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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면역체계의 리프로그래밍

포도당은 뇌·신경·폐 등의 필수 에너지원으로 인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영양소며, 인체는 항상성을 통한 생명유지를 위해 자동조절시스템을 작동시킨다.

즉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인 인슐린을 통해 혈액 속의 포도당 농도, 즉 혈당수치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인해 인슐린이 적게 분비되거나 아예 분비되지 않으면서 나타나는 게 바로 당뇨병이다.

당뇨병에 걸리면 혈액이 끈끈하고 탁해지게 된다. 그러면 인체는 혈액 속의 포도당을 소변으로 배출시키고, 이로 인해 발생한 수분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당연히 목마름이 심해질 수밖에 없으며, 많이 먹어도 허기가 진다. 이 같은 다갈, 다식, 다뇨는 당뇨병의 3대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무기력증과 이유 없는 피곤함, 체중감소 역시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힌다. 당뇨병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환 가운데 하나지만 불치의 병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치명적이다.

이는 인체를 방어해야 할 면역체계가 오히려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의 베타세포를 적으로 오인해 파괴함으로써 발생하는 자기면역질환이기 때문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이 같은 면역체계를 재구성, 즉 리프로그래밍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면역체계 중 이상을 일으킨 부위만 표적삼아 치료하는 것은 물론 원래의 균형 잡힌 상태로 되돌리는 약물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제프리 블루스톤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의 면역관용 네트워크 &당뇨병센터의 수장이다. 면역관용(immune tolerance)이란 특정 항원에 대해 면역체계가 조직파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건강한 인체에서는 자기 항원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면역관용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블루스톤의 사무실에는 네온사인이 하나 걸려 있다. 약 90cm 폭의 네온사인에는 분홍색과 파란색으로 '클럽 블루스톤'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술집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블루스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면역생물학자다. 이 네온사인 은 1980년대 후반 그가 시카고 대학 연구실에서 오랜 시간동안 연구하고 있을 때 그의 장인이 만들어준 것이다. 밤이 돼 연구원들이 피곤해지면 연구실의 조명을 끄고 이 네온사인을 켰다. 그리고는 록큰롤의 선두주자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를 들었다. 이는 연구원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블루스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식의 파티였지요."

블루스톤은 이런 연구실에서 30 년간 근무하면서 의학계의 제일 곤란한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다. 그 문제란 고장 난 면역체계가 인체의 조직과 장기를 공격하지 못하게 막는 것. 사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연구를 해왔다.

인간 면역체계의 빛과 그림자

면역학 분야의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생물학적 방어체계, 즉 면역체계는 세계 최강의 군대에 비유할 수 있다. 이 군대의 잠재적인 적은 수없이 많지만 눈에 띄는 어떤 지휘관도 없다. 대신 이 군대의 병사들은 끊임없이 순찰을 돌면서 언제라도 적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게끔 준비를 하고 있다. 이상적인 무정부 상태인 셈이다.

면역체계는 대부분 언제 나가고 언제 물러나야 할지 잘 알고 있다. 건강한 사람의 면역체계는 우리가 아직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절차를 통해 인체의 조직과 장기를 보호하고, 침입자를 식별해서 죽인다. 하지만 면역체계는 파괴적이기도 하다. 면역체계가 이식받은 장기를 위험한 외래 물체로 인식해 공격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흔한 것은 자기면역질환이다. 면역세포가 환자 본인의 조직과 장기를 공격하는 것.

이 같은 면역체계의 이상을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면 무려 80 가지가 넘는 각종 질환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게 바로 제1형 당뇨병, 류머티스 관절염, 낭창, 다발성 경화증, 그리고 염증성 장질환 등이다.

일명 소아 당뇨병으로 알려진 제1형 당뇨병은 인슐린이 분비되지 못 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류머티스 관절염은 다발성 관절염을 특징으로 하 는 만성 염증성 질환. 초기에는 관절을 싸고 있는 막에 염증이 발생하지만 점차 주위의 연골과 뼈로 염증이 퍼져 관절의 파괴와 변형을 초래하게 된다.

낭창은 주로 가 임기 여성을 포함한 젊은층에 발병한다. 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게 특징. 다발성 경화증은 중추신경계의 탈수초성 질환 가운데 가장 흔한 유형이며, 주로 젊은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질환. 탈수초성이란 신경세포의 축삭을 둘러싸고 있는 절연물질인 수초가 탈락되는 것을 말한다. 자기면역질환협회에 따르면 이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미국인이 무려 5,0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자기면역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쓰이는 약품이 면역억제제인데, 완벽한 면역억제제는 면역체계 중 문제를 일으킨 부위만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대부분의 면역억제제는 면역체계 전반을 억제함으로서 부작용을 초래, 환자에게 바이러스 감염과 같은 단기적 문제는 물론 암 발병과 같이 오래가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현재 56세인 블루스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인생의 대부분을 바쳐왔다.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일하던 초기 시절 오랫동안 밤을 새워 가며 OKT3에 대해 연구했다. 이것은 급성 이식거부 반응에 사용되는 면역 억제제.

그는 물론 동료 연구자들은 이 면역억제제가 제1형 당뇨병이나 다발성 경화증 같은 자기면역질환에도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면역억제제는 엄청난 부작용이 있다. 환자의 면역체계 전반을 너무 빠르고 강하게 억제해 자칫 환자를 죽일 수도 있는 것.

이에 따라 블루스톤과 동료 연구자들은 이 면역억제제의 구조를 바꾸었고, 쥐 실험을 통해 부작용이 없음을 확인했다. 이후 그는 이 면역억제제의 다른 사용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1987년 케번 헤럴드와 합류했다. 당시 시카고 대학에 있던 내분비학자 헤럴드는 블루스톤의 연구 동료였다. 두 사람은 OKT3의 구조를 바꾼 면역억제제가 제1형 당뇨병에 걸린 쥐들에게 효과가 있는지 실험해보기 시작했다.

제1형 당뇨병이란 면역세포인 T세포가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의 베타세포를 외래 물체로 오인해 파괴함으로써 생기는 자기면역질환. 이자라고도 불리는 췌장은 십이지장과 지라 사이에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선(線)으로 그 중앙을 췌관이 관통하고 있다. 이자액을 분비하는 선 조직 사이에는 섬 모양의 특수한 조직인 랑게르한스섬이 존재한다. 랑게르한스섬의 용적은 이자 전체의 1~2%며, 알파세포와 베타세포 등 2종류의 세포가 있다.

알파 세포는 글루카곤을 분비하며, 베타세포는 인슐린을 분비한다. 한 마디로 인슐린은 랑게르한스섬의 베타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포도당의 산화 및 지방으로의 전화 (轉化)를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 그런데 면역세포인 T세포가 베타세포를 공격해 인슐린 생산이 줄어들면 당뇨병이 발병하게 된다.

블루스톤과 헤렐드는 OKT3의 구조를 바꾼 면역억제제가 쥐의 제1형 당뇨병 진행을 막는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 면역 억제제는 유도미사일처럼 면역체계의 이상 부위만을 정확히 치료하며, 다른 부분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 면역억제제나 유사한 면역억제제를 사용하면 면역체계의 리프로그래밍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즉 면역체계 중 이상을 일으킨 부위만 표적삼아 치료하는 것은 물론 원래의 균형 잡힌 상태로 되돌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

헤럴드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의학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라고 한다. 그리고 표적 면역치료 계통에서 진행된 여러 학문적 업적 덕택에 목표의 달성은 어느 때보다도 가시화된 상태다. 예일 대학의 면역학 프로그램 부장인 조던 포버는 이 분야의 연구에 큰 열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면역 체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1995년 블루스톤과 헤럴드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벗어나 인체실험을 해보고자 했다. 구조를 바꾼 면역억제제가 제1형 당뇨병을 앓는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 물론 이는 완벽한 치료법이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면역억제제로 인슐린을 생산하는 베타세포의 파괴를 막고 당뇨병의 진행상황을 멈춰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면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들은 지난 2000년부터 사람에게 맞게 개량된 면역억제제의 실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실험에는 파퓰러 사이언스의 기자인 캐서린 프라이스도 피험자로 참여하게 됐다.






갑자기 찾아온 당뇨병 증세

지난 2001년 겨울. 대학 졸업반이던 프라이스는 몸에 이상한 증세가 찾아옴을 느꼈다. 우선 배가 너무나도 고팠고,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목도 너무 말랐다. 밤마다 이탈리안 소다가 나오는 꿈을 꾸고, 몰래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다. 이렇게 끊임없이 먹고 마시고 하는데도 체중이 무려 7kg이나 빠졌다. 눈도 흐려지고, 어지러우며, 피곤했다.

2월의 어느 날 오후. 음식을 잔뜩 먹은 다음 프라이스는 토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웠는데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자 룸메이트는 학생 건강센터에 가보자고 했다. 그곳에서 의사는 프라이스가 보이는 증세 가운데 하나에 주목하고 혈당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그 때 프라이스의 혈당수치는 데시리터(㎗) 당 400㎎이나 됐다. 정상치는 80~100㎎ 사이. 검사결과는 명백했다. 프라이스는 제1형 당뇨병에 걸린 것이다. 누구도 원인은 알지 못했다. 바이러스일 수도 있고, 환경 속에 있는 독성물질일 수도 있었다. 원인이야 어찌 됐든 결과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인슐린은 세포가 혈중 포도당과 접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르몬이다. 포도당은 세포의 연료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슐린이 부족하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야윌 수밖에 없다. 지난 1921년 인슐린이 발견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1형 당뇨병 진단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인슐린의 발견은 캐나다 토론토의과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반팅과 학부생이던 조수 베스트에 의해 이루어졌다.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하는데 성공한 것. 이들의 인슐린 발견은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던 당시로서는 당뇨병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여는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공로로 1923년 반팅과 그의 동료들은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프라이스는 목요일 아침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학생건강센터에는 당뇨병 전문의가 근무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제1형 당뇨병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을 가져다주었다. 프라이스는 주말을 이용해 가급적 많은 것을 알고자 했다. 제1형 당뇨병이 당장 죽을 병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안심했다.

하지만 철저히 혈당수치를 조절하지 않으면 당뇨병으로 인해 신장 기능이 파괴되고, 실명이나 심장병에도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심지어는 발을 절단해야 경우도 생긴다. 게다가 당뇨병은 기대수명을 7~10년이나 줄일 수 있다.

프라이스는 당뇨병에 대해 기존의 잘못된 상식부터 고쳐야 했다. 우선 그녀는 미국 내 환자가 300만 명이며, 하루에 인슐린 주사 몇 대만 맞으면 다스릴 수 있는 제1형 당뇨병이 그 보다 훨씬 더 널리 퍼진 제2형 당뇨병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2형 당뇨병이란 인슐린을 생산 하는 기능이 떨어져 혈당이 높아지는 것으로 40세 이후에 주로 발병하며 비만한 사람에게서도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성인 당뇨병으로도 불린다. 제2형 당뇨병을 다스리려면 식이 요법, 운동, 약품의 투여 등이 병행돼야 한다. 그리고 제1형 당뇨병은 과거 명칭인 소아 당뇨병이라는 이름 탓에 아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질환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어떤 나이에서도 발병할 수 있다.

더욱 힘든 것은 이 질환을 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슐린 주사 덕에 목숨은 연명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제1형 당뇨병을 다스린다는 것은 끝없이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다. 잘 짜인 식단과 함께 인슐린을 계속 공급받아 혈당수치가 너무 높이 올라가지 않게 끊임없이 조절해야 한다. 또한 오랫동안 높은 혈당에 노출, 혈관이 파괴돼 생기는 합병증도 예방해야 한다.

그렇다고 혈당수치가 너무 낮아져도 문제가 된다. 인간 뇌의 유일한 에너지원이 혈당, 즉 혈액 속의 포도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혈당이 떨어지게 되면 뇌가 굶주리게 되고, 심해지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 특히 일상의 스트레스나 다른 질병도 혈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는 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당뇨병을 다스리는 것은 정말 힘 빠지는 꾸준한 작업이며, 인간의 면역체계가 남아있는 인슐린 생산 세포를 죽이면 죽일수록 더욱 다스리기가 힘들어진다.

프라이스는 당뇨병과 싸우기로 했다. 당뇨병 진단이 나오자마자 간호사인 그녀의 어머니는 가능한 임상실험을 찾다가 우연히 블루스톤과 헤럴드의 연구를 알게 됐다. 그래서 당뇨병 진단을 받은 지 1주일이 지난 2월의 어느 추운 날 그녀와 부모님은 컬럼비아 대학 메디컬센터를 찾아가 헤럴드를 만나고, 그의 연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블루스톤과 헤럴드가 새로 만들어낸 면역억제제에 대한 소개도 받았다.

하지만 프라이스의 아버지는 잠시 망설였다. 면역체계는 쉽사리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라이스의 부모님은 헤럴드에게 다소 난처한 질문을 했다. 새로운 면역억제제의 잠재적인 효용과 부작용을 전제로 만약 헤럴드의 자식이 당뇨병에 걸리더라도 이 면역억제제를 처방하겠느냐고 물은 것.

세 딸을 두고 있고, 그 자신도 제1형 당뇨병 환자인 헤럴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그것이면 족했다. 프라이스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을 하고, 사전 혈액검사를 받았다. 헤럴드가 여러 장의 서류를 넘기면서 프라이스를 통제그룹에 넣을지 실험그룹에 넣을지 결정하는 동안에는 숨도 멈추었다.

다행히도 검사결과는 그녀를 실험그룹에 넣는 것이 좋다고 나와 있었다. 며칠 후부터 프라이스는 하루에 한 대씩 이상한 주사를 12일 동안 맞았다. 그 주사에는 이상한 투명 용액이 담겨 있었는데, 너무나도 차가워 정맥을 타고 흘러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통제그룹에 속한 피험자들은 6개월마다 한 번씩 당뇨병 검사를 받기는 하지만 실험그룹처럼 주사를 맞지는 않는다.

주사를 처음 맞자 프라이스의 혈압은 급강하했다. 그리고 손바닥 가죽이 벗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외에는 면역억제제가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 느낄 수 없었다. 솔직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당뇨병 진단을 받은 후 처음으로 면역체계를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CD3 단일클론항체 메커니즘

연구자들은 어떤 약품이 쥐에 효과 가 있었다고 해서 사람에게도 똑같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사람에게도 똑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프라이스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 몸속의 면역체계에서는 심원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으며, 연구자들은 이 같은 변화의 원인을 알아내려고 노력 중이었다. 간단히 말해 면역체계가 췌장의 베타세포, 즉 인슐린 생산세포에 대한 공격을 멈춘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블루스톤과 헤럴드 역시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다만 최근의 이론에 따르면 이 면역억제제는 제1형 당뇨병에 2가지 효능을 미친다고 한다.

우선 이 면역억제제는 췌장을 공격해 인슐린 생산세포를 죽이는 고장 난 T세포의 기능을 억제한다. 동시에 정상적인 T세포의 수를 늘리는 효과도 있다. 이렇게 늘어난 T세포는 몸속을 순찰하면서 과도하게 활발한 다른 T세포를 진정시켜 문제를 예방한다.

이 이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면역억제제를 통한 약물요법이 종료된 이후 고장 난 T세포가 다시 회복되더라도 새로 증강된 정상적인 T세포가 이들을 제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블루스톤과 헤럴드가 만들어낸 새로운 면역억제제는 '항-CD3 단일클론항체 인간화 OKT3-감마-1'이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갖고 있었다.

항-CD3 단일클론항체는 T세포의 표면에서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분자인 CD3을 억제함으로써 세포의 기능을 바꾸는 방식이다. 즉 인슐린 생산 세포를 공격하는 CD3을 무력화시키는 것.

일반적으로 단일클론 항체란 하나의 항원에만 반응하는 항체다. 이 같은 특성을 이용, 단일클론 항체에 암세포를 죽이거나 특정 기능을 억제하는 기능을 갖도록 하면 표적에 정확히 유도할 수 있다. 이 같이 쉽고도 예상치 못한 방식을 사용함으로서 고장 난 T세포에 더욱 잘 대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프라이스는 생각했다.

프라이스는 몇 달에 한 번 후속검사를 받으러 클리닉에 갔다. 통제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인슐린 생산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동안 그녀의 인슐린 생산레벨은 오히려 상승했다. 하지만 아직 그녀가 완치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식사와 운동, 인슐린 투약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인슐린 생산능력이 향상되면서 프라이스는 실험에 참가하지 않았을 때보다 당뇨병을 더욱 잘 다스릴 수 있게 됐다.

지난 2002년 블루스톤과 헤럴드는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1년간의 임상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실험그룹 12명 중 9명이 인슐린 생산능력을 유지한데 반해 통제그룹 12명 중에서는 단 2명만 인슐린 생산 능력을 유지했다는 게 요지. 또한 일부 피험자들은 당뇨병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많은 인슐린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항-CD 3 단일클론항체의 이 같은 성공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제1형 당뇨병의 악화를 막은 첫 사례였다. 학계에서는 이 뉴스를 반겼다. 국제소아당뇨병연구재단의 면역요법 프로그램 부장인 테오도라 스태바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임상실험 결과와 그 의미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면역관용 네트워크의 임상실험 그룹 부단장인 마리오 엘러스도 이에 동의한다. "사람들은 부작용이 심한 기존의 면역억제제를 쓰지 않고도 당뇨병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뭔가 해보지 않으면 그 효과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해봄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로드맵 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블루스톤과 헤럴드가 제공한 로드맵 역시 다른 연구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 프랑스의 당뇨병 연구자인 루시엔샤테 누가 이끄는 연구팀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변형된 항-CD3 단일클론 항체를 80명의 제1형 당뇨병 피험자에게 투여한 실험이 성공리에 끝났다는 논문을 실었다.

그동안 블루스톤과 헤럴드는 연구를 계속했다. 지난해 여름 헤럴드는 프라이스가 속한 실험그룹의 환자들을 포함한 후속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현재 항-CD3 단일클론항체가 고위험군 당뇨병 환자의 병세를 진정시킬 수 있는지 연구한다.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기 위한 마지막 단계 바로 직전인 제 3단계 임상실험에서는 2가지 버전의 항-CD3 단일클론항체가 쓰이고 있다. 제3단계 임상실험은 초기부터 거대 제약회사인 엘리릴리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 그리고 다른 회사의 지원을 받고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준다면 항-CD 3 단일클론항체는 앞으로 2년 내 제1형 당뇨병의 원인을 공략하는 약물로는 최초로 FDA의 승인을 받는 것이다. 현재 표적면역치료의 연구는 제1형 당뇨병 치료에만 국한되지 않고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항-CD 3 단일클론 항체는 기존의 면역억제제에 비하면 마치 유도미사일과도 같이 정확하다.

하지만 항-CD3 단일클론항체도 부수적인 피해를 입힐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 면역억제제는 췌장을 공격한 T세포만이 아닌 모든 T세포의 CD 3 분자를 표적으로 하기 때문에 기회감염에 대한 환자의 저항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기회감염이란 병원성이 없거나 미약한 미생물도 극도로 쇠약한 환자에게 감염돼 생기는 질환인데, 2차 감염이라고도 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감염증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면역기능이 감소된 사람에게는 심각한 감염증을 일으킨다. 한 마디로 항-CD3 단일클론항체는 유도미사일처럼 정확하기는 하지만 췌장의 베타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만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이 같은 사실은 제1형 당뇨병 이외에 다른 다양한 질환 치료에도 쓰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항-CD3 단일클론항체의 여러 가지 버전은 건선,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등의 치료목적으로도 시험되고 있다. 건선이란 발진이 전신의 피부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피부병을 말하며,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기관 전체에 걸쳐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장질환이다.

항-CD3 단일클론항체는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다발성경화증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헤럴드는 이렇게 말한다. "항-CD3 단일클론항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환의 수는 매우 많습니다."

항-CD3 단일클론항체의 친척들인 다른 단일클론항체들 또한 유용하다. 이들은 각각 다른 표적을 제압해 다양한 장애를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면역세포인 B세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리툭시맵이 대표적인 사례.

리툭시맵의 맵은 단일클론 항체를 의미하는데, 당초 리툭시맵은 지난 1997년 비호즈킨 림프종 치료 목적으로 승인받은 약품이다. 림프종은 임파선 암으로 림프조직에서 발생한다. 림프조직은 신체의 여러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림프종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크게 호즈킨 림프종과 비호즈킨 림프종으로 구분된다.

이처럼 리툭시맵은 항암제로 만들어 졌지만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 목적으로 승인받은 후 다발성 경화증을 비롯한 다른 자기면역질환 치료에도 효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더구나 리툭시맵은 면역체계가 자신의 혈관을 공격하는, 드물지만 치명적인 질환인 자기면역성 혈관염 치료에도 최소한 기존의 면역억제제만한 효능을 보여주었다. 다른 여러 가지 표적 면역치료제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유독한 부작용은 거의 없다.

연구자들은 다른 면역억제제의 면역체계 재프로그래밍 효과도 이미 발견했다. 예를 들어 종양괴사인자 길항제는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의 혁명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질환 치료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양괴사인자란 대식세포(大食細胞)에 의해 체내에서 생성되는 단백질로, 암세포를 파괴하는 작용을 하 지만 정상세포까지 공격해 각종 염증을 일으킨다. 이의 치료를 위해 생리 기능에 필요한 물질의 작용을 방해하는 길항제가 이용된다.

낙관론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진 블루 스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약품이 다른 질환 치료에도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효과 불구 문제점도 많아

치료가 끝난 몇 년 후 프라이스는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이 후원하는 한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녀의 체험을 많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말해 달라는 것. 처음에는 그녀도 자신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1형 당뇨병 환자인 자신의 몸에서 인슐린이 생산되고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임상실험인가.

하지만 프라이스는 왠지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아직 항-CD3 단일클론항체는 FDA의 승인을 받지 못 한 탓이다. 따라서 이 면역억제제로 치료를 받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그녀는 그 중의 한 사람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 면역억제제를 누구나 구입할 수 있게 되더라도 이 약품은 당뇨병에 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인슐린 생산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들을 사람 대부분은 이미 해당사항이 없었다. 마치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로또에 당첨된 얘기를 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프라이스 역시 이 면역억제제로 치료를 받는 행운을 얻기는 했지만 그녀의 당뇨병은 아직 완치되지 않았다. 당뇨병을 완치하려면 면역체계가 파괴한 인슐린 생산 세포를 모두 새로운 세포로 교체해야 한다.

미국에만 해도 수백만 명의 제1형 당뇨병 환자가 있지만 그 사람들에게 충분한 췌장을 공급해 줄 시체제공자는 많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인슐린 생산 세포를 얻으려면 줄기세포에 의존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 있다. 줄기세포는 인체의 어떤 세포로도 변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프라이스가 필요로 하는 췌장 세포의 양은 적다. 한 티스푼 정도만 있어도 된다. 그리고 그 세포는 외래진료를 통해 주사 한 번으로 이식된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은 일이다. 시체를 통해 얻든 줄기세포를 통해 얻든 새로운 인슐린 생산 세포를 몸에 집어넣는다면 그 세포는 면역체계 이상으로 인해 파괴돼 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당뇨병은 재차 심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거부반응이라는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한다. 이는 외부의 조직이나 세포를 이식받을 때 항상 나타나는 문제다. 환자의 몸에서 직접 얻은 세포나 일란성 쌍둥이에게서 얻은 세포가 아니라면 면역체계는 외부 세포를 마치 이식된 조직이나 장기처럼 간주해 공격을 한다.

이 때문에 줄기세포를 응용한 모든 치료법은 항상 면역조절 약품을 사용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블루스톤이 면역관용 네트워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제1형 당뇨병 진단을 받은 지 9년이 지났다. 하지만 프라이스는 아직도 예일 대학의 자기면역연구센터장이 된 헤럴드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헤럴드는 그곳에서 당뇨병 연구자네트워크인 트라이얼넷의 예일 대학 지부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여름 자금지원을 받아 처음 임상실험에 참가했던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후속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항-CD 3 단일클론 항체의 효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인데, 프라이스도 열성적으로 지원했다. 후속 임상실험은 프라이스가 처음 임상실험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이 진행됐다.

그녀는 한 잔의 부스트 영양음료를 마시고, 인슐린을 투약하지 않은 채 4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물론 팔에는 정맥 카테터를 꽃은 채. 카테터란 인체 조직 및 장기 내용물의 배출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고무 또는 금속제의 가느다란 관을 말한다. 이를 통해 간호사들은 다량의 혈액 샘플을 채취해 프라이스의 췌장이 만드는 인슐린의 양을 알 수 있다.

검사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의 췌장은 여전히 측정이 가능할 만큼 많은 인슐린을 생산하고 있었다. 당뇨병이 계속 진행됐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프라이스의 인슐린 생산능력은 약해지고 있었다. 인슐린 수치가 치료 직후에 비해 절반 정도로 떨어져 있었던 것. 그녀는 걱정이 됐다. 이것이 바로 면역체계가 남은 인슐린 생산세포를 모두 없애버릴 징후처럼 보였던 것.

항-CD3 단일클론항체가 FDA의 승인을 얻어 재차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블루스톤과 헤럴드 같은 연구자들이 모든 당뇨병 환자들의 소망인 완치비법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 는 게 프라이스의 소망이다. 블루스톤 역시 항-CD3 단일클론항체가 출시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가정을 세우기 싫어하지만 항-CD3 단일클론항체가 더욱 다양한 용도로 쓰이기를 바란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1~2년 안에 항-CD 3 단일클론항체가 FDA의 승인을 받는다면 매우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우리가 해낸 일이 인류의 건강을 크게 증진시킬 수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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