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상도의 석굴암이나 앙코르와트는 정밀 스캔 기술을 이용해 3차원 모델로 만든 뒤 가상공간으로 옮긴 것이다. 역사 다큐멘터리에 자주 등장하는 컴퓨터 그래픽은 고증자료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복원의 하나다.
앞으로의 디지털 복원은 실제와 같은 영상의 재현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등 오감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전망이다. 다시 말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체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복원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통틀어 인류 삶의 환경을 조성했던 유형의 문화유산과 인류에 의해 전승돼 온 무형의 문화유산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본래 모습대로 복원, 가상공간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데이터화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발굴 및 측정해 디지털화하는 기술, 디지털로 측정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화유산의 원형을 복원하는 기술, 그리고 인문·사회·역사·예술자료를 토대로 문화유산의 재현은 물론 체험도 가능하게 하는 기술 등이 포함된다.
디지털 복원의 대상은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뉜다. 현재 존재하는 것, 불완전하게 남아있는 것,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있다. 석굴암이나 앙코르와트는 대상이 현 존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정밀 스캔 기술을 이용해 3차원 모델로 만든 뒤 가상공 간으로 옮기게 된다.
신라 황룡사와 같이 12세기 몽고군의 침공으로 불타 없어진 문화유산은 마지막 경 우,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목조 건축물이었던 만큼 현재는 기둥이 있었던 주춧돌 이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다. 이때는 고증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하게 된다. 그리고 불완전하게 남아있는 문화유산의 경우에는 스캐닝과 모델링 기술을 조합해 복원하게 된다.
KAIST의 문화기술연구센터
정보기술(IT)과 고고학 등을 결합해 디지털로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디지털 복원은 이제 하나의 학문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문화기술연구센터의 박진호 연구원은 국내에 몇 안 되는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 전문가로 꼽힌다.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은 도자기나 금관 같이 보관이나 보존이 용이한 것보다는 석 굴암 같은 건축물이 주요 대상이다. 건축물은 문화적 가치가 크면서도 자연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존이 어렵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장을 직접 방문하기 전에는 직접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물리적인 보관이나 보존이 어렵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 바로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인 셈이다.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을 통한 결과물은 얼핏 컴퓨터 그래픽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역사 다큐멘터리를 통해 볼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들이 디지털 복원 문화유산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이 이뤄지는 과정은 단순히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건축물을 재현해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박 연구원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국립중앙과학관의 요청으로 경주 석굴암 에 대한 디지털 복원 작업을 수행했다. 이 작업을 위해 유리벽으로 차단된 석굴암 내부로 들어갔다.
석굴암처럼 실재하는 문화유산의 경우 3D 레이저 스캐너와 고해상도(HD) 영상 카 메라를 이용한 실측 데이터 확보가 가장 먼저 이루어진다. 실제 석굴암은 중앙의 본 존불을 비롯해 38개의 주변 조각상에 대해 0.3mm 간격의 정밀 3D 스캔 작업이 이뤄 졌다.
석굴암은 3D 스캔이 이뤄졌기 때문에 지도의 등고선처럼 표면의 높낮이도 그대로 나타난다. 기존의 문화유산 실측은 수작업을 통해 2차원 형태의 도면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디지털 복원은 IT와 컴퓨터 그래픽을 결합해 3차원용 데이터를 측정하게 된다.
돔 씌워졌던 최초의 석굴암 재현
이렇게 확보된 실측 데이터는 필요할 경우 석굴암과 똑같은 형태를 물리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 같은 실측 데이터가 당시의 건축기술과 건축에 사용된 노하우까지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당시와 완전 동일하게 복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실측 데이터를 토대로 표면에 고해상도 디지털 영상을 입히면 석굴암 내부를 직 접 관람하는 것과 같은 디지털 복원이 이뤄지게 된다. 박 연구원은 "석굴암의 경우 높이가 9m고 본존불의 크기도 6m에 달하기 때문에 직접 내부에 들어가 관람하더라도 사람 시선 위쪽 부분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면서 "특히 아래쪽에서 대각선 형태로 바라보는 모습은 실제와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디지털 복원을 거친 문화유산은 직접 관람을 통해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수평 상태의 시선 높이에서 가장 정확한 형태의 문화유산을 보는 것도 가능하게 해준다.
문화기술연구센터 연구팀에 따르면 석굴암의 디지털 복원 작업을 통해서 2테라 바이트의 HD 동영상과 7기가바이트의 3D 스캔 데이터, 그리고 15기가바이트 분량의 고해상도 디지털 사진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종합함으로써 석굴암을 위쪽이나 옆쪽, 그리고 아래 쪽 등 모든 방향에서 볼 수 있다. 즉 석굴암 내부를 직접 둘러보는 형태의 고해상도 영 상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석굴암 복원 작업에서는 현재 남아있는 자료를 토대로 8 세기 건축 당시의 석굴암을 복원해 냈다.
석굴암은 지난 1913년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이뤄진 보수작업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디지털 복원을 통한 실측 데이터를 토대로 고건축 관련 전문가들이 훼손되기 이전의 원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돔이 씌워졌던 최초의 건축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같은 디지털 복원을 통해 훼손되기 이전의 원래 모습을 유추함으로써 실제 물리적인 복원작업을 할 때 매우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만약 숭례문이 불 타버리기 전에 이같은 디지털 복원 작업이 이뤄졌다면 가장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황룡사 9층 목탑 복원 프로젝트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의 또 다른 형태는 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잔해만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경우다. 현실세계에서는 보는 것이 불가능한 문화유산을 직접 관람하듯 볼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지만 이것이 실물을 그대로 복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게 된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문화유산의 복원작업은 우선 일부라도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한 실측 데이터 확보가 먼저 이뤄진다. 박 연구원이 수행했던 프로젝트 가운데 이 같은 사례가 있는데, 바로 황룡사 9층 목탑 복원 프로젝트다.
황룡사 9층 목탑은 목재로 제작됐기 때문에 현재는 그 터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복원작업 당시 황룡사 9층 목탑에 대한 원래 모습에 대해서도 고고학자와 고건축학자들 간에 의견이 통일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박 연구원이 복원한 황룡사 9층 목탑에 대해 오류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복원 작업 당시 목탑터에 남아있는 몇 개의 돌조각 흔적과 현재까지 연구된 신라 시대 선덕여왕 대의 목탑 건축 양식을 토대로 복원작업이 이뤄졌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이뤄진 복원작업이기 때문에 고고학자와 고건축학자의 서로 다른 의견 을 모두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박 연구원은 "복원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가장 정설로 평가되는 부분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복원된 결과물은 새로운 학설이 발표될 때마다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고 말했다.
현재 문화기술연구센터 연구팀은 그동안 고고학적 연구가 취약했던 백제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백제 최고의 유물인 무령 왕릉과 백제금동대향로 등이 현재가 아닌 백제시대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며, 백제의 최고 번성기 수도인 사비성도 복원된다.
해외 문화유산 복원 프로젝트
KAIST 문화기술대학원 문화기술연구센터 연구팀은 해외 문화유산의 복원 프로젝트도 다수 수행했다. 지난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복원을 비롯해 2007년 베트남 후에 황성, 2008년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등이 대표적이다.
앙코르와트 프로젝트는 박 연구원이 문화기술연구센터로 옮기기 전 다른 전문 업체에서 근무할 때 진행했던 것. 가로 1.5km, 세로 1.3km 크기에 전체 유적의 20% 이상이 파괴된 상태의 유적지에 대한 복원작업이었다.
복원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됐지만 지난 1964년 프랑스 건축학자 나플리앙이 작성했던 앙코르와트 실측도를 캄보디아 국립중앙박물관의 서고 한구석에서 발견함으로써 풀어나갈 수 있었다.
수만 장의 사진과 영상물을 촬영하는 작업은 고된 것이지만 2차원 실측도를 토대 로 3D 데이터를 덧씌우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고고학적 연구가 충실한 문화유산에 대한 디지털 복원은 그 문화유산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그만큼 신뢰성 있는 디지털 복원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베트남의 후에 시에 있는 후에 황성은 19세기 초 건축된 성곽 도시. 하지만 전쟁과 세월 속에서 대부분 파괴되고, 중심 건물인 태화전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박 연구원은 광대역 스캐너와 근거리 정밀 스캐너 등 2종의 3D 스캐너를 이용해 태화전의 내부와 외부를 정밀 스캔, 디지털 데이터를 확보했다. 또한 태화전의 내부에 있는 각종 유물에 대한 3D 스캔도 함께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는 후에 황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한국문화재 청의 공적 개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페르세폴리스 프로젝트는 국립중앙박 물관이 지난해 페르시아 특별기획전을 추진하면서 이루어졌다. 페르세폴리스는 고 대 왕국인 페르시아의 수도였지만 BC 4세기 초 알렉산더 대왕의 공격으로 대부분 파괴됐다.
페르세폴리스는 현재 남아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하지만 1930년대 미국 시카고 대 학의 오리엔트연구소가 유적 발굴에 나서면서 작성된 보고서와 도면, 그리고 1970년대 독일 건축학자 크레프트가 작성한 실측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실측도를 기초로 현재 남아있는 유적에 대한 HD급 동영상을 촬영했으며, 이를 통해 2차원 영상 데이터를 확보했다. 여기에 유적 발굴을 통한 각종 실측도를 토대로 3D 데이터를 제작했다. 이후 2차원 HD급 동영상에 3D 데이터를 결합시키고, 기존 유적과 유사한 표면 영상을 덧씌움으로써 완전한 디지털 복원이 이뤄졌다.
증강현실 기술 개발 필요해
사실 디지털 복원은 기존 유물이나 유적에 대한 실측 데이터 확보 및 영상화 작업과는 또 다른 영역이다. 박 연구원은 "디지털 복원은 현재 상용화된 IT 기술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복원만을 위한 특화된 IT기술 개발은 매우 취약한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디지털 복원이 확산되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디스플레이 기술의 취약성이다. 지금은 일반적인 TV나 모니터를 통해서만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다.
석굴암의 디지털 복원 자료를 활용해 내부를 직접 돌아다니며 관람하는 효과를 얻 기 위해서는 사용자와의 인터랙티브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인터넷 을 이용해 이 같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복원 자료의 데이터 양이 너무 크다. 데이터의 양을 줄이면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되면 직접 관람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렵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증강현실의 기술개발이 무엇보다 요구되고 있다. 증강현실은 가상현실의 한 종류로 알려져 있으며, 실재하는 문화유산의 영상에 부가적인 요소를 결합시켜 현실감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증강현실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 해서는 영상 기술과 디스플레이 기술 등이 함께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디지털 문화유산복원과 증강현실 기술과의 융합연구도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복원을 위해서는 X-레이나 초음파, 적외선 등의 특화된 기술개발도 필 요하다. 이들 기술을 이용하면 문화유산의 내부로 들어가 건축과정과 건축기법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덕=강재윤 기자 hama9806@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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