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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인플루엔자 A와 변종 바이러스의 공포

인플루엔자는 흔히 독감 또는 유행성 감기로 불린다. 하지만 인플루엔자는 감기와 전혀 다른 질환이다. 원인부터 증상, 치료, 예방법이 모두 다르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인플루엔자는 감기보다 바이러스의 변이가 적고 해마다 유행하는 바이러스의 종류도 정해져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종(異種) 바이러스 간의 유전자 재조합으로 대대적인 변이가 일어나면 엄청난 사망자를 불러올 수도 있다.

대대적 변이로 생긴 바이러스는 기존의 치료제로 치료가 불가능한데다 새로운 백신을 만드는데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신종 인플루엔자 A는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여러 변종 바이러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독감을 ‘심하게 걸린 감기’ 정도로 치부했다가 큰 코 다치는 경 우가 많다. 독감 또는 유행성 감기로 불리는 인플루엔자(influenza)는 그 원인, 증상, 치료, 예방법에서 감기와는 완연히 다르다.

감기는 호흡기 점막이 200여종의 각종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일어나는 급성 염 증성 질환이다. 콧물 및 가래를 동반한 기 침 등 호흡기 증상과 함께 열이 나고, 기운 이 없으며, 온몸이 쑤신다. 반면 인플루엔자는 오르토믹소바이러스에 속하는 RNA(리보 핵산)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질환이다.

심한 고열, 두통, 춥 고 떨리는 오한, 그리고 온몸의 뼈마디가 쑤 시는 증세가 나타난다. 감기는 합병증이 생기지 않으면 1주일 내에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게 보통이지만 인플루엔자는 바이러스가 대대적인 변이를 일으킬 경우 전 세계적인 유행과 함께 엄청 난 사망자를 불러온다.

인플루엔자는 ‘영향’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탈리아 낱말에서 나온 것으로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전염력이 강하다는 얘기다.

신종 인플루엔자 A의 발생 과정

인플루엔자는 A형, B형, C형 등 3가지가 있 는데, 사람에게 질환을 일으키는 것은 A형 과 B형이다. 이중 B형은 증상이 약하고 한 가지 종류만 존재하지만 A형은 바이러스의 유전자형에 따라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형을 나타낼 때는 H1N1, H2N2, H3N2 같은 기호를 사용한다. 이는 바이러 스의 표면 단백질인 헤마글루티닌(H)과 뉴 라미니다아제(N)의 유전자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헤마글루티닌은 바이러스가 기생 및 증 식할 숙주 세포에 들러붙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뉴라미니다아제는 기생 및 증식이 끝나 숙주 세포에서 이탈하는데 쓰이는 단백 질이다.

헤마글루티닌은 16종, 뉴라미니다 아제는 9종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어떤 것 이 결합돼 있느냐에 따라 H1N1, H2N2의 기호가 붙는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 자 A의 바이러스 유전자형은 H1N1으로 지 난 1918년에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H5N1), 1957년에 발생한 아시아 독감(H2N2), 그리고 1968년에 위세를 떨친 홍콩 독감 (H3N2)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처럼 기존 에 면역이 없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 질환이 생겼기 때문에 이를 신종 인플루엔 자 A라고 부르는 것이다. 돼지 독감, 또는 돼지 인플루엔자로 불 리는 신종 인플루엔자 A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18일. 멕시코시티 에서 인플루엔자 A의 의사증세가 갑자기 늘어나면서부터. 당초 멕시코 당국은 이를 일반적인 인플루엔자 A로 판단했다.

하지만 4월 24일 인 플루엔자 A 의사증세를 일으킨 환자들에 게서 수거한 샘플을 분석한 미국의 질병관 리예방본부와 세계보건기구는 이것이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것임을 밝혀냈다. 멕시코의 보건부 장관인 호세 안젤 코르 도바는 그제야 “통제가 어려운 신종 인플루 엔자 A로 인한 전염병을 막고 있다”고 밝혔다.

신종 인플루엔자 A의 출현을 공식 시인 한 것. 멕시코 언론은 신종 인플루엔자 A의 진 원지로 베라크루스 주의 대규모 돼지 농장 을 지목했다. 공장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 돼 지 농장은 세계 최대의 돈육 생산기업인 미국의 스미스필드 푸드 소유다.

100만두 이상의 돼지를 과밀 상태로 사 육하는 이 농장은 가축 분뇨를 위생적으 로 처리하지 않고 인근 하천에 불법 방류하 는 등의 행위로 이미 수년 전부터 지역 주민 들의 원성을 사왔다.

언론에서 최초의 신종 인플루엔자 A 환자로 지목하는 소년도 이 농장 근처의 라 글로리아 마을 출신이다. 이 마을에서는 이미 올해 2월부터 원인 을 알 수 없는 인플루엔자 A 의사증세 환자 가 급증했었다.

하지만 스미스필드 푸드는 자신들의 농장을 신종 인플루엔자 A의 진 원지로 모는 세간의 시선을 부인했다. 한마 디로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것. 코르도바 장관 역시 “신종 인플루엔자 A 의 진원지는 멕시코가 아닌 미국일 수 있다” 고 주장했으며, 미국의 질병관리예방본부 역시 최초의 환자가 멕시코에서 발견되기 이전인 3월 28일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A 환자를 발견했다고 시인했다.

어디가 정확한 진원지인지 알 수는 없지 만 신종 인플루엔자 A는 멕시코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환자를 발생시 켰다. 지난 5월 16일 현재 확인된 환자 수만 해 도 무려 8,464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90% 의 환자가 멕시코와 미국에서 발생했다.

그 리고 4월 13일 멕시코 오악사카 주에서 당 뇨병을 앓던 여성이 신종 인플루엔자 A에 감염돼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5월 16일 현 재까지 최대 100명의 사람들이 신종 인플루 엔자 A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종 인플루엔자 A의 전 세계적 창궐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마스크, 장갑 등 위생용품의 판매가 급증하는 대신 이 질환의 매개체로 지목된 돼지고기의 판매량은 급락했다. 심지어 신 종 인플루엔자 A의 감염을 극도로 두려워 한 나머지 악수나 키스 같은 신체 접촉도 기 피하는 광경이 속출했다.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특성과 위험성

일반적으로 인플루엔자는 박테리아보다 작 은, 문자 그대로 생명체의 최소 단위인 바이 러스가 인간의 세포를 공격함으로서 발생 한다. 만일 바이러스가 하나의 세포를 숙주로 삼으면 그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를 이용해 자신의 게놈을 이루는 8가지 RNA를 복제 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숙주 세포의 유 전물질이 바이러스 내로 흡수된다. 또한 하 나의 숙주 세포가 2가지 이상의 바이러스 에 감염된 경우에도 여러 바이러스 간에 유 전물질 교환이 이루어져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바이러스가 만 들어지는 것이다.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 A가 문제되고 있 는 것은 이종 바이러스 간의 유전자 재조합 으로 대대적인 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바이러스 유전자의 대대적 변이는 통상 10~50년을 주기로 나타난다.

조사결과 신종 인플루엔자 A의 발병 바 이러스인 H1N1은 북미 돼지 인플루엔자, 북미 조류 인플루엔자, 인간 인플루엔자, 그 리고 아시아 및 유럽의 돼지 인플루엔자 등 4가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혼 합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조류, 돼지, 인간 인플루엔자 발병 바 이러스의 유전자가 섞여 재조합된 것이기 때문에 같은 종에서는 물론 이종 생물체 간 에도 매우 높은 감염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같은 ‘몬스터’ 바이러스를 탄생시킨 매 개체로는 멕시코 베라크루스주에서 처럼 공장 방식의 농장에서 길러진 돼지가 지목 되고 있다.







돼지는 인간 인플루엔자 및 조 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모두에 대해 감수 성이 높다. 따라서 여러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혼합시켜 새로운 바 이러스를 탄생시키는 배양접시 노릇을 하 는 것이다.

좁은 장소에서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사 육되는 돼지의 경우 신체 접촉 및 이종 인플 루엔자 바이러스의 감염 기회가 많아 이 같 은 몬스터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 10여 년 전부터 북미 돼지 인플루 엔자 바이러스에는 조류 인플루엔자를 일 으키는 바이러스의 유전자와 인간 인플루 엔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들 어 있었다고 한다.

대대적 변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그 이 전에 인간에게 전염될 능력이 없던 바이러 스가 인간에게 전염될 능력을 갖추었음을 뜻한다.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 A 역시 돼지 및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전자 재 조합을 거쳐 인간에게도 전염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신종 인플루엔자 A의 증세와 피해

신종 인플루엔자 A의 전염이 얼마나 쉽게 이루어지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재채기나 기침 같이 공기를 통하거나 피부접촉으로 이루어지며, 인간 사이에도 전염 되는 것은 확실하다.

바로 이 때문에 마스 크가 불티나게 팔리고 신체 접촉이 금기시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스크는 착용한 사람에게서 나 오는 콧물이나 침 속의 바이러스가 외부 로 퍼지지 않게 막아줄 뿐 공기 중에 떠도 는 바이러스를 흡입하는 것은 막기 힘들다.

돼지고기나 돼지고기 가공식품을 통해서 는 전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잠복기는 약 2~7일 정도며 성인의 경우 증상 시작 후 적 어도 7일, 어린이는 10~14일까지 전염성이 있다. 현재까지 신종 인플루엔자 A에 의한 사 망자는 멕시코에 집중돼 있다.

이유는 정확 하게 알 수 없지만 과거 세계적 유행병 사례 를 돌아보면 같은 전염병이라도 저개발국 가, 또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상태에서 폐렴 등의 추가 감염을 막 지 못해 사망률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이 있 었다.

실제 4월 13일과 21일 신종 인플루엔자 A에 걸려 사망한 사람들의 직접적인 사망원 인은 신종 인플루엔자 A 감염에 의해 증세 가 악화된 비정형 폐렴이었다. 또한 인플루엔자 환자의 경우 대부분 노 인이나 어린이의 사망률이 높은데 비해 이 번의 신종 인플루엔자 A 환자는 25~50세 의 청장년층에 사망자가 몰려 있다.

이는 과 거의 전염병 대유행 특성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 전문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신종 인플루엔 자 A는 이전의 ‘선배’ 인플루엔자에 비해 아 직까지는 증상이나 치사율이 약한 편이다.

인류 사상 최악의 인플루엔자로 불리는 1918년 스페인 독감이 발병했을 때는 전 세 계적으로 5억 명이 감염되고, 이 중 10%인 5,000만 명이 죽었다. 당시의 세계 인구가 20억 명이 채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기록적인 피해다.

반면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 A의 사망률 은 아직까지 1.2%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난 2005년에야 희생자 부검을 통해 원인 바이 러스가 밝혀진 스페인 독감과는 달리 이번 에는 이미 원인 바이러스가 알려져 있는 상태다.

치료제 남용과 백신 개발 딜레마

유감스럽게도 현재로서는 신종 인플루엔자 A를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이 없는 상태다. 각국의 보건당국은 손을 자주 씻고 인 플루엔자 보균자 및 발병자와 신체 접촉을 삼가 할 것 등의 초보적인 예방책만 제시하고 있다.

치료제로는 오셀타미비르(상품명 타미 플루), 자나미비르(상품명 릴렌자)가 현재 로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히는 데, 이 두 가지 약품은 모두 바이러스에 있 는 뉴라미니다아제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 해하는 역할을 한다.

뉴라미니다아제는 기생 및 증식을 끝낸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서 이탈하는 것을 도와주는 단백질이기 때문에 이론상으로 는 이것의 기능을 막으면 바이러스가 다른 세포로 확산되거나 외부로 전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약품은 증세가 나타난 이후 48시간 이내에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 그리 고 오남용을 할 때는 오히려 바이러스가 이들 약품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실제 각국의 보건 전문가들은 아직 인플루엔자에 걸리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들 약품을 남용하는 바람에 치료제의 재고가 부족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약품에 대한 내성이 생길 경우 더욱 강력한 인 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생길 수도 있다고 경 고한다. 신종 인플루엔자 A의 발병을 원천봉쇄 할 예방용 백신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더욱 답답해진다.

존재가 알려진지 한두 달 밖에 되지 않은 바이러스인 만큼 이 바이러스 예방에 특화된 백신은 당연히 존재할 리 없 다. 특히 기존의 인플루엔자 백신은 신종 인 플루엔자 A에 예방효과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세계 11위권의 백신 개발 및 생산국가라는 점을 들어 수개월 내 신종 인플루엔자 A 백신의 개발을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종 인플루엔자 A 백신 개발에 는 적어도 2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 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종 인플루엔자 A가 쉽게 잠잠해질 경 우 기껏 큰 돈 들여 백신 만들었더니 쓰지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회의론도 나 오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신종 인플루엔자 A가 과거 스페인 독감처럼 전 세계적으로 무섭게 확대되고,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면 신종 인플루엔자 A 백신의 개발과 생산에 도 박차가 가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현재 세계의 백 신 생산능력은 세계 인구수에 비추어볼 때 너무나 부족한 상태다. 그리고 신종 인플루엔자 A 백신 생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다가 계절마다 나타나는 일반적인 인플루엔자에 대응하는 백신을 못 만들게 되면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맞을 위험도 있다.

현재도 매년 지구상에서 계 절 인플루엔자로 사망하는 사람은 50만 명 이 넘는다.

변종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주는 경고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숙주 세포에 기생 해 살아가기 때문에 숙주 세포가 전멸할 만 큼 전염성과 증세 모두 지독한 것은 거의 없 다. 대부분 숙주 세포의 면역능력과 발을 맞춰 함께 진화해 나간다.

따라서 특정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인류 가 멸종할 일은 없다는 게 과학자들의 설 명이다. 하지만 지난 스페인 독감에서도 보 았듯이 바이러스가 인류를 전멸시키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는 입힐 수 있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자연파괴, 인구증가 와 도시화로 인한 인구과밀로 신종 바이러 스의 출현 및 전염에 취약해져가고 있다. 특 히 대륙과 바다를 건너서까지 바이러스를 순식간에 전파시키는 교통수단의 급격한 발달, 그리고 항생제의 남용으로 인한 면역력 약화 등은 인간 스스로가 불러들이는 재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 A를 발생시킨 바 이러스의 진원지는 가축이 고도로 밀집돼 사육되는 공장 형태의 농장이라는 게 정설 이다. 인간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 어진 공간이 오히려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 인 바이러스의 생산기지가 된 것.

바이러스는 어디에서나 살 수 있으며, 환 경에 맞게 스스로를 바꾸는 능력도 탁월하 다. 심지어 바이러스는 인간이 바꾸어 놓은 환경에도 적응해 인간을 위협한다.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 A로 인해 세계는 변종 바이러스의 공포를 깨닫게 됐다.

그리고 바이러스와 인간은 영원한 시소게임을 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게도 됐다. 이는 자연 의 힘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는 또 다른 형태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리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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