드 해안 대부분의 지역에서 북극곰이 서식처를 옮겼고, 바다 얼음도 사라졌다.

슈테펜은 모기가 크게 늘어나 여름나기가 힘들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린란드의 일룰리사트 마을 주민들은 이제 개썰매를 타고 이웃 마을로 가거나 얼어붙은 만에 갇힌 고래와 물개를 사냥할 수 없다.

북극 마을에서 가축으로 키우던 개들은 이제 할 일이 없는데다가 개들이 먹을 물개고기도 구할 수 없어서 결국 개 주인들은 개들을 수 백 마리나 도살하고 있다.

극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전세계에서 최소 10억명의 사람들이 이재민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낙관할 수 있는가

잠재적인 지구적 재앙을 알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슈테펜의 네트워크에서 나온 모든 절망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전의 어느 때보다 자기 일을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과학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난 60만년 이래 가장 짙으며, 온실가스 배출을 통제하느냐 못 하느냐 여부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다고 우리의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진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보다 깨끗한 기술을 개발하고 판매하는데 쓸 돈을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석유 채굴을 계속하고 중국과 인도에 석유 판매를 계속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입니다.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죠.”

슈테펜은 올해 자신의 네트워크에 두 개의 측후소와 빙진 기록용 GPS 및 지진계를 추가로 세울 예정이다. 그는 암반으로 눈 녹은 물을 흘려보내는 수직갱 틈새에도 들어가 보려 한다.

모든 것이 잘 되어준다면 그는 대빙원의 녹은 물 배수에 관한 새로운 역학적 사실을 알려주는 레이저 기기도 설치할 것이다.

슈테펜과 츠발리는 얼음 속으로 눈 녹은 물과 그 열기를 1.6km나 흘려보내는 틈새가 만년설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전 세계의 기후 변화에 잠재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고 보고 있다.

에스프레소 두 잔을 마신 후 클린스는 슈테펜을 홀리데이 인에 데려다 주었다. 시각은 오전 12시 30분. 모닝콜 3시간 전이었다.

극지 과학자들과 지원팀들은 몇 시간이라도 쉬기를 바라면서 접수처 근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잠시 후면 승객들이 빼곡히 탄 비행기가 캉거루수아크로 떠날 것 같았다. 슈테펜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저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물리학자, 지질학자, 공학자, 그 외에 환경과학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시각을 가지고 한 팀으로 일하게 되어 좋습니다.”

이들 연구자중 많은 사람들은 NASA의 압달라티가 ‘대빙원 커뮤니티’라고 부르는 슈테펜 추종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압달라티는 대학원생 시절 슈테펜과 함께 그린란드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날은 바람 불고 춥고 엄청나게 어두운 날이었죠. 헬리콥터는 우리를 내려주고 바로 이륙했어요. 그러자 우리는 차가운 침묵 속에 홀로 남겨졌죠. 들리는 건 바람 소리 밖에 없었어요.”

그 때야말로 압달라티의 일생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이었다. 그 때 그는 스승을 돌아보았다.

“코니는 몸을 뒤로 젖히고 팔을 쫙 벌리고 있었어요. 그는 자기 세상에 왔고, 그 세상을 한껏 즐기고 있었어요.

그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 사람이야말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고 있구나’ 하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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