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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막으면 오히려 빨리 간다?

브래스 패러독스(Brass paradox)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면 교통흐름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막힐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길이 하나 없어지면 교통흐름이 악화될 것 같지만 오히려 도심통과가 더욱 원활해질 수 있다. 이처럼 직관에 반하는 역설을 브래스 패러독스라고 한다. 정하웅 KAIST 교수는 미국 보스턴과 뉴욕, 그리고 런던의 실제 거리에서 자동차 운행 시뮬레이션을 실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이상적 교통흐름을 위해 때로는 직관을 배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교통량이 적절히 분산될 것이라고 가정해서 평균 소요시간을 단축시킬 도로를 신설해서는 안 된다는 것. 대신 어떤 도로를 선택하든 통과하는데 시간의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하고, 심지어는 길을 막아야 원활한 교통흐름을 유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도로 설계자들의 의도대로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항상 가장 빠른 길을 찾아 몰려들 뿐이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서울시는 흉물스럽던 청계 고가도로를 말끔히 철거했다.

지금은 훨씬 시원해진 미관으로 청계 고가의 존재를 잊은 지 오래지만 사실상 청계천 복원 전 이를 둘러싼 핵심 논란의 하나가 바로 교통정체였다. 고가도로를 철거할 경우 시내의 교통정체가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

길이 하나 없어지면 교통흐름은 더욱 악화하리라는 예상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같은 예상은 들어맞지 않았다. 오히려 도심 통과가 더욱 원활해졌다는 보고도 있다. 서울 시내 고가도로 철거는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직관적인 기대와 달리 도로를 없앤다고 길이 더 막히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도로를 새로 개설했을 때 반드시 교통흐름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브래스 패러독스’라고 한다. 청계천 복원의 경우처럼 드물지만 현실에서도 확인이 된다.

이 같은 역설을 확인한 연구가 최근 ‘피지컬 리뷰 레터’(9월 18일자)를 통해 발표됐다. 미국 보스턴과 뉴욕, 영국 런던의 실제 거리에서 자동차 운행 시뮬레이션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정하웅 KAIST 교수는 ‘아나키의 대가(Price of Anarchy)’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들 세 도시에서 몇몇 도로는 오히려 폐쇄하는 것이 교통흐름을 더욱 원활하게 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밝혀냈다. 그의 논문은 경제지 ‘이코노미스트’(9월 13일자)에 화제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직관에 반하는 역설

브래스 패러독스란 수학자 디트리히 브래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네트워크 용량을 추가하는 경우에도 구성원들이 이기적으로 경로를 선택할 경우 전체 실행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네트워크를 도로망으로 바꿔 말하면 길을 하나 더 신설해도 운전자들이 자기가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교통소요 시간이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두 지점 사이를 가기 위해서는 A와 B를 거쳐 가는 2개의 길이 있고, 걸리는 시간이 똑같이 65분이다. 도시 설계자는 A와 B 사이에 C라는 길을 하나 더 내서 교통량이 분산되게끔 유도한다.

하지만 시간이 덜 걸리는 C가 개통되면 운전자들은 A와 B를 거치는 원래의 길과 C를 거치는 새로운 길로 적절히 분산해서 가지 않고 가장 시간이 적게 걸리는 C로 몰려든다. 결과적으로 두 지점 사이의 평균 소요시간은 오히려 늘어난다.

청계천 복원으로 청계 고가가 철거된 후 도심의 교통흐름이 더욱 원활해진 사실은 브래스 패러독스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에 대한 논문은 올해 ‘네트웍스’라는 저널에 발표됐다.

또한 196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도로망을 확충하는 개보수 사업을 벌인 후 교통정체가 개선되지 않다가 오히려 신설된 도로를 다시 폐쇄한 이후에야 교통상황이 나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브래스 패러독스의 확인

그렇다면 정 교수팀이 수행한 시뮬레이션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구팀은 미국 보스턴-캠브리지, 뉴욕 맨해튼, 런던 시내의 도로망을 실제 그대로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렇게 한 후 특정한 두 지점을 출발점과 도착점으로 설정, 차량의 수를 1대에서부터 점차 늘려가면서 두 지점을 주파하는 소요시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았다.

신호등 체계는 무시했지만 실제 도로 폭과 길이를 감안했다. 이로 인해 교통량에 따라 도착점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비교적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
물론 차량 수가 몇 대 안 될 때는 소요시간의 차이 없이 빨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차량의 수가 점차 늘어나면 소요시간은 당연히 길어지는데, 문제는 교통량이 도로에 적절히 분산되지 않음으로써 더욱 오래 걸린다는 점이었다.

즉 자동차들이 이용할 수 있는 도로를 골고루 선택해서 갈 경우 걸리는 시간에 비하면 각자 자기가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이기적으로 선택할 경우 도착 지점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은 더 길어진다는 것이다.

보스턴의 경우 시간당 차량 대수가 1만대에 달하자 소요시간은 최단 시간(자동차들이 도로에 적절히 분산되었을 때 걸리는 시간)보다 30%나 더 걸려 최고에 이르렀다. 정 교수는 이를 “도로망의 비효율성이 30%에 이른다”고 규정한다.

실제 매사추세츠 주 교통부의 통계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과 같은 혼잡한 시간대에 주요 도로 위를 지나는 차량 대수는 최고 시간당 5,000대 정도다. 변수를 단순화하기는 했지만 현실 상황과 크게 동떨어진 예측은 아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도로의 일부를 막아보는 시뮬레이션을 실행해 보았을 때였다. 세 도시에서 도로를 임의적으로 막으면서 똑 같은 교통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 브래스 패러독스 현상이 발견된 것.



물론 어떤 도로는 막을 경우 정체가 심해지지만(지도에서 빨간 색으로 표시된 도로), 어떤 도로는 막아도 교통흐름에는 별 차이가 없거나(지도의 파란 색 도로) 심지어 정체가 오히려 완화되는 경우도 있었다(지도의 점선 도로). 현실에서는 드물게 일어날 것이라고 여겨진 브래스 패러독스가 현실의 도로망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기적 행동원칙

결국 도시 설계자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조건 길만 늘린다고 해서 교통흐름이 원활해지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물론 도시 설계자도 ‘무조건’ 길을 늘리지는 않는다. 단지 교통량을 적절히 분산 수용할 것이라고 기대해서 도로망을 늘리는 것인데, 이것이 꼭 맞는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 교수가 행한 시뮬레이션의 기본 전제(동시에 브래스 패러독스의 전제)는 ‘구성원이 이기적으로 경로를 선택한다’는 점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즉 특정한 곳까지 가기 위해 15분 걸리는 길 A와 25분 걸리는 길 B가 있을 때 사람들은 A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

정 교수는 이를 ‘합리적 자기중심주의 행동원칙’이라고 이름 붙였다. 쉽게 말해 누구든지 자기에게 유리하게 행동한다는 것이 브래스 패러독스가 일어나는 원인이다.

결과적으로 (교통량의 절반만 감당할 경우) 도로를 통과하는 데 20분이 걸린다. 평균적인 소요시간은 늘어나더라도 B 도로를 통과하던 이들은 5분을 단축한 것에 만족하며 여전히 A 도로로 몰려들 것이다.

한마디로 도시 설계자는 교통량이 적절히 분산될 것이라고 가정해서 평균 소요시간을 단축시킬만한 도로를 신설해서는 안 된다. 즉 A 도로와 B 도로의 소요시간을 평균적으로 줄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편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어떤 도로를 선택하든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큰 차이가 나지 않도록 도로망을 확충해야 한다. 다른 도로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름길이 있을 경우 이 지름길은 차라리 차단해야 한다.

운전자들이 “어떤 경로를 선택하든 걸리는 시간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야 교통량이 적절히 분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교통흐름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때로 직관을 배신해야 한다.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 hee@hk.co.kr





▲ 정 교수 팀은 브래스 패러독스가 현실의 도로망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입증했다.


■ 네트워트 연구란 무엇인가

정하웅 교수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네트워크 연구자다. 수년 전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링크’라는 책을 보면 네트워크 연구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정 교수가 지도교수인 바라바시 교수와 함께 연구했던 내용이 자주 언급된다.

네트워크, 즉 연결 관계의 망은 그것이 인터넷 웹페이지끼리의 연결이든, 싸이월드에서의 촌수관계이든, 말 그대로 아는 사람 사이의 관계이든 특징적인 경향을 보인다.

첫째, 네트워크는 자연발생적으로 성장을 한다. 둘째, 네트워크가 성장하면서 서로 관계를 맺는 일이 극소수의 연결 지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노드’라고 한다.

네트워크의 연결망이 복잡해질수록 허브 역할을 하는 극소수의 노드가 생겨나고, 나머지 대다수의 노드는 연결의 수가 몇 되지 않는다.

즉 연결의 수와 노드 수의 관계는 멱함수로 표시된다.

알기 쉽게 표현해서 이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친한 몇몇 친구들과 알고 지내는 관계를 맺는 반면 마당발을 자랑하는 몇몇 소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단 1%의 사이트가 전 세계 웹사이트의 절반과 연결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항공노선에서도 뉴욕이나 파리처럼 극도로 연결이 많은 소수의 허브가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면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쉬운 예를 들어 누군가를 소개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마당발’을 찾아야 하고, 인터넷 트래픽 문제를 방지하려면 허브 사이트를 주된 관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실제 2003년 국내에서 일어났던 인터넷 대란은 웜 바이러스가 역 IP 확인 요청을 유발하고, 이 같은 요청이 혜화전화국이라는 허브를 마비시킴으로써 일대 사건으로 번졌다.

1996년 미국 11개 주와 캐나다 2개 주에서 발생한 동시 정전사태 역시 이런 식으로 작게 출발한 문제가 허브를 마비시킴으로써 일어났다.

이번 도로망에 대한 연구는 네트워크와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고 보면 똑같은 방법론을 사용하는 연구다.

네트워크(넓게는 복잡계)에 대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변수가 수없이 많고 무(無) 작위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대상을 연구한다. 이를 위해 컴퓨터를 사용한다.

가령 1,000억 개쯤 되는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돼 있는 인간의 뇌나 수많은 개인들이 나름대로 이익에 따라 행동하고 영향을 미치는 주식시장 등에 대한 연구가 복잡계 물리를 연구하는 이들의 관심사가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정 교수의 이번 논문 역시 자동차를 운전하는 무수한 운전자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 복잡계 연구의 접근방식을 적용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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