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실린더 속의 작은 우주









영국의 랭커스터 대학 연구팀은 우주 팽창이론, 즉 빅뱅 직후 우주가 신속히 팽창했다가 갑자기 그 속도가 줄어들었다는 가정을 증명하기 위해 실린더 속의 우주를 만들었다. 극저온 설비를 활용, 초기 우주환경을 재현한 것이다. 이 같은 실험이 현대
우주론의 진위를 입증해 주는 최종 증거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실험은 현대 우주론과 실제의 간격을 메워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실험을 해보는 것이 막연하게 이해하려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작은 크기의 실린더(사진)에는 영하 256.4℃의 헬륨이 들어있다. 온도가 절대영도(0K)에 가까운 초저온 상태다. 이처럼 극한의 온도를 구현한 것은 초기 우주와 유사한 혹독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실제 이 온도에서 헬륨은 점성이 전혀 없는 유체, 즉 마찰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에너지 손실 없이 영원히 회전할 수 있는 유체인 초유체 상태가 된다. 그리고 실린더 속에서는 헬륨이 출렁거릴 때마다 우주가 빅뱅 이후 겪었던 일들이 벌어진다. 초기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소용돌이가 은하와 별, 그리고 행성으로 커져가는 것이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연구팀은 우주 팽창이론, 즉 빅뱅 직후 우주가 몇 분의 1초 만에 신속히 팽창했다가 이후 팽창 속도가 급속히 줄어들었다는 가정을 증명하기 위해 실린더 속의 우주를 만들었다.

올해 1월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 지(紙)에도 실린 이 우주 팽창이론 실험은 우주의 불균형한 팽창 이유, 우주의 전체 넓이, 우주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등 현대 우주론의 많은 궁금증들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물론 랭커스터 대학 연구팀뿐만 아니라 대다수 물리학자들도 이와 유사한 우주 팽창이 있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왜 일어난 것인지, 어떻게 일어났는지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사실 아직까지 누구도 이 문제의 정답을 내놓치는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우주 팽창 및 팽창 속도 감소에 사용된 에너지의 출처다. 우주가 팽창하려면, 또한 팽창 속도가 갑자기 줄어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수한 물리학자들이 바로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노이로제에 걸렸을 정도다.

사실 인류가 관찰할 수 있는 우주는 단 하나에 불과하고 우주 팽창 기간이 130억년 이상 진행됐음을 감안한다면 쉽게 비밀이 밝혀질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우주 팽창, 블랙홀, 빅뱅 등의 우주 현상은 인간이 경험해볼 수조차 없다. 우주의 신비를 밝히겠다고 실험실에서 블랙홀을 만들거나 초신성 폭발을 일으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그렇다면 과학자들은 도대체 무슨 수로 이 거대한 현상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고 입증할 수 있을까.

물리학자들은 랭커스터 대학의 초저온 헬륨 실린더와 같은 ‘양자 유사체(quantum analogue)’가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양자 유사체란 양자들의 특성을 활용, 미시세계에서 우주 탄생과 같은 거대 현상을 재현하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세계를 가장 작은 세계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3차원의 면 우주

랭커스터 연구팀이 초저온 헬륨 실린더로 재현하려고 하는 우주의 팽창은 면 팽창(brane inflation)이라는 것으로 끈 이론과 관련이 깊다. 끈 이론은 자연계를 이루는 모든 기본입자가 하나의 점이 아니라 무한한 자유성을 지닌 1차원의 끈으로 돼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M이론에서는 기본입자를 1차원의 끈보다 자유도가 두 배나 높은 2차원의 면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면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굵기가 0에 가까운 경우 ‘1차원 면’이라 부른다. 면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길이라는 한 가지 차원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평면은 길이와 면적을 가진 ‘2차원 면’이다. 이와 관련, 일부 우주론자들은 우리 우주가 3차원의 면으로 구성돼 있으며, 4차원의 공간 속에 들어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가 유일한 우주가 아닐 수도 있다. 다수의 3차원 면이 4차원 공간 속을 떠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두 개의 차원 입자, 즉 두 개의 우주가 서로 접근할 때 우주의 급격한 팽창을 일으키는 에너지가 생긴다. 이후 두 면이 실제 충돌에 이르게 되면 순식간에 에너지가 사라져 우주 팽창 속도가 급속히 감소하게 된다.

이 같은 우주 팽창이론을 관찰하기 위해 랭커스터 연구팀은 두 개의 초저온 액체헬륨 실린더 속을 들여다본다. 여러 가지 초저온 액체가스 중 굳이 헬륨을 사용한 것은 안정성에 기인한다.

실제 헬륨은 절대영도에서 액체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원소이자 원자 구조가 대칭을 이뤄 초기 우주를 재현할 수 있는 최적의 물질로 꼽힌다. 과학자들은 뜨겁고 젊은 우주가 균등하고 균형 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우주가 식으면서 이러한 균형 중 몇 가지는 사라져 버렸는데, 차가운 헬륨 속에서도 이와 동일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다.연구팀은 실험에서 물성이 다른 A 상태와 B 상태의 헬륨을 준비했다. 그리고 A 상태의 헬륨을 중간에 끼워 넣어 B 상태의 헬륨을 2개로 분리시켰다. A 상태와 맞닿은 B 상태의 상부 및 하부 헬륨은 4차원의 우주 속을 떠도는 2개의 3차원 면을 상징한다.(하단의 그림 참조) 이후 연구팀은 우주가 또 다른 우주와 만나듯 A 상태의 헬륨을 붕괴시켜 B 상태의 헬륨 면을 서로 접촉시켰다. 이 면 팽창 실험에서 무엇이 목격됐을까. 물질 덩어리들이 어떻게 은하계의 형태로 평온한 우주를 형성했는지에 대한 해답이 숨어 있다.

구체적으로 면 팽창 이론에서는 우주라는 3차원의 면 2개가 충돌한 후 끈 모양의 에너지 덩어리가 우주 전체로 퍼져 나갔다고 말한다. 우주 끈(cosmic string)이라고도 불리는 이 에너지는 각 물질들의 결합 지점이 되는데 우주가 팽창하면서 우주 끈도 성장, 결국 다수의 은하단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실험에서도 면 팽창 때 예견됐던 우주 끈과 같은 양자들의 소용돌이가 헬륨 속에서 발생했다. 물론 이 소용돌이가 면 팽창이 실제 일어났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130억 년 전 우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는 있다.

연구팀의 일원인 리처드 할리 박사는 “이 실험은 우주와 동일한 수학적 언어를 구사하는 양자 유사체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며 “만약 우주가 3차원의 면이고 빅뱅 직후에 충돌한 것이 사실일 경우 이 실험은 면 팽창이 우주 끈을 생성시킨 직접적 증거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우주가 어떻게 탄생해서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설명이 가능해 진다는 얘기다.

웜홀과 블랙홀 속으로

지난 1972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윌리엄 언로 박사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블랙홀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이 강의를 하면서 폭포 꼭대기에 살고 있는 물고기 떼를 예로 들었다. 물고기에게 폭포는 일종의 경계선이다. 폭포 쪽으로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폭포에 떠밀려 아래로 떨어지고, 다시는 위로 돌아올 수 없다.



더구나 이 경계선을 넘으면 물의 속도가 음속보다 빨라지기 때문에 일단 추락이 시작되면 물고기는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언로 박사는 바로 이 침묵의 심연을 ‘덤홀(dumb hole)’이라 명명했는데, 지금까지 빛이 중력에 의해 끌려 들어가는 현상인 블랙홀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로 활용되고 있다.
당시 그는 학부생들에게 블랙홀 주변에서 일어나는 빛의 움직임을 가르칠 때에도 덤홀 이야기를 인용하곤 했다. 그러던 중 1980년에 이르러 유체역학 강의를 준비하다가 이 덤홀이 단순히 재미있는 설명을 넘어 실제 블랙홀이나 화이트홀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는 “소리는 빛, 물의 흐름은 시공간의 뒤틀림,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물고기는 무전기를 가진 우주비행사로 대치하자 웜홀의 설명만으로 블랙홀과 화이트홀 현상의 대부분을 표현할 수 있었다”며 “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샤워실의 배수구가 곧 블랙홀인 셈”이라고 말했다.그렇다고는 해도 웜홀이 블랙홀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일례로 블랙홀의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는 정말 블랙홀이 그 이름처럼 검은 색인가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난 1974년 블랙홀도 유한한 존재며, 복사를 하고 있어 미약하지만 온도를 갖고 있다고 추정했다. 이를 ‘호킹복사’라고 하며, 이 주장이 맞다면 블랙홀은 검은색이 아니라 짙은 회색에 가깝다.

호킹 박사의 이 주장은 물리학자들에게 커다란 돌파구가 됐다. 이들은 1920년대 양자역학 법칙이 이론적 틀을 갖춘 이래 이 법칙을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과 결합시키려고 애써왔으며, 이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를 밝혀내는 것이 끈 이론가들의 핵심 과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즉 호킹 박사는 중력에 대한 양자이론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계산은 양자역학을 중력계에 적용시킨 최초의 시도이자 가장 유명한 사례로 남아있다.

물론 현재까지 호킹복사는 그저 이론적 가설이며, 블랙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학자적 추측에 불과하다. 호킹복사로 나오는 신호가 너무 미약하기 때문에 블랙홀에서 볼 수 있다는 호킹복사를 아직 아무도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

이에 언로 박사는 자신의 웜홀과 호킹이론을 접목시켜 이를 증명하고자 했다. 호킹의 계산을 폭포에 적용하면 웜홀 또한 호킹복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미립자를 방사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 웜홀에서 호킹복사를 보는 것은 블랙홀에서 만큼이나 어렵다. 폭포 주변은 따뜻하고 열이 많아 호킹복사에 의해 발산되는 열이 묻혀버린다는 것이 문제다. 언로 박사 자신도 웜홀에서 호킹복사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불가피하며 단시간 내에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인공 블랙홀과 웜홀

이론적으로 블랙홀을 만들어 내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 단 하나의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어떤 유체가 자신을 통과하는 파동(wave)보다 빨리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관점에서 빛은 이런 실험에 쓸 파동의 재료로는 적절치 않다. 빛의 속도는 워낙 빠른 반면 그에 비해 유체는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체를 ‘보즈-아인슈타인 응집(BEC)’ 상태로 만들면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BEC는 기체를 절대영도에 가깝게 냉각, 원자들의 활동을 거의 정지시켜 에너지가 최저로 낮아질 때 유발된다. 이 상태에서 수천, 수만 개의 원자들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양자 미립자처럼 응집돼 군인들이 제식훈련을 하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특히 BEC 상태의 물질은 급격한 응축으로 인해 밀도가 거의 무한대로 올라간다. 연구자들이 이를 인공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적절한 조건이 제공될 경우 빛도 이 상태로 만들 수 있다. 1999년 미국 하버드 대학의 물리학자 르네 하우 박사는 실제 BEC 현상을 이용해 빛의 속도를 사람이 걷는 속도 수준으로 떨어뜨렸으며, 2년 후에는 완전히 정지시키기까지 했다.

이 BEC 상태의 물질을 회전시키면 일정한 패턴의 양자 소용돌이가 나타난다. 양자역학적 관점의 웜홀 폭포가 생기는 것이다. 영국 세인트앤드류스 대학의 울프 레온하르트 박사는 이 양자 폭포가 느린 속도의 빛에게는 블랙홀과 동일한 작용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그의 생각을 실험으로 입증해 낸 연구팀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레온하르트 박사는 이보다 더 간단한 장비를 이용해 블랙홀 유사체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성공했으며, 금명간 이 실험의 첫 번째 결과가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과연 이와 같은 실험을 통해 연구자들이 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호킹의 계산은 시공간을 일그러뜨리는 실제 블랙홀에 관한 것이지 속도를 느리게 만든 빛이나 폭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결과적으로 양자 유사체 시스템 또한 현대 우주론의 진위를 입증해 주는 최종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면 블랙홀을 가까이서 관찰한다거나 초기의 우주를 재현해 보는 등 지상에서 우주적인 현상을 실험해볼 수 있다. 진실을 직접 파헤칠 수는 없다 해도 진실에 접근할 수는 있다는 의미다.

이는 물리학자들이 매일같이 실험을 거듭하며 자신의 이론적 견해를 검증해 나가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역설적이지만 경험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일수록 실험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양자 유사체는 바로 이 이론과 실제의 간격을 메워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뜯어보는 것이 그럴 수 없는 대상을 막연히 이해하려는 것보다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빅뱅

빅뱅 직후 우주는 엄청난 속도로 확대됐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어떻게 팽창했는지도 미궁이다. 한 이론에 의하면 우리의 우주는 4차원 공간에 매달린 3차원 면의 세계라고 한다. 우주의 팽창은 이 3차원 면이 또 다른 3차원 면과 부딪치는 순간 일어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 이 충돌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주 끈이 은하계의 원천이라고 설명한다. 이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 랭커스터 대학 연구팀은 양자 유사체 시스템을 제작했다. 이 장치 속에서 헬륨은 두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A 상태의 헬륨이 B 상태의 헬륨 가운데에 일종의 경계 막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구팀은 이 경계가 무너져 B 헬륨 면이 서로 부딪치면 작은 우주가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1. A 상태의 헬륨으로 B 상태의 헬륨 사이에 경계 막을 형성한다.

2. A 상태의 헬륨이 붕괴되면서 B 상태의 헬륨 막 2개가 만나게 된다.

3. 급격한 충돌이 발생, 우주 끈과 같은 에너지 여파가 헬륨 액체 속으로 퍼져 나간다.

4. 초기 우주에서는 이 우주 끈 에너지가 각각의 은하계 합체를 초래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