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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산업기술체험관] 문화로 승화된 프랑스의 산업기술체험관

국가경쟁력 제고의 산실 선진 산업기술체험관을 가다(下)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뤄왔다. 이처럼 단기간 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산업기술계의 우수한 인재 풀 덕분이었다.

이들이 만들어낸 세계 최초, 그리고 세계 최강의 산업기술이 경제발전의 기폭제로 작용했던 것. 하지만 이 동력원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에서 보듯 산업기술의 국가적 위상이 빛을 바래면서 우수한 인적자원 공급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일본, 유럽 등 산업기술 강국들이 잇따라 건립하고 있는 산업기술체험관이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산업기술 및 그 성과물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산업기술체험관을 활용하면 우수 인력 양성, 산업기술 발전,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선순환 사이클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는 한국산업기술재단과 공동으로 상, 하 2부에 걸쳐 선진 산업기술체험관의 현황과 운영실태, 사회적 역할과 가치, 그리고 국가적 기여도를 조명해 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프랑스 파리는 세계 문화혁명을 주도하는 중심지다. 이 파리에서 최근 또 다른 형태의 문화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진앙지는 전 세계 산업기술체험관의 롤 모델로 불리는 라빌레트 과학산업관.

산업기술 체험을 하나의 문화 활동으로 승화시켜 파리 발(發) 산업 기술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것. 프랑스 정부는 라빌레트가 우수 인적자원 이탈이라는 위기에 빠진 산업기술계를 구원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라빌레트의 핵심 전략은 재미있는 산업기술 체험에 더해 미래기술 변화에 부응하는 발 빠른 전시물 업그레이드, 산업기술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보여주는 비판적 전시 등 교육성을 극대화한 전시·운용시스템의 구축이다.

교육 효과에 주목한 수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스스로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게 해 산업기술 친화 마인드를 사회전반에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장을 찾은 교사들에게 실험과 체험 중심의 교수법을 적극 전수, 공교육의 변혁까지 유도하고 있다.


문화로 승화된 산업기술

유럽은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산업 관과 과학관이 즐비하다. 하지만 유럽에서 진정한 산업기술체험관을 만나보려면 프랑스, 그 중에서도 파리로 가야한다. 유럽 산업 기술체험관의 어머니로 불리는 라빌레트 과학산업관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와 파리시가 산업기술문화 진흥을 목표로 지난 1986년 설립한 라빌레트는 전 세계 산업기술체험관 중 최대 성공 사례로 꼽힌다.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매년 300만 명 이상이 찾아와 다양한 산업기술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

개관이래 22년간 누적 관람객은 무려 6,700만 명에 달한다. 일개(?) 산업기술체험관이 이토록 오랜 기간 식지 않는 인기를 구가하는 비결은 뭘까. 홍보 담당자인 쟈드 로바투 드포리아는 “프랑스에서 라빌레트에 오는 것은 하나의 문화”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사람들이 라빌레트를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다를 바 없는 문화생활 공간으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다. 평일과 주말 관람객수 편차가 크지 않다는 것은 이를 방증하는 좋은 지표다.

평일에는 한산하고 주말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는 보통의 산업기술체험관처럼 시간이 있을 때 놀러오는 곳이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오는 문화명소가 됐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전체 방문자 중 재(再) 방문자의 비율이 48%에 이르는 것 또한 라빌레트의 문화적 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포리아는 “산업기술체험관의 궁극적 존재 이유는 산업기술 체험을 문화로 승화시키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고는 산업 인재 양성이나 산업기술문화 확산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폐해도 가감 없이 보여줘

문화로 승화된 산업기술을 위해 라빌레트가 선택한 전략은 교육성 강화다. 각 전시물의 교육적 효용성을 극대화해 미래 산업기술계의 동량이 될 청소년과 어린이를 집중 공략하는 것.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육성 강화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 교육 교재의 배포 등 누구나 하고 있는 평범한 것이 아니다. 라빌레트는 오히려 산업기술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에서 해답을 찾았다.

전시책임자인 마르크 지라드는 “개관 초기에는 산업기술의 성공과 우수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면서 “하지만 툴루즈 화학공장 폭발 사고 등 유럽 내의 잇따른 대형 산업재해로 산업기술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무너진 뒤 방향을 선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시민들이 산업기술의 빛과 그림자를 정확히 파악, 올바른 판단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최대 가치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라빌레트의 주요 전시장에는 이 같은 신념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1층의 에너지 관과 자동차관에서는 각각 과도한 에너지 자원 개발의 폐해, 자동차 배기가스의 지구온난화 유발 문제를 함께 접할 수 있다. 또한 1층과 2층으로 나뉜 유행성 전염병 전시장에는 고가의 약값으로 인한 빈곤층의 치료권 박탈 논란이 제기돼 있다. 이는 특정기업의 후원을 받아 그 기업의 제품을 중심으로 전시물을 꾸밀 때도 예외가 아니다.

일례로 거대 석유화학기업인 토 탈의 기획전시에서는 석유 사용에 따른 지구 환경 파괴와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국제분쟁 문제를 다룰 것을 의무화했다. 또한 모 알루미늄 기업의 경우도 알루미늄이 건강에 미칠 수 있는 해악에 대한 정보 제공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이슈에 맞춰 2~9개월 단위로 바뀌는 기획전시, 산업기술 발전에 신속히 부응하는 전시물 업그레이드, 유아교육 전문가가 상주하는 2~7세 및 5~12세 전용관, 과학 산업·건강·디지털· 직업으로 구분된 전문도서관 등 라빌레트의 모든 운용시스템이 교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바로 이것이 5개 층 4만㎡의 전시공간 에 펼쳐진 1,100여종의 체감형 전시물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교육적 가치를 배가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의 혁명도 꾀해

라빌레트의 이 같은 시도는 주효했다. 유치원과 초·중·고 교사들이 교육적 효용성에 주목하면서 파리는 물론 프랑스 전역에서 아 이들을 앞세우고 라빌레트를 찾아오기 시작한 것.

지라드는 “지난해의 경우 유료관람객 3 명 중 1명이 학교 단체 관람객이었다”면서 “특히 무료관람객을 포함한 전체 관람객 중 57%가 20세 이하의 어린이와 청소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조기에 산업기술과 접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사회전반에 산업기술 친화적 마인드가 확산되고 있음은 당연하다.

현재 라빌레트는 이 같은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한 3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인터넷을 활용한 전시장의 무한 확장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고품질의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골자.

이미 이를 위한 대대적 홈페이지 리뉴얼에 돌입했으며, 내년 초 다양한 미니사이트로 구성된 1차 버전이 선보이게 된다. 또한 내년 1·4분기 내에 뉴미디어로 각광받고 있는 인터넷TV(IPTV)도 개국, 산업기술에 대한 초기교육에 활용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어려운 산업기술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산업기술 연구자의 발굴이다. 대중들의 산업기술 이해력 제고를 위해 이 연구자들에게는 대중과 만날 수 있는 무대를 적극 마련해 준다는 방침이다.

마지막은 공교육의 혁신. 라빌레트를 방문한 교사들에게 실험과 체험 중심의 교수법을 적극 전수함으로서 국가의 산업기술 교육 자체에 변혁을 일으키겠다는 것. 지라드는 “프랑스에서 교육시스템의 개선은 가장 이뤄내기 힘든 일의 하나지만 수년간의 노력에 힘입어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며 “장기적 플랜을 세워 좀 더 많은 교사들에게 라빌레트의 비전이 이식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파리=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interview] 마르크 지라드 라빌레트 과학산업관 전시책임자
“커다란 체험관을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라빌레트 과학산업관의 전시물 설치와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마르크 지라드 전시 책임자는 큰 규모의 산업기술체험관을 짓는다고 이공계 위기가 해소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물리적 규모보다는 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 다음은 지라드와의 일문일답.

Q. 한국은 지금 이공계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A. 유럽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특히 프랑스는 산업기술보다 예술, 문화를 중시하는 특성이 강해 에콜 폴리테크니크와 같은 산업기술 엘리트 학교를 졸업한 수재들조차 안정적 직장을 찾아 재정 전문가나 공기업 경영자 등 비(非) 이공계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가 근본적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Q. 산업기술체험관이 위기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A. 그것은 아니다. 단지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무조건 큰 건물을 지어 재미있는 체험형 전시물들을 채워 넣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지적하고 싶다. 이는 산업기술에 대한 접촉 기회를 높이고 흥미를 자극할 수는 있지만 산업기술계의 인재난 해소에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해야한다.

라빌레트도 외적 성장에 비해 실제 인재 양성 기여도는 높지 않다는 상반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아직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을 활용한 잠재적 공간 확대, 공교육 개혁 등이 이 격차를 줄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내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있다.

Q. 전시물 선택의 기준은?

A. 관람객의 관심사와 산업기술계 전문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현재 이슈의 교차점을 본다. 이렇게 해야만 대중이 원하는 것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줄 수 있다.

또한 어떻게 해야 산업기술에 대한 대중적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지, 혁신적 사고를 고취할 수 있을지도 고민한다.

2009년 하반기 중 3,000㎡의 공간을 활용, 혁신기업들이 자신의 기술을 직접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는 ‘혁신 갤러리’ 전시장을 오픈하려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Q. 산업기술체험관을 운영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면?

A. 단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기본적으로는 산업기술계와의 파트너십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기업밀착형 전시, 즉 제품 중심의 전시를 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관람객들이 산업기술인지, 기업홍보인지 헷갈려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한 채 해당기업에 대한 반감만 일어날 수도 있다. 산업체의 홍보와 산업기술체험관의 사회적 책임의 교집합을 잘 찾아야 한다. 라빌레트가 찾은 교집합은 그 기업에게 불리한 정보까지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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