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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동차 시대 좌우할 배터리

21세기를 맞아 전기자동차가 다시 부활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렴하고, 안전하며, 강력한 배터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기자동차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대량생산될 수 없다.

물론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배터리는 기본적으로 수십 억 개나 되는 분자의 화학반응을 이용해 극히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해야 한다. 폭발 위험성도 있다. 현재 GM은 2년 내에 사용기간 10년, 그리고 24만km를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를 개발, 시보레 볼트에 장착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제너럴 모터스(GM)의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에 쓰이는 배터리의 무게는 약 180kg이다. 세워 놓으면 길이가 6피트나 된다.

가격이 1만 달러에 달하는 이 T자형 배터리 팩에는 3V 리튬이온 셀이 들어 있다. 리튬이온 셀은 3개가 하나로 연결돼 있고, 셀 묶음은 다시 전선으로 연결돼 있으며, 과열방지용 냉각장치가 달려있다.

배터리 팩 내의 컴퓨터 모니터 시스템은 각 셀의 움직임을 조절하고, 전압의 균형을 맞춘다. 또한 셀이 기능 이상이나 누전을 일으키지 않는지, 그 외에도 이 시스템의 작동을 방해하는 것은 없는지 살펴봄으로서 이 작은 ‘전자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1.6톤짜리 시보레 볼트는 현재 만들어진 것 가운데 가장 진보된 이 축전 기구를 사용해 64km의 거리를 달릴 수 있다. 이 정도 거리를 가솔린으로 환산하면 약 3.78ℓ다.

GM의 글로벌 프로그램 경영 부사장인 존 로크너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애를 쓰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의 발전상이다.

로크너는 자신을 전기자동차 찬양론자라고 밝힌다. 물론 그도 엔지니어적인 관점에서 냉정히 볼 때 전기자동차가 아무리 발전해도 아직은 가솔린 자동차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지난 4월 디트로이트 교외에서 열린 GM의 칵테일 리셉션. 로크너 주변에 저널리스트들이 모여앉아 있다. 이들은 다음날 미시건 주 워렌에 가서 볼트가 개발되는 현장을 둘러보고, 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실용성을 입증하기 위한 시제품의 시범장면을 볼 것이다. 실용화는 멀고도 힘든 길이지만 볼트는 그 길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

분위기는 매우 친근했다. 하지만 로크너는 누군가가 지난 1996년 GM이 만들었던 전기자동차 EV1 얘기를 꺼낼 경우 맞받아칠 준비도 하고 있었다. 많은 EV1은 만들어진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애리조나의 사막으로 견인돼 폐차됐다. GM은 실패한 EV1과 달리 볼트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로크너는 아예 누군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미리 선제공격을 가했다. 당시에는 배터리만 가지고 내연기관을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에 EV1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자기 옆에 볼트의 실물 크기 배터리 팩 모형이라도 있는 것처럼 허공에다 손을 휘둘렀다.

그는 GM과 석유회사가 음모를 꾸며 의도적으로 EV1 프로젝트를 실패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잘 생각해보라고 강조한다. 가솔린 3.78ℓ의 성능을 낼 수 있는 볼트의 180kg짜리 배터리는 EV1의 배터리보다 무려 270kg이나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소비자들은 곧 전기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가가 오르고, 극지방의 얼음이 녹으며, 석유가 풍부한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지는 한 그것은 분명 필연적이다.

사실 인류는 화석연료 사용을 멈춰야 한다. 미국은 매일 15억ℓ의 석유를 때고 있다. 석유 1ℓ가 연소하면 이산화탄소 2.4kg이 생긴다. 그리고 현재 석유를 가장 신속하게 대체할 수 있는 대체에너지는 바로 전기다.

수소경제는 아직까지 공상과학(SF) 소설에 가깝다. 옥수수로 만든 에탄올은 전 세계의 식품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고, 역시 연소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반면 전기는 현재도 모든 가정에 보급돼 있다. 석유와 비교해도 값이 싸다. 그리고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 수력, 태양열, 풍력 등 어떤 에너지로도 생산할 수 있다. 설령 석탄을 때서 만든 전기로 달리는 자동차라도 1.6km 주행할 때 생기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317g에 불과하다. 가솔린으로 달리는 자동차에 비하면 훨씬 적은 것이다.

프리어스 같은 현대의 하이브리드 카는 자동차의 전동화(電動化)에 한 걸음 다가선 모델이다. 하지만 한 걸음일 뿐이지 완벽한 전동화는 아니다. 하이브리드 카는 어디까지나 배터리로도 잠시 달릴 수 있는 내연기관 차량에 불과하다.

하지만 GM에서 장거리형 전기자동차라고 부르는 볼트와 같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은 완벽한 전동화로 가는 경계선을 넘었다. 주요 연료로 가솔린이 아닌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화석연료 대신 기존 전력망에 바로 연결해 충전할 수 있는 대형 배터리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쓰고 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이점은 무엇일까.

미 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 운전자 중 하루에 64km 이하를 주행하는 사람의 비율이 78%나 된다고 한다. 그런 만큼 볼트 운전자의 경우 웬만하면 가솔린을 사용하는 보조엔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배터리 기술의 발전으로 한 번 충전해서 8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되면 더욱 기가 막힌 결과가 나온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은 하루 80km를 ℓ당 63.45km의 연비로 주행할 수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미 전력연구소와 천연자원보호위원회의 연구에 의하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간다면 2050년까지 무려 34억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는 앞으로 40년 동안 주로 석탄을 사용해 전기를 생산한다는 비교적 비관적인 관점을 적용하더라도 그렇다. 연비가 ℓ당 12.69km인 중형 가솔린 자동차가 1년에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만 4톤이나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 같은 전기자동차 시대에 대비하는 시늉이라도 내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닛산, 도요타, 마쯔다, 미니, 미쓰비시, 스바루, 현대, 폭스바겐 등은 앞으로 2~3년 내에 아무리 적은 숫자라도 분명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을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한 상태다. 고급차 전문 메이커인 테슬라는 이미 초고가의 순수 전기스포츠카 인도를 개시했다. 그리고 피스커 코치빌드 같은 작은 자동차 회사들도 전기자동차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자동차에 달려있는 배터리는 아직 가솔린을 대체할 만큼 저렴하고, 안전하며, 에너지 밀도가 높지 못하다. 볼트에 장착될 거대한 배터리는 앞으로 모든 전기자동차 메이커가 배터리 개선을 위해 참고해야 할 모델이 될 것이다.

GM은 명성 있는 자동차 제조회사지만 EV1의 실패로 모든 것을 날려버릴 위기에 처했다. 사업이 너무 확장된 탓에 올해 2·4분기에만 150억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이대로라면 2010년에는 가진 돈을 다 까먹게 된다.

이 때문에 GM은 볼트의 성공에 사운을 걸고 있다. 즉 GM은 180kg짜리 배터리를 개발해 어디에서나 충전 가능한 전기자동차의 시대를 열려는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는 통제하기 극히 어려운 구성요소, 즉 불안정한 화학반응을 이용해 움직이는 물건이다.

■ 배터리 개발 협력업체 선발

이렇듯 사운이 걸린 배터리 개발을 아무 협력업체에게나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지난 2007년 2월부터 2주일에 걸쳐 8개 배터리 개발업체의 대표들이 제안서를 들고 GM 워렌테크센터 캠퍼스 내의 차량 엔지니어링 센터를 찾아왔다. 신생 중소기업부터 전 세계를 상대로 활약하는 대기업까지 망라된 이들 8개사의 제안서들은 엔지니어링 부서에서부터 재무부서에 이르기까지 GM의 각 부서에서 선발된 20명의 심사단이 27개사의 제안서를 철저히 검토해 골라낸 것이다.

GM의 심사단은 각사 배터리의 에너지 및 전력 밀도, 온도에 따른 성능 변화, 수명, 가격 등을 꼼꼼히 따졌다.

이들은 심지어 “협력업체 직원들이 GM을 미워하지는 않을까” 하는, 상관없다 싶은 것까지 모두 비중 있게 다루었다. 생산라인 책임자인 토니 포사워츠는 그 모든 것들이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말했다.

심사단의 심사 다음에는 30명의 평가단이 4시간 동안의 피치 세션을 통해 8개사의 제품에 점수를 주었다. 이에 앞서 각 협력업체는 자사의 배터리가 다음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우선 16㎾의 에너지 저장이 가능해야 하며, 이 배터리의 전기만으로도 볼트가 64km를 달려가야 한다. 또한 8초 만에 시속 0km에서 96km로 가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10년 동안은 쓸 수 있어야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완전 충전과 방전을 5,000번 거듭하면서도 배터리 용량이 10% 이상 줄어들면 안 된다. 가로 162cm, 세로 85cm 크기의 상자 안에 들어가는 크기여야 하며, 기존 차량의 구동축이 끼워지는 터널 안에도 들어가는 크기여야 한다.

특히 무게는 180kg을 넘어서는 안 된다. 가격은 가급적 저렴해야 하며, 폭발 위험성은 전혀 없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요구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배터리가 통제하기 극히 어려운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물건이기 때문이다.

배터리는 기본적으로 수십억 개의 분자를 이용해 전기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의 형태로 바꾸어 저장하는 물건이다.

전하된 이온 입자는 정단자와 부단자 사이의 전해질, 즉 두 단자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주는 용액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배터리 사용 때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부단자의 전자가 떨어져 나오면서 전기가 생산된다. 전자는 배터리를 뛰쳐나와 전류 수집기 및 외부 회로를 거쳐 부단자로 돌아오게 되며, 이 같은 움직임이 계속 반복된다.

문제는 수십억 개나 되는 분자의 화학반응을 이용해 극히 복잡한 시스템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리튬이온 배터리만큼 이 화학반응을 제대로 이용하는 기술은 찾기 드물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납축전지나 니켈수소 배터리보다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높다. 또한 EV1 차량의 하위 모델 두 가지에도 이미 쓰인 적이 있다. 사실 이 리튬이온 배터리 덕에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전기기의 크기가 비약적으로 작아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열, 과충전 등 잘못된 취급을 받을 경우 까딱 잘못했다간 연쇄반응을 일으켜 배터리 기술자들이 열폭증이라고 부르는 사태, 즉 폭발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사고는 정단자 또는 음극에 리튬 코발트 산화물을 사용하는 휴대폰이나 랩톱에서 특히 잘 일어난다. 유튜브에서 배터리 폭발(exploding battery)을 검색하면 배터리가 폭발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운행되는 모든 하이브리드 차량의 배터리는 니켈수소 배터리고, 자동차 회사에서 대량생산되는 차종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할 경우에는 리튬 코발트 산화물을 대체할 재료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GM의 협력업체 선발 과정은 엄격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니가 지난 1991년 최초의 상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해 낸 이후 연구자들은 이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의 변형기술을 10여 가지 정도 만들어 냈는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음극의 재질을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6년 후.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GM은 자사의 가장 정밀한 차량에 장착할 안전하고 강력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2007년 6월 5일. GM의 연례 주주총회에서 글로벌 제품개발 부회장인 밥 러츠는 GM 협력업체 선발 최종심의에 오른 2개의 회사를 발표했다.



첫 번째 회사는 컴팩트파워(CPI)로 가전제품용 배터리를 만드는 한국 대기업 LG화학의 자회사였다. 두 번째 회사는 A123시스템즈. 매사추세츠 주 워터타운에 소재한 이 신생기업은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콘티넨탈사와 협력해 자동차용 배터리 팩을 생산하고 있었다.

CPI는 5년을 들여 리튬 망간 산화물이라는 음극용 화학물질을 개발해 냈다. 이 물질은 리튬 코발트 산화물보다 싸면서도 안전했으며, 전력까지 우수해 자동차용으로 적합했다.

배터리를 물이 든 통에 비유하자면 에너지는 통의 용량이라고 볼 수 있고, 전력은 그 물을 빼서 쓰는 속도와 양이다. 랩톱 같으면 전력 부족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자동차는 전력이 강해야 빨리 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다.

코발트는 2차원적 화학구조를 지니기 때문에 전력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없다. 2차원적 구조에서는 리튬이온이 음극을 들락날락하는 길이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터리가 전력을 빨리 방출하기 힘들다.

반면 망간을 소재로 한 CPI의 음극은 3차원적 결정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리튬이온의 출입이 쉽고 빠르다. 이온의 교환이 빨라 전자를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뿜어낼 수 있다. 그 만큼 전력이 세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술을 활용해 볼트용 배터리를 만들려면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CPI의 최고경영자(CEO)인 프라바카 파틸은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차량 배터리 셀보다 두 배의 에너지 용량을 갖춘 셀을 만들어야 했다”고 말한다.

CPI의 직원 70명은 GM의 주주총회가 있고 난 후 4개월 동안 야근은 물론 주말에도 일했다. 그 결과 초도 생산한 배터리 팩을 정시에 인도하는데 성공, GM의 배터리연구소 소속 엔지니어들조차 놀랐다. 공교롭게도 배터리 팩이 인도된 날은 할로윈 데이였다.

그동안 A123시스템즈의 배터리는 세관에 묶여 있었다. 미국 교통부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위험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콘티넨탈이 독일에서 배터리 팩을 보내오는 것은 어려웠다. 아마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진 배터리 케이스가 제리 브룩하이머의 영화에 나오는 핵무기처럼 생긴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A123시스템즈가 배터리에 사용하는 인산철리튬은 화학적으로 가장 안전한 것이었다. 이 배터리의 음극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폭발하는 것은 자연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인산 내의 이중결합 덕분에 불가능하다.

결국 지난 1월 세관은 배터리를 통관시켰다. 그리고 GM도 A123시스템즈의 배터리가 조만간 들어오게 될 것을 알게 됐다. 때마침 로크너는 미국진보센터에서 개최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관련 토론에 패널로 참석, 그 배터리를 연구소로 가져와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당시 로크너는 누군가로부터 “당신이 말한 그 배터리는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블랙베리 핸드폰을 살펴보다가 “우리 연구소에 5분 전 도착했다”고 답변했다.

■ 차세대 배터리 기술의 어려움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궁금해 한다. 이미 12년 전에 순수 전기자동차인 EV1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전기자동차의 하이브리드 버전을 만들기가 왜 그렇게도 어렵냐는 것.

로크너는 올 7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열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관련 업계 컨퍼런스에서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타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EV1을 재생산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면서 “하지만 EV1에 쓰인 배터리 기술은 10년 전의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GM은 더 새롭고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 큰 시장에서 잘 팔릴 제품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설명은 그 자리에 온 700명의 청중이나 내부 인사, 선동가, 그리고 확실한 근거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만약 로크너가 요점, 즉 EV1에 사용된 배터리 기술을 부활시키는 것은 명백한 판단착오라는 점을 보다 명확히 지적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었을 것이다.

EV1 프로젝트의 주도자였고 초기 시보레 볼트 프로젝트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존 베리사는 “당시에는 좋은 배터리 기술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효율적인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V1은 한 번 충전해서 104~152km를 달릴 수 있다. 하지만 EV1의 배터리는 무려 450kg에 달하는 납축전지로 가격 역시 너무나 비쌌다. EV1의 제2세대 모델은 항속거리를 225km까지 연장했지만 대형 니켈수소 배터리를 사용하는 탓에 코발트, 바나듐 같은 값비싼 소재가 많이 사용됐다. 결국 배터리의 단가는 4만~5만 달러까지 뛰어오르고 말았다.

베리사는 EV1 프로젝트 때문에 GM이 무려 10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을 것으로 추산한다. 그는 “EV1으로 기술적 가능성을 연 것은 분명 성공”이라면서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기술적 가능성과 상업적 이익이 양립 불가능한 명제는 아니겠지만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필요한 기술적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볼트는 한 번 충전해서 64km를 달릴 수 있는데, 이 정도의 성능 가지고는 소비자들이나 관계당국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GM이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의 인증을 얻으려면 볼트의 배터리는 사용기간 10년, 그리고 주행거리 24만km에 대한 품질보증이 있어야 한다.

일부 배터리 업계 관계자들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첫 세대가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기는 힘들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분석가인 미너헴 앤더먼은 자동차용 배터리에 대한 무수한 불평불만을 듣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난 9년 동안 돌아다녀 본 모든 자동차 회사에서 배터리가 너무 크고 비싼데다 수명까지 걱정이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저 같아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을 만들기는 좀 그렇습니다. 배터리 크기는 5배나 크고, 가격은 그 이상으로 비싸니까요. 배상책임 위험은 5배, 아니 10배 이상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배터리를 혹사하며, 사용할 때마다 열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GM은 이 값비싼 배터리가 차량 수명이 다하기 전에 죽어버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때문에 미시건 주 워렌의 배터리 연구소에서는 볼트 프로젝트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중요한 실험이 실시되고 있다.

■ 시장 진입 위한 최후의 관문

미시건 주 밀포드의 테스트 트랙에서는 엄중한 기밀을 유지한 채 다소 못생긴 자동차가 쉼 없이 질주하고 있다. 이 자동차의 이름은 맬리-볼트. 시보레 맬리버스를 개조, 볼트의 전동장치를 이식하고 센서와 전극을 장착한 실험용 차량이다.

이 자동차는 런닝 머신 위에서 심장부하 검사를 받는 사람처럼 쉼 없이 달리고 있는데, 볼트가 예정대로 2010년 11월 생산될지 여부는 이 자동차의 성공에 달려있다. 맬리-볼트를 사용해 배터리가 소음과 진동, 가혹한 사용조건 하에서 버틸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동차가 실험실을 빠져나와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최후의 가혹한 관문이다.

6월 초 GM의 글로벌 제품개발 부회장인 러츠는 환경 뉴스 웹사이트인 그린퓨얼스포캐스트닷컴에 맬리-볼트의 스릴 넘치고 무시무시했던 첫 주행 테스트를 설명했다. 그는 “마치 일반 자동차가 엔진을 쓰지 않고 비탈길에서 시속 112km로 굴러 내려가는 것과 같았다” 며 “배터리는 잘 작동했다”고 말했다.

배터리 셀을 연결한 용접 부위에 결함이 발견됐지만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제작팀의 자신감은 점점 높아졌다. 이들은 이변이 없는 한 2010년에는 볼트를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약 이변이 발생한다면 GM의 워렌 배터리 연구소에서 실시되는 내구도 실험에서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 내구도 실험은 냉장고만한 크기의 실험도구인 사이클러 안에서 이루어진다. 시제품 배터리 팩 2개를 넣고 충전과 방전을 거듭하면서 배터리의 성능저하 없이 몇 번의 충전과 방전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이 사이클러에서 2년 동안 실험을 하면 실제 세계에서 주행거리 24만km를 달린 것에 해당하는 내구성 실험을 할 수 있다.

사실 어려운 것은 배터리의 수명 측정이다. 10년 묵은 배터리가 원활하게 동작하는지 알려면 그 배터리를 10년 동안 사용해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GM의 경우처럼 출시까지 2년밖에 안 남은 경우라면 배터리를 서멀 체임버(thermal chamber)에 넣고 가열해 노화를 인공적으로 촉진시키는 수밖에는 없다.

이 서멀 체임버는 쇠로 만들어진 뜨거운 사우나실로 배터리를 85℃의 열과 습기에 수개월간 노출시킨다. 이 속에서 2010년 4월, 즉 볼트의 생산이 개시되기 7개월 전까지 A123시스템즈와 CPI의 배터리를 묵혀두면 이론적으로 이 배터리는 10년 동안 사용한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배터리의 수명이 언제까지인지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증권거래위원회가 기업공개 이전에 설정한 침묵기간 때문에 A123시스템즈는 여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CPI의 파틸은 배터리의 성능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초기 성능 평가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아무 장애물도 없이 여러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능과는 별도로 이 같은 자신감은 분명 커지고 있다.

로크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기 전날 아침을 먹으면서 사람들이 볼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의심이 풀리는 것을 매우 기쁘게 여겼다. 그는 대화하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불안을 희망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이제 회의론자들이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면서 “오늘이 가고 나면 이제 누구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등장은 시간문제라고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노새 모델 테스트

이번 달이면 시제품과 완전히 똑같은 외관과 성능을 갖춘 볼트의 이른바 ‘노새 모델’이 테스트를 받게 된다.

한편에서는 미국 유권자들이 2명의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주게 된다. 이들 후보는 모두 볼트가 소비자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전기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로 가는 장기적인 목표를 이루려면 배터리는 정부 지원 없이도 가솔린을 간단히 이길 수 있어야 한다. 땅 속 깊이 파묻힌 화석연료만큼 강하고 경제적이어야 한다. 즉 무게 180kg짜리 배터리가 불과 3.78ℓ의 기름만한 성능밖에 못 내는 현재의 상태보다 더욱 뛰어난 성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크너는 “이상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배터리가 가솔린이나 디젤과 동일한 에너지 밀도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대답하겠다”면서 “우리는 그동안 뭐든지 된다고 생각하면 분명 해내고야 말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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