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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닮은 로봇 시대의 도래

수 천 만년 동안 진화를 통해 다듬어진 생물은 과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과학자들이 생물의 움직임을 모방한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유자재로 자세를 바꿔가며 문틈 같은 좁은 공간을 파고드는 거미 로봇, 병사들의 군장을 대신 짊어지는 개 로봇, 그리고 2개 또는 4개의 지느러미를 어떻게 활용해야 가장 안정적인 자세로 헤엄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거북이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근대 이후 자연을 넘어서기 위한 도구였던 기계와 전자장비의 모티프가 다시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사실은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02년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의 워싱턴 D.C.를 배경으로 한다.

비교적 먼 미래의 이야기인 탓인지 이 영화에는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첨단장비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거미 로봇이다.
거미 로봇은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사람들의 망막에 빛을 쏘아 신원을 확인한다. 신원 확인을 거부하면 전기충격을 가하기까지 한다. 이를 테면 지능형 미래 경찰견인 셈이다.

그런데 왜 하필 거미일까. 답은 영화 안에 있다. 거미 로봇은 자세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문틈 같은 좁은 공간을 파고든다. 사람의 몸도 거뜬히 기어오른다. 영락없는 실제 거미의 모습이다.

과학자들이 생물의 움직임을 모방한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 천 만년 동안 진화를 통해 다듬어진 생물은 과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된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험지에서 일하는 쐐기 로봇

현재 개발된, 그 중에서도 생체를 모방한 로봇들의 생김새와 기능을 짚어보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쐐기 로봇이다. 지난해 3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터프츠 대학 연구팀은 부드러운 가죽 같은 실리콘 고무가 전진 또는 후진하는 쐐기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몸 안의 작은 스프링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해 움직인다. 피부 전체가 물결처럼 스멀스멀 움직이는 쐐기 벌레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다.

연구팀은 올해 말까지 모든 방향으로 몸을 회전할 수 있고, 나무도 기어오를 수 있는 완전한 쐐기 로봇을 선보일 예정이다. 쐐기 로봇은 광산이나 우주 등 인간이 직접 작업하기 어려운 공간을 누비며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연구팀은 특히 다이너마이트를 품고 땅 속을 기어 다니다가 광맥을 발견하면 해당 위치에서 폭발시키는 일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병사의 군장 짊어지는 개 로봇

병사들의 군장을 대신 짊어지는 개 로봇도 주목된다. 미 국방성과 보스턴 다이내믹스사가 개발 중인 개 로봇은 노새와 같은 역할을 한다. 네 발과 튼튼한 몸체는 영락없는 가축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무게 중심을 잡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쉽게 넘어지지 않고 다음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심지어 옆구리를 발로 채이더라도 금방 자세를 고쳐 잡는다.



미 국방부가 개 로봇을 개발하려고 하는 것은 막대한 양의 군장이 병사들의 전투능력을 저해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군사기술의 발달에 따라 늘어난 장비가 병사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이것이 기동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

게다가 개 로봇은 바퀴를 굴리는 운송 수단보다 이동 범위가 넓다. 실제 자동차는 병사들과 밀착해서 이동하기 어려운데다 좁은 길이나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미 국방성이 개 로봇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개 로봇은 아직 개발 단계에 있으며, 보완할 점도 많다. 평탄한 땅이 아니면 지나치게 이동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험난한 땅에서는 사람의 보통 걸음걸이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최근 이동속도를 3배 정도 높이기 위한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병사와 함께 뛰는 개 로봇이 등장할 날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와 말을 이용해 군사장비를 이동시켰던 중세 전투의 양상이 현대에 이르러 개 로봇을 통해 부활되고 있는 셈이다.

효율적 헤엄 방법 찾는 거북이 로봇

최근에는 거북이 로봇도 등장했다. 미국 바사르 대학 연구팀이 007 가방처럼 생긴 몸체에 지느러미 4개가 달린 로봇을 제작한 것. 이 거북이 로봇은 2개 또는 4개의 지느러미를 어떻게 활용해야 가장 안정적인 자세로 움직일 수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느러미는 거북이 피부와 비슷한 강도를 지닌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졌다.

이 로봇에는 카메라, 음파탐지기, 수심계 등이 장착돼 있어 가장 효율적인 헤엄 방법을 찾는 연구가 가능하다.

현재의 바다거북과 바다사자는 뒷지느러미를 추진력을 내는데 쓰지 않고 방향타로만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2억5,100만 년 전에 살았던 자이언트거북은 4개의 지느러미를 모두 저어 추진력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이 같은 여러 가지 헤엄 방법을 거북이 로봇으로 실험해 가장 효율적인 헤엄을 찾아내겠다는 방침이다.

이밖에도 벽면을 기어오르는 개 코 도마뱀의 발을 모방한 ‘스타키봇’, 코끼리 코를 본 따 만든 인공 팔인 ‘옥타암’ 등이 있다. 에너지 손실 없이 헤엄을 치는 민물고기인 블루길의 수영 자세를 모방한 로봇도 개발 중이다.

근대 이후 자연을 넘어서기 위한 도구였던 기계와 전자장비의 모티프가 최근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사실은 시사점이 크다. 앞으로 자연을 닮은 어떤 로봇이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글_이정호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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