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IPTV는 유료방송시장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을까. 아니면 디지털 CATV라는 방패를 이용해 CATV가 수성에 성공할까.
■ 폭풍전야의 유료방송시장
국내 방송시장은 크게 지상파방송, 케이블방송(CATV), 위성방송, 그리고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 4가지 형태로 구성돼 있다.
이중 지상파방송과 지상파DMB는 방송 수신이 가능한 단말기만 있으면 누구나 공짜로 시청할 수 있는 무료방송이지만 CATV와 위성방송, 그리고 위성DMB는 요금을 지불해야만 볼 수 있는 유료방송에 해당한다.
최근 이 유료방송시장이 요동치며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IPTV의 상용 서비스 개시가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인터넷TV로 불리는 IPTV는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방송을 전송해 일반 가정의 텔레비전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한 신개념의 방송 서비스다. 방송 수신 장치인 셋톱박스로 인터넷과 TV를 연결해 주기만 하면 시청자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IPTV를 즐길 수 있다. 케이블 대신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한다는 점만 다를 뿐 기본 메커니즘은 CATV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IPTV의 최대 장점은 쌍방향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존 방송은 방송사가 송신한 정보를 시청자가 일방적으로 수신하는 일방향성의 특성을 갖지만 IPTV는 다르다.
IPTV는 홈쇼핑 방송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곧바로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여행사 CF를 보던 중 그 상품을 예약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청자도 자신의 정보를 송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IPTV 자체가 데이터의 송수신이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IPTV는 인터넷 검색, 온라인 뱅킹, 주문형 비디오(VOD), 네트워크 게임 등 인터넷이 연결된 PC에서 구현되는 모든 기능이 제공된다. 리모컨 하나로 TV와 인터넷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관련업계에서는 이 같은 메리트를 앞세워 KT(메가TV), LG데이콤(myLGtv), SK브로드밴드(브로드앤TV) 등 3개 IPTV 사업자가 태풍의 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CATV와 위성방송이 나누어 가졌던 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라는 얘기다. 케이블방송사(SO)와 위성방송 사업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의 근원이 바로 이것이다.
■ 물러설 수 없는 제로섬 게임
그런데 이 시점에서 궁금증이 하나 생길 수 있다. IPTV가 본격 서비스되면 유료방송시장이 더욱 확대돼 SO나 위성방송 사업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과거 이동통신사업자인 KTF가 3세대(3G) 이동통신 서비스인 ‘쇼’를 업계 최초로 출범시킨 뒤 SK텔레콤이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입한 것에 대해 보인 반응처럼 말이다. 당시 KTF는 SK텔레콤이 ‘T’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자 경계심보다는 내심 환영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 유료방송업계가 처해 있는 상황은 KTF와 완전히 다르다. 3G 이동통신은 잠재고객이 수천 만 명에 달하는 신규 서비스였지만 유료방송은 이미 추가적인 시장 확대나 신규 고객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포화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료방송시장은 CATV가 87%, 위성방송이 13%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달 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가입자 수는 CATV가 올 3월 현재 1,486만 가구, 위성방송은 6월 현재 226만 가구다.
국내 전체 가구 수가 약 1,800만 정도임을 감안하면 이미 93%에 이르는 가정이 유료방송을 보고 있는 셈이다.
IPTV가 출범한다고 해서 가구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닌 만큼 CATV와 위성방송은 자신들의 가입자를 놓고 IPTV와 쟁탈하는 제로섬 게임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허원재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IPTV 상용화 이후 유료방송업계의 경쟁이 과열될 것을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용절감 압박 심화, 콘텐츠 공급자(PP)의 수익 저하, 저급 콘텐츠 양산, 재방송 비율 증가, 그리고 가입자 이탈이라는 악순환 구조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
CATV나 위성방송의 입장에서 IPTV는 존망을 위협하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특히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던 CATV의 경우 IPTV의 출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어 사활을 건 혈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과연 IPTV의 공세를 이겨내고 CATV가 계속 우월적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IPTV가 공성에 성공해 미래의 유료방송시장을 주도할까. 벌써부터 그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지상파 프로그램 재전송 가시화
현재 업계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IPTV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전 세계 시장조사 기관들이 하나같이 IPTV의 고속성장을 예견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지난달 23일에도 글로벌 컨설팅 기관인 프로스트 앤 설리번이 이 같은 예상을 했다. IPTV 비즈니스 사례 연구 조사결과 양방향 서비스와 디지털 고화질 영상 제공 능력으로 중무장한 국내 IPTV 시장이 연평균 27%의 고성장을 거듭할 것이라는 얘기다.
오는 2013년이면 467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했다. 또한 국내 IPTV 보급률 또한 시범서비스 중이던 지난해의 7%에서 2013년 26.9%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같은 호의적 전망에 힘입어 KT는 IPTV를 3대 핵심사업의 하나로 선정했다. 오는 2012년까지 약 1조7,000억 원을 투자, 올해 안에 가입자 150만 명을 달성한다는 것. 국내 최초로 IPTV 서비스를 제공해 온 SK브로드밴드 역시 같은 기간 1조6,000억 원을 투자해 연내 130만 명의 가입자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LG데이콤의 경우 가장 후발주자이지만 저렴한 요금, 고급 콘텐츠를 앞세워 올해 20만 명의 고객을 유치한다는 복안이다.
장시간 난항을 겪어왔던 지상파 방송사와 IPTV 사업자의 지상파 프로그램 재전송 협상이 타결 국면에 이르렀다는 점도 IPTV의 손을 들어주게 하는 요인이다.
사실 이 문제는 IPTV의 성패를 좌우할 일종의 캐스팅보트였다. 출범 후 수년간 MBC, SBS를 방송하지 못했던 위성방송의 사례에서 보듯 실시간 지상파 프로그램 없는 IPTV에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21일 KT가 KBS, SBS와 지상파 프로그램의 실시간 재전송에 전격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이달로 예정된 KT의 상용 서비스 개시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상파 프로그램을 송출하고 향후 추가 협상을 통해 재전송료와 콘텐츠 사용료를 확정하자는 것. 이 때문에 아직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하지만 IPTV가 절름발이 방송으로 전락하는 것은 막을 수 있게 됐다. KT는 곧 MBC와도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SK브로드밴드, LG데이콤도 각각 11월과 12월의 상용 서비스에 차질이 없도록 KT를 가이드라인 삼아 지상파 3사와 계약을 추진 중이다.
■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전문가들이 IPTV의 우위를 예상하는 또 다른 이유는 SO들과는 차원이 다른 IPTV 사업자들의 경쟁력 때문.
KT는 국가 기간 유선망을 보유한 통신업계의 강자며, 자회사로 이동통신사업자인 KTF가 있다. LG데이콤 역시 이동통신사업자인 LG텔레콤과 유선통신회사인 LG파워콤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모기업이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이다. 3사 모두 전국을 대상으로 초고속 인터넷, 유선전화(인터넷전화),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통신 공룡인 것.
3사는 이 같은 이점을 활용해 IPTV와 이들 3종 서비스를 묶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QPS(Quadruple Play Service) 전략으로 나올 것이 확실시 된다. SO들이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전화, CATV를 묶은 TPS(Triple Play Services)로 맞서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IPTV 사업자가 보유한 막대한 자금력과 막강한 브랜드 인지도, 그리고 전국적 마케팅 능력은 구(區) 단위의 사업영역을 지닌 SO들로서는 쉽게 쫓아올 수 없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IPTV 사업자들이 다양한 유·무선 통신 유통망과 마케팅 경험을 동원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면 CATV가 수세에 몰릴 개연성이 높다.
KT와 방송사의 지상파 실시간 재전송 협상은 추가적인 합의가 남았지만 IPTV의 절름발이 방송 전락은 막아낼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또 IPTV가 일정 규모의 신규 고객 유치에 성공한 후 기존 고객 유지로 방향을 선회할 경우에도 강력한 이탈방지 대책이 될 수 있다. CATV는 자신의 가입자를 빼앗길 가능성은 높은 반면 IPTV의 가입자를 다시 빼앗아 오기는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IPTV 비관론자들조차 초기에는 IPTV로 인해 CATV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CATV와 IPTV의 승부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하는 것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 디지털 CATV를 활용한 승부
하지만 CATV라고 취약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CATV에도 IPTV에 비교우위를 보이는 장점이 있다는 것.
첫째는 안정성이다. CATV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수천만 가구를 대상으로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검증된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와 달리 IPTV는 초기 시장 창출 단계로서 이제야 기술과 서비스의 안정성을 입증하고 있다. 실제 IPTV의 표준 논의는 최근에야 본격화됐으며, 서비스 운용 규모도 최대 수백만 가구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전 세계 어느 국가도 1,000만 가구 이상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안정적인 IPTV 서비스를 제공해 본 경험이 없다. 향후 가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경우 방송 품질의 하락, 초고속 인터넷의 속도 저하 등 어떤 문제가 돌출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마케팅 부분에 있어서도 IPTV가 전국 규모에서는 앞서 있지만 고객별 맞춤형 마케팅 능력은 지역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CATV가 우월하다.
IPTV는 반드시 초고속 인터넷망을 활용해야만 하기 때문에 당분간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 서비스가 집중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역 밀착형 사업구조는 CATV의 경쟁력 상승에 이바지 할 공산이 크다.
특히 CATV에는 IPTV에 대비한 히든카드가 하나 있다. 지난 2005년 서비스가 개시된 디지털 CATV가 주인공이다.
디지털 CATV는 기존의 아날로그식 CATV가 송출하는 정보를 디지털화해 제공하는 방송 서비스를 말한다. 인터넷망 대신 케이블을 전송망으로 사용할 뿐 양방향 서비스를 포함, IPTV의 모든 기능을 똑같이 제공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SO들의 미진한 설비투자로 가입자 수가 160만 명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IPTV의 등장에 따라 중대형 SO들을 중심으로 투자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결국 IPTV와 CATV의 진검 승부는 디지털 CATV가 전면에 대두될 내년 이후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때 양 진영의 승부처는 누가 얼마나 많은 양질의 콘텐츠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가 여부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의 시점에서는 미래의 가정에서 TV 옆에 놓이게 될 리모컨을 누가 장악하게 될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단지 확실한 것은 이들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들은 어느 정도 이득을 챙기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각사가 앞 다투어 가격 인하, 무료 서비스, 사은품 제공 등의 혜택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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