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의 사례에서 보듯 음주에 관한 장비와 한국인의 공통 점은 과도하게 마신다는 것. 폭탄주는 어느 한 종류의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맥주, 소주, 양주, 심지어 포도주까지 섞어 마시는 것으로 사람을 심하게 취하도록 만든다.
폭탄주가 한 종류의 술을 마셨을 때보다 더 취하는 것은 알코올의 농도와 관계가 깊다. 일반적으로 알코올의 농도가 20%일 때 사람 몸에 가장 빨리 흡수된다고 한다. 그런데 알코올 농도 40%의 양주와 4.5%인 맥주가 섞이면 농도가 20%정도로 희석된다. 그래서 맥주와 양주를 섞은 폭탄주는 알코올이 사람 몸에 빨리 흡수돼 그만큼 빨리 취하게 된다.
맥주에 소주를 섞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한 술에 사이다나 콜라 같은 탄산음료를 섞으면 탄산이 알코올 흡수를 촉진시켜 빨리 취하게 만든다. 물론 처음에 소주를 마시고 두 번째 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는 식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여러 가지 술을 마셨을 때도 폭탄주를 마셨을 때와 마찬가지 효과가 나타난다.
폭탄주가 해로운 것은 몸에 빨리 흡수돼 빨리 취하는 것만이 아니다. 알코올 흡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간에 독성이 많이 쌓인다. 또한 술을 섞어 마시면 서로 다른 술에 있던 불순물이 반응해 혈관, 근육, 신경, 그리고 뇌세포 등의 중추신경계를 교란시킨다.
일반적으로 술을 마시면 식도의 점막에서 극소량의 알코올이 흡수돼 혈액으로 들어간다. 알코올의 10~20%는 위에서 그대로 흡수된다. 이 가운데 일부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알코 올산화효소에 의해 숙취의 원인이자 소관기관 암을 유발하는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뀐 후 혈액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머지 80%의 알코올은 소장에서 분해되지 않은 상태로 흡수돼 혈액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 중 일부는 대장에서 흡수된다. 이렇게 혈액으로 들어간 알코올은 인체의 화학공장인 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간에서는 일단 알코올이 알코올산화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되며, 이는 재차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ALDH2) 의해 초산으로 바뀐다. 초산은 혈액을 따라 돌며 몸 곳곳의 세포에서 탄산가스와 물로 바뀐다. 탄산가스는 허파를 통해 술 냄새로 배출되고, 물은 소변이나 땀으로 빠져나간다. 한마디로 ALDH2는 해독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ALDH2가 부족한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시면 침에 생긴 아세트알데히드를 제거할 수 없어 소화기관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침을 만들어내는 주요기관은 양쪽 귀 옆에 있는 이하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1.5ℓ 정도의 알칼리성 침을 만들어 내는데 알코올이 이하선에 들어가면 아세트알데히드로 대사한다. 이 때문에 ALDH2가 부족한 사람은 소화기관 암을 막기 위해서라도 술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아세트알데히드를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 바로 증류주다. 어느 정도 이상의 알코올 농도를 가진 주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 발효에 의해 만든 알코올 용액을 증류해 농도를 증가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 부분의 아세트알데히드가 사라진다는 것.
위스키, 코냑 등 거의 모든 양주가 증류 방식을 거쳐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소주도 마찬가지. 물론 이 소주는 희석식 소주가 아닌 전통주를 말한다.
장비가 많은 술을 마시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등 주사를 부린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당시 중국들이 마시던 술이 증류주가 아 닌 발효주였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서 증류주가 나타난 것은 몽골이 통치하던 원나라 때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글_이종호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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