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최근 원자력연구원이 각종 냉성중자 산란장치를 이용해 나도 단위의 물질 분석이 가능한 냉중성자 실험동을 완공함으로써 나노과학 및 생명공학 연구에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
냉중성자는 원자로에서 만들어지는 열중성자를 영하 250℃(절대온도 20K)의 액체수소로 된 감속재에 통과시켜 차갑게 만든 것으로 단백질 같은 살아있는 생체물질은 물론 나노 스케일의 물질 연구에 유용하다.
엔진, 서스펜션 같은 복잡한 장치가 들어간 자동차뿐 아니라 장난감 로봇을 만들 때도 각 부품의 구조와 조립법을 자세 히 적은 설계도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원자나 분자로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원자나 분자 등의 나노 세계를 볼 수 있을까. 바로 고정밀의 분 석 장비가 있어야 한다. 실제 나노과학이나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개발을 위한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분석 장비다.
나노과학에서는 나노 단위의 물질을 볼 수 있어야 하며,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살아있는 세포나 유전자 등의 생체물질을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나노과학이나 생명 공학 분야의 과학자들은 우수한 분석 장비를 가장 우선순위의 경쟁요소로 보고 있다.
우수한 분석 장비를 보유하는 것이 보다 높은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관건이라는 얘기다. 이는 보다 먼 우주를 볼 수 있는 대형 천체 망원경을 보유한 천문학자가 보다 우수한 연구결과를 도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현재 원자 또는 분자 단위의 물질을 볼 수 있는 분석 장비로는 포항 방사광가속기를 비롯해 입자가속기, 전자현미경, X선 분석 장비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 분석 장비가 갖고 있는 최대 단점은 나노 단위 또는 그 이하의 물질 분석에 취약하고 생체물질 분석 역시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전자현미경이나 X선 분석 장비의 경우 물질에 대한 분해능(分解能)이 낮고, 살아있는 상태의 생체물질 분석 역시 거의 불가능하다. 분석 장비의 성능 기준이 되는 분해능이란 크기가 작고 인접한 두 개의 물질을 한 덩어리로 보느냐, 아니면 두 개의 물질로 분리해 볼 수 있느냐의 구분 능력을 말한다.
사실 분해능이란 개념은 천문학에서 기원한다. 다시 말해 분해능이란 이상적인 천체 관측 조건에서 망원경의 상(狀)이 얼마나 명확하고 뚜렷이 보이는가를 나타내는 척도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망원경은 성능이 좋은 것일수록 높은 배율에서도 별이 점상(點狀)으로 보여야 한다. 그 이유는 별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망원경이라고 할지라도 배율을 높이면 별빛의 상이 한 곳에 맺히지 못하고 어느 정도 퍼지게 된다.
한마디로 별의 상 번짐이 작은 것일수록 훌륭한 망원경이며, 망원경의 구경이 클수록 분해능 역시 좋아 진다.
냉중성자 실험동 완공
각각의 분석 장비마다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 다. 하지만 나노 단위의 물질 분석과 생체물질 분석이 가능한 것이 바로 냉중성자(冷中 性子, cold neutron) 산란장치다.
냉중성자란 원자로에서 만들어지는 열중성자를 영하 250℃(절대온도 20K)의 액체수소로 된 감속재에 통과시켜 차갑게 만든 것 이며, 냉중성자 산란장치는 냉중성자 빔의 산란과 회절을 통해 물질 분석이 이루어지는 장치를 말한다.
산란(散亂)이란 파동이나 빠른 속도의 입자선이 분자, 원자, 미립자 등에 충돌해 운동 방향을 바꾸고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반면 회절(回折)이란 파동이 장애물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현상으로 입자가 아닌 파동에서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입자의 진행 경로에 틈이 있는 장애물이 있으면 입자는 그 틈을 지나 직선으로 진행한다. 이와 달리 파동의 경우 틈을 지나는 직선 경로뿐 아니라 그 주변의 일정 범위까지 돌아 들어간다.
이처럼 파동이 입자로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영역에 휘어져 도달하는 현상이 회절이다 지난해 11월 말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각종 냉중성자 산란장치를 이용해 분석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냉중성자 실험동(CNLB: Cold Neutron Laboratory Building)을 완공했다.
현재 이 냉중성자 실험동은 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로부터 발생 된 냉중성자를 각종 분석 장비까지 전달해주는 냉중성자 유도관만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다.
냉중성자 산란장치 등 분석 장비들은 아 직 들어서지 않은 상태라는 얘기다.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에 냉중성자를 발생시키기 위한 액체수소장치가 장착되는 것이 올해 5월이고, 냉중성자를 발생시키는 것은 9월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오는 2010년까지 7종의 다양한 분석 장비들이 들어설 계획으로 있어 나노과학과 생명공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가 이뤄질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냉중성자를 이용한 분석 장비를 가동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유럽, 일본에 불과 하다. 사실 냉중성자를 이용한 물성 연구는 1960년대 유럽에서 시작됐는데, 최근 냉중성자를 이용한 연구 수요가 폭증하면서 호주, 중국 등도 시설 구축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실제 호주는 최근 시설 가동을 시작했으며, 중국도 시설 구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냉중성자 실험동은 지난 2004년부터 총 189억 원이 투입됐다.
이 실험동에는 올해부터 고분해능 소각(小 角) 산란장치를 비롯해 40m 길이의 중성자 소각 산란장치, 냉중성자 3축 분광장치, 그리고 디스크초퍼 비행시간 분광장치 등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4종의 분석 장비가 들어설 예정이다.
또한 기존 하나로 원자로에 직접 연결돼 있던 12m급 중성자 소각 산란장치, 수직형 중성자 반사율 측정장치, 그리고 생체계면 반사율 측정장치 등 3개의 분석 장비는 성능의 업그레이드와 함께 위치 역시 재조정될 예정이다.
신규로 개발되는 분석 장비들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비롯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성균관대, 서강대 등이 공동 개발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KIST가 개발을 주관하고 있는 고분해능 소각산란장치는 냉중성자 빔을 실리콘 단결정에 수차례 반사시킴으로써 잡음 발생 비율을 크게 낮출 예정이다.
이를 통해 분해능을 1˚의 각도를 3,600으로 나눈 초각까지 높인다는 계획. 이렇게 하면 10억분의 1m인 나노미터에서 100만분의 1m인 마이크로미터 수준까지 물질 분석이 가능하다.
또한 액체, 고체, 입자 등 구조 분석 대상물질의 성질에 관계없이 분석이 가능하다. 40m급 중성자 소각 산란장치는 KAIST가 개발을 주관하고 있으며, 단백질 집합체 등 생체물질 구조연구에 활용될 예정이다.
실험장치 길이만 40m에 달하는 이 거대한 분석 장비는 나노 단위의 연구를 비롯해 생체 재료 내에서 약물이 전달되는 물질 구조를 분석하는 연구에 활용될 수 있어 신약개 발에 획기적인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냉중성자 유도관의 중요성
냉중성자를 이용한 분석 장비 가동을 가능케 하는 핵심요소 중 하나는 바로 냉중성자 유도관이다. 냉중성자 유도관은 원자로에서 발생된 중성자를 수십m 거리까지 전달해주는 일종의 파이프라인이다.
일반적으로 원자로에서 우라늄을 태우 면 중성자가 발생한다. 중성자는 평균 2메가 eV(일렉트론볼트)의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이 중성자를 중수(경수로는 경수) 등의 감속재에 통과시키면 물속의 수소와 반응해 열중성자로 바뀌게 된다.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중성자로부터 다량의 에너지를 얻어낸 감속재를 이용해 증기 발생기를 돌리고, 이 증기의 힘을 이용해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감속재를 통과하고 남은 중성자는 열중성자로 바뀌게 되고, 이 열중성자를 다시 영하 250℃의 액체수소에 충돌시키면 냉중성자가 만들어진다. 냉중성자의 파장은 4~20(옹스트롬, 1나노미터=10옹스트롬)이고, 에너지는 0.1~10㎜eV다.
냉중성자는 일종의 빔(Beam) 형태로 X 선보다 투과 성능이 우수하다. 실험하려는 재료에 냉중성자 빔을 투과시키면 재료 내부의 물질들과 충돌하면서 산란 및 회절 현상이 나타나고, 이를 분석함으로써 물질의 구조를 알아내게 된다.
냉중성자를 이용한 분석 장비들은 단백질과 같은 살아있는 생체물질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나노미터보다 작은 파장을 가짐으로써 나노 수준의 물질 분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같은 투과 성능은 냉중성자가 발생한 곳에서부터 다른 곳까지 옮기는 것을 어렵게 한다. 원자력연구원의 경우 그동안 보유하고 있던 3종의 냉중성자 분석 장비들이 모두 하나로 원자로에 연결된 상태로 있다.
이는 상당한 수준의 안전관리를 필요로 하는 원자로에 분석 장비를 직접 연결함으로 써 원자로 시설 주변이 복잡해지고, 분석 장비의 숫자를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을 노출시킨다.
반면 원자로에서 발생된 중성자를 다른 곳으로 전달·분배해 주는 파이프라인 같은 냉중성자 유도관(Neutron guide tube)이 개발됨으로써 원자로에서부터 수십m 이상 떨어진 공간에 다수의 냉중성자 분석 장비를 설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냉중성자 유도관의 역할은 파이프라인과 같지만 이 냉중성자 유도관은 둥근 파이프 형태가 아니라 안쪽 면이 특수 거울로 만들어진 사각 형태의 유리관이다.
하지만 특수 거울일지라도 냉중성자를 모두 반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리나 거울 등에서 나타나는 전(全) 반사 효과를 이용해야 한다. 전 반사 효과란 평소에는 빛을 투과시키는 투명한 유리일지라도 빛이 들어오는 각도에 따라 거울처럼 반사시키는 효과를 말한다.
즉 냉중성자 빔이 니켈로 코팅된 특수 거울의 표면에 약 0.5˚의 입사각으로 전달되면 대부분이 반사되는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냉중성자 유도관의 국산화
원자력연구원 중성자과학연구부의 조상진 박사팀이 국산화한 냉중성자 유도관은 열팽 창이 거의 없는 15mm 두께의 붕규산 유리 를 사용해 제작됐다. 약 1.5m 길이의 유리판 표면에 냉중성자를 반사하는 니켈과 냉중성자를 흡수하는 티타늄을 5~7nm(나노미터) 두께로 번갈아 가며 120층 코팅을 한 것.
이는 전 반사 효과에 따른 입사각을 1˚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서 는 니켈과 티타늄을 약 120층까지 반복해 코팅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팅 과정의 핵심 기술은 처음에는 두께를 얇게 했다가 점차 늘려가는 것. 이렇게 하면 표면층에서 투과된 중성자 빔이 아래층에 서는 반사되는 효과를 얻게 되고, 보다 먼 거리까지 보다 많은 양의 중성자 빔을 전달할 수 있다.
조 박사는 “입사각 1˚ 이상의 중성자 빔 은 각종 분석 장비에 거의 사용되지 않아 투과시키지만 기술적으로는 니켈-티타늄을 약 6,000층까지 코팅해 입사각을 2.5˚ 수준까지 올린 슈퍼 거울(Super Mirror) 기술 까지 개발했다”고 말했다.
초정밀 코팅 기술과 함께 진공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냉중성자 유도관의 특성상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정밀도로 유리 기판을 접합하는 기술이 요구된다. 이는 내부 면에 니켈-티타늄 코팅이 이뤄진 1.5m 길이의 유리 기판 4개를 접합시켜 세로 15cm, 가로 2cm 또는 5cm의 서로 다른 사각형 관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붕규산 유리에 포함된 붕소 성분이 냉중성자와 충돌하면 유리 내부에서 헬륨으로 가스화되고 균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내부 면은 완벽히 코팅된 부분만 노출돼야 한다.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냉중성자 유도 관 국산화 연구를 통해 약 250m에 달하는 냉중성자 유도관을 설치하게 됐다.
이는 하나로 원자로에서 이번에 준공된 냉중성자 실험동에 이르기까지 5개 노선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특히 원자력연구원은 냉중성자 유도관의 국산화를 통해 1m당 3,000만원 수준으로 제작비용을 낮췄다.
초정밀 코팅과 유리 기판 접합기술이 필요한 냉중성자 유도관은 현재 프랑스, 스위스, 헝가리 등 3개국만이 상용화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수입 비용은 1m당 1억 원에 달한다.
원자력연구원은 오는 2010년까지 5개의 냉중성자 유도관을 연결해 총 7개의 분석 장비들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한 2012년부터 시작되는 2단계 시설투자를 통해 냉중성자 유도관 2개와 열중성자 유도관 3개를 추가로 연결, 여기에 각종 분석 장비를 장착할 계획이다.
5개의 냉중성자 유도관을 사용하면서 7 개의 분석 장비를 장착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냉중성자 유도관에 냉중성자 빔의 서로 다른 파장을 이용하는 분석 장비를 복수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2012년 이후 열중성자 분석 장비마저 설치하게 되면 냉중성자 산란장치보다 작은 단위의 물질 분석이 가능해져 원자의 자기스핀에 대한 연구도 수행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모든 물질의 원자 영역에서는 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회전하고 있는데, 이를 자기스핀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전기를 가하 거나 대전시키면 회전방향이 바뀐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치의 물질 소재는 바로 이 같은 연구의 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냉중성자 연구시설이 완공되면 나노과학 과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를 위해 더 이상 청 탁 연구를 떠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냉중성자 유도관을 비롯한 모든 장치와 기구들이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국내 연구 개발 기반 확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 된다.
강재윤기자 hama9806@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