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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수학자들이 본 파생상품과 금융위기의 실체

금융에 수학이 도입된 것은 불확실하고 복잡한 금융시장에서 수학이 위험을 관리하고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불확실하게 움직이는 주가나 이자율을 모델링할 수 있는 확률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금융수학을 보는 시각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금융수학을 기초로 한 파생상품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부터 시작해 파생상품을 판매하는 인간행동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에서는 인간사회를 다루는 학문인 경제학을 자연과학의 법칙만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본질적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위기를 조명하고 경종을 울리는 것이 경제학자, 금융수학자 등 지식인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이들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인들은 월급, 사업을 통한 수익, 그 리고 배당 등을 은행에 예금하거나 주식 및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그러면 금융기관은 이렇게 모아진 자금 을 기업 및 가계에 대출하거나 주식, 채권 등 에 투자해 수익을 창출한다. 바로 이 같은 활 동을 통해 금융시장이 성립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융상 품들이 매우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하지 만 이 같은 금융상품들의 미래가격이 불확실 하기 때문에 현대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서 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커다란 금융위 기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이 같이 불확실하고 복잡한 금융시장에 서 일반 투자자나 금융기관들은 어떻게 위험 을 관리하고, 또 어떻게 수익을 창출해 낼까. 금융에 수학이 도입된 것은 이처럼 불확 실하고 복잡한 금융시장에서 수학이 위험을 관리하고 수익을 창출해 내도록 하는 단초 를 제공해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불확실하 게 움직이는 주가나 이자율을 모델링할 수 있는 확률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같은 확률론을 근간으로 해 금융관련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분야가 금융공학이라 고도 불리는 금융수학이다.

파생상품과 금융수학의 관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금융상품에 는 기초자산이라고 불리는 주식, 채권, 그리 고 외환 등이 있다. 이 같은 기초자산의 미래 가격은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 에 잘못 보유하고 있다가는 가격하락에 따 른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처럼 금융시장에는 많은 위험이 내포 돼 있기 때문에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 들이 생겨나게 됐다. 선물, 옵션과 같은 파생 상품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같은 초보적인 파생상품은 곧 다양하 고 복잡한 형태의 파생상품으로 발전하게 된 다.

즉 주가와 연계된 ELS(Equity Linked Securities), 이자율과 연계된 구조화채권, 그리고 회사의 부도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신 용파생상품 등으로 퍼져나간 것. 일반적으로 ELS는 원금이 모두 보장되 는 유형과 원금의 일부만을 보장해 주는 대 신 주가연계 상품에 투자하는 유형으로 나누 어진다. 하지만 원금 보장을 적게 할수록 주가와 연계된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 게 된다.

고위험 고수익 구조인 셈이다. 즉 특정 종목 및 지수를 추종하거나 상한선을 두는 등 일정조건을 정하고, 그 같은 조건에 부합될 경우 수익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된 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주가 급락처럼 주어 진 조건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손실을 보게 된다. 구조화채권이란 채권 투자자가 채권을 발행하는 회사가 내건 조건과는 다른 조건 으로 채권을 매입하고 싶은 경우에 이용된다.

즉 스왑 뱅크(Swap Bank)라는 매개 체가 채권 발행자와 채권 투자자의 중간에서 옵션, 스왑, 선도거래 등을 활용해 양쪽의 조 건을 모두 충족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신용파생상품은 회사의 부도 가능성 등 신용위험이 내재된 기초자산에서 신용위험 을 분리, 거래하는 파생상품을 말한다. 즉 기 초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는 수수료를 내고 금 융기관에 신용위험을 이전한다.

이에 따라 대상자산의 채무불이행 등 신용사건이 발생 하면 금융기관은 투자자의 손실 일부 또는 전부를 보전해 주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보증서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 같은 보증의 문제를 파생상품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파생상품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매입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반대쪽에 서는 위험을 전가 받게 돼 많은 위험을 떠안 게 된다. 이에 따라 이 같은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 면서 수익을 올리느냐가 파생상품을 판 사람 의 주요 관심사가 되며, 이 과정에서 금융수 학이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위기를 보는 시각의 차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재구성해 자. 이번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바로 서 브프라임 모기지이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비우량 주택담보대 출을 말한다.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대출해 주는 프라임 모기지와 달리 신용등급이 낮 은 저소득층에게도 대출을 해 주는데, 고위 험 고수익 원칙에 따라 프라임 모기지보다 3~4%의 금리가 더 붙는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다.

집값이 상승할 경우 대출받은 사 람은 자산이 늘어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 자를 쉽게 갚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 다. 이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금융위기가 확산된 것은 이 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들은 주택담보대 출을 다시 담보로 삼아 주택저당채권을 만들 어 자금을 회수했다. 자산 유동화에 적극 나 섰던 것. 하지만 이는 주택 구매자에게 빌려 준 돈을 받기도 전에 또 다른 형태의 빚을 지 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투자은행들 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투자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들 이 발행한 채권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를 기초자산으로 파생상품인 부채담보증권 을 만들어 판 것. 또한 부채담보증권을 다른 채권 및 파생상품과 섞은 뒤 쪼개 파는 구조 화증권도 선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가 꾸준히 인상되고 집값 역시 하락하면서 연체율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서브프라임 모기 지에 기반을 둔 파생상품 가격이 폭락할 수 밖에 없었고, 연쇄적으로 투자은행들의 부 실을 불러온 것이다. 지난 30년간 세계 금융 시장을 좌지우지했던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이처럼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뿌리를 둔 파생상품이 전 세계 금융가를 혼란에 빠뜨린 지금 선진국의 금융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 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에 폭풍을 몰고 오 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금융수학을 바라보는 눈은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우리나라 도 미국 등 선진국처럼 황금알을 낳는 투자 은행을 키우자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 하지 만 이제는 다른 말이 나온다. 파생상품이라 는 ‘악마의 유혹’에 덜 빠져든 것이 그나마 다 행이라는 것. 그렇다면 이 같은 파생상품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금융수학자들은 현재의 금융위 기, 그리고 금융수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해 11월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서울- 도쿄 금융수학 컨퍼런스’에 참여한 금융수학 자들은 상당히 엇갈리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부는 이번 금융위기가 금융수학에서 파생 된 것이 아니라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기초한 파생상품의 모델링에서 나온 것이란 주장을 폈다.

한마디로 설계가 잘못됐다는 것. 또 다른 일부는 파생상품 모델링의 결함 여부를 떠나 이를 판매하는 금융기관의 행위 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었다는 지적을 내놓았 다. 이번 금융위기를 바라보는 금융수학자 들의 시각에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이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파생상품 모델링의 문제

일본 도쿄대학의 쿠수오카 시게오 교수는 우 선 파생상품의 빠른 금융위기 전파력 문제를 거론했다. 최근 발생한 금융위기의 근본적 인 원인은 미국 주택가격의 하락이지만 파생 상품이 금융위기를 빨리 전파하는 역할을 한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쿠수오카 교수는 “파생상품이 없었 어도 금융위기는 왔겠지만 금융위기가 발생 했을 때 손끝에서 심장으로 바로 전달되도록 한 것이 바로 파생상품”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파생상품 자체의 문제는 무엇 이었을까. 쿠수오카 교수에 따르면 헤지를 정확하게 하지 않은 것이 금융위기 를 불러일으켰고, 그 기반이 된 파생상품의 모델링 역 시 잘못됐다는 것.

그는 “일관적이 지 않고 상황에 따 라 변수가 달라지 는 모델링을 사 용했다”며 “계산 을 하는 데는 단 순해서 좋았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는 잘못된 파생상 품 모델링을 썼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파생상품 모델링이 현 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결과를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쿠수오카 교수가 파생상품 모델 링의 문제를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한 반 면 같은 대학의 다카하시 아키히토 교수는 파생상품 운용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많 은 파생상품들이 팔리고 수익을 내고 있지만 이번에는 파생상품을 잘못 운용했다는 것. 그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도 물건 을 만들어 파는 제조업이나 마찬가지”라며 “정확한 비용을 산출하고 적당한 마진을 붙 여 판매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주택에 기반을 둔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은 정확한 비용은 물론 적정한 마진 산출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 그는 자 신의 파생상품 모델링을 적용하면 높은 수익 을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인간행동 메커니즘이 더 문제

성지영 아주대 석학 교수는 이와 다른 해석 을 내놓았다. 그는 파생상품 모델링의 정확 도나 적용범위 같은 금융수학이론의 수준을 넘어 아무리 모델링이 좋아도 이를 상품판매 에 적용할 때의 인간행동 메커니즘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바로 도덕적 해이 가 이번 금융위기의 중심에 있다는 것. 성 교수는 “보통 도덕적 해이라고 하면 일부 특정한 금융기관이나 소수 사람들에게 만 나타나는 예외적인 현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경제 시스템 전반에 내재돼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경제 시스 템 자체가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끔 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파생상품 을 판매하는 과정과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에 근본적인 금융위기의 원인이 숨어 있다는 것 이다. 일반적으로 투자은행에 재직하고 있는 투자 담당자들은 올해 얼마의 수익을 올리느냐에 따라 고액의 성과급을 받는다.

그런데 장기 채권을 사면 투자액이 회수되는 것은 5 년, 10년 뒤의 일이어서 리스크 관리에 소홀 하게 된다. 다시 말해 투자 담당자들은 실제 상품의 리스크보다는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먼저 따져 파생상품을 거래하게 된다는 것. 어떤 파생상품의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것은 이미 많은 보너스를 챙기고 자신이 회사를 그만 둔 뒤에 일어날 일이라는 얘기다.

성 교수는 “금융수학의 발달로 어떻게 헤 지를 해야 손실을 최소화 할지 투자 담당자 들은 이미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를 무시 하고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경제 시스템에 보편적으로 존재하 는 위험을 보지 못한 채 예외적으로만 리스크가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헤지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학 자체의 변신을 요구한다. 단 순히 파생상품 모델링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과열경쟁에 의해 근본적인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현재의 경제학이 인지해 야 한다는 것. 결국 인센티브를 추구하는 사람의 행동을 포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위기에 대한 지식인의 역할

금융수학자들의 이 같은 논의는 사실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이 있다. 왜 그 들은 금융위기가 이처럼 파국으로 확대되기 전에 이 같은 논의를 하지 못했을까. 금융수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은 그저 숫자놀음에 불과한 허깨비였던 것일까.

이에 대해 구형건 아주대학 교수는 정보 가 있는 곳에서는 진작부터 금융위기 조짐을 감지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경험했던 것을 예로 들었다.

“지난 2005년 여름방학 때 대학 4학 년에 재학중이던 제 아들이 미국의 한 학회 가 주관하는 캠프에 참가해서 미국의 연방준 비제도이사회(FRB)에 견학을 간 적이 있었 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경제학자들은 이미 파생상품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캠프에 견학 온 대학생이 들었을 정 도니 정보가 있었던 경제학자들은 이미 3년 전부터 금융위기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는 얘 기지요.”

하지만 그 같은 금융위기가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 고 내로라하는 금융기관들이 뿌리째 흔들려 정부의 구제자금을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상 황이 올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한마디로 미래의 금융위기가 불확실하고,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 던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책임지고 문제가 있다고 외치기 어렵다는 게 구 교수의 설명 이다. 이 같은 상황은 금융위기가 이처럼 심각해질 때까지 손을 놓고 있었던 미국 금융계 와 관리감독권을 가진 미국 정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인 동시에 경제학자, 금융수학자 등 지식인들의 임무와 한계를 다시 떠 올리게 한다.

물론 그 어떤 학문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 할 수 없으며, 특히 인간사회를 다루는 학문 이라면 자연과학의 법칙만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 도 눈여겨보지 않는 위기를 조망할 줄 알고 경종을 울리는 것 역시 지식인의 역할일 것 이다.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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